길위의단상

3000

샌. 2011. 10. 4. 19:03

블로그에 올린 글 수가 3,000개를 기록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8년여 만이다. 매일 하나씩의 글을 쓰자고 약속하며 블로그를 2003년에 열었는데 지금까지 그 다짐을 잘 지켜온 셈이다. 내용이나 양보다 매일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글을 올리려 노력했다. 매일매일 한 걸음씩 걸어왔다는 게 소중하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대문 이름은 ‘마가리의 꿈’이었다. 백석 시에 나오는 ‘마가리’는 당시 내 귀촌 생활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 후 꿈이 깨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문패는 ‘내 마음의 뒤란’으로 바뀌었다. 블로그는 답답하고 울적한 심정을 토로하고 위안을 받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재작년부터는 지금의 ‘먼.산.바.라.기.’를 쓰고 있다. 그 이름 속에는 꿈, 동경, 희망의 의미가 들어있다.

그동안 카테고리도 다섯 개에서 여덟 개로 늘어났다. ‘참살이의 꿈’에 들어있던 고전 읽기가 ‘삶의 나침반’으로, ‘길 위의 단상’에 들어있던 독후감이나 영화 감상이 ‘읽고 본 느낌’으로 독립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꽃과 나무’였던 카테고리는 ‘꽃들의 향기’와 ‘천년의 나무’로 분리되었다. 앞으로 내 관심사가 확장되지 않는 한 이 여덟 개의 카테고리는 계속 유지될 것 같다.

3,000개의 글은 내 삶의 흔적이면서 마음의 무늬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사를 누구에게 보이고 싶어 블로그에 기록하고 공개하는 게 아니다. 지인들 중 내 블로그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가족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다.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고, 아직은 속마음을 들키는 게 쑥스럽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장점은 일기장에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면서 기능이 다양하다는 점에 있다. 영상을 쉽게 올릴 수 있고, 검색이나 태그 기능은 자료를 정리하는데 아주 요긴하다.

블로그는 이제 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책을 자주 읽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도서관에 열심히 가고, 카메라도 자주 꺼내고,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려고 한다. 블로그는 정신적 게으름을 막아주는 방부제다. 좀 더 진지하게 인생을 성찰하게 해주는 각성제다.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지나온 삶의 발자국이 3,000개의 글로 남아 있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생각했고 고민했으며,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지 말해주는 자취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의미 없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며 역사다.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발자국을 찍으며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 어린아이이고 싶다. 파도가 밀려오면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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