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조용히 살고 싶어라

샌. 2011. 10. 7. 20:49

집 앞에 태권도 학원이 생겼다. 덕분에 시끄러운 소음을 견뎌야 한다. 초기여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기합 소리가 요란하다. 위층에서는 쿵쿵거리고 밖에서는 아이들 함성이 신경을 자극한다. 집에 주로 있다 보니 소음에 더 예민해졌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마음은 더 시끄러워진다.

이곳 아파트 단지는 젊은 가구가 대부분이다. 우리 윗집, 아랫집, 옆집에는 전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놀이터에도 언제나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전에 서울에 살 때는 양로원이라 할 정도로 아이들 보기가 어려웠다. 엘리베이터에 타도 항상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이쁘게 보면 활기차서 좋고, 밉게 보면 너무 소란하다.

처음 이사 와서는 위층에서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옛날 고향집에서는 밤이면 쥐들이 천정에서 운동회를 열었다. 꼭 그런 소리가 밤 12시 너머까지 계속되었다. 오죽했으면 다시 이사 갈 생각까지 했겠는가. 그런데 다행히도 윗집과 대화를 한 뒤 조심해주어서 이젠 어느 정도 견딜만해졌다.

그런데 집 앞 상가에 태권도 학원이 들어섰다. 용인대 출신이라고 큰 간판을 걸더니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오전부터 밤 열 시까지 쉼 없이 돌아간다. 단지 밖 아이들까지 데려오느라 버스도 두 대나 새로 생겼다. 신이 난 사범은 요사이 목소리가 더 커졌다. 아이들도 누구 목소리가 더 큰지 경쟁하는 것 같다. 특이한 건 세상이 험해져서 그런지 태권도를 배우는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보다도 많다.

여름이 지나가 창문을 닫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앵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공격을 해댄다. 그런데 이 소음이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아파트 안에 학원이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냐고 한다. 내 자식이 열심히 운동하는 소리가 부모에게는 노랫소리보다 더 달콤하게 들릴 법하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건 나이 들어 외톨이가 된 나밖에 없다. 시끄럽다고 항의해도 귀 기울여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내 역시 괘념치 않으니 소리에 너무 민감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래도 싫은 건 싫으니 어떡하겠는가. 더 추워지면 학원도 창문을 꼭꼭 닫을 테니 그대는 좀 덜해지겠지. 안 그래도 칩거형인 내가 겨울을 더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면 빨리 손주가 생겨 저 태권도 학원에 보내든가, 그렇게 되면 창문을 활짝 열고 손주와 또래들의 “태권!” 소리를 듣고 싶어 안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직접 태권도를 배우든지, 그래서 사범님을 존경하게 된다면 소음은 더 이상 소음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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