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내 노동으로 / 신동문

샌. 2004. 2. 16. 16:26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그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 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 내 노동으로 / 신동문 >


최근에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고`라는 책을 읽었다.
전희식의 귀농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듯이 생태적 삶을 농촌에서 실천하고 있는 분의 삶의 기록이다.
오마이뉴스의 컬럼으로 가끔씩 접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엮어진 덕에 또 다른 감동과 부러움으로 보았다.

내가 존경하는 분은 돈이 많다거나 ~장의 직책이 붙은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아니다.
가끔 접하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 느끼는 것은 그들이 겉모습과는달리 내적 빈곤과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인간 공통의 심리이겠지만 사회적 성취가 결코 내적 성숙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도리어 일종의 반작용으로 일과 외적인 활동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나에게 귀농은 인간 회복의 길이다.
귀농은 관행적 삶과 남의 시선을 위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삶의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위해, 핸드폰과 최신 사양의 컴퓨터를 위해, 더 넓은아파트를 가지기 위해 자기 인생을 소진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귀농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나이 50이 되면 나도 그런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내 땀과 내 노동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이제껏 머리와 입으로 살아온 삶에서 몸으로 사는 삶을 살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위 시인의 독백이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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