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가자 / 최옥

샌. 2004. 2. 11. 11:09

그랬지... 그곳엔 세월 가도 바래지 않을
풀빛 추억이 지금도 뛰어다니고 있는 걸
가위바위보에 터지던 웃음 소리
공기놀이에 지지 않던 해가 아직도 비추고 있는 걸
그랬지... 그 나무 아래서
먼 훗날 우리의 날들이 나무 그늘 밖의 저 햇살이길
소원하거나 꿈꾸지는 않았지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두고 왔는 걸
한 방울 눈물없이 아름다웠던 내 여덟 살이 거기 있는 걸
다래끼집 몰래 지어두고 지켜볼 때
내 작은 몸을 온전히 숨겨주던
내 전부를 기대고 섰던 나무 한 그루 거기 있는 걸
밤 하늘에 토끼풀같던 별들이 만발해지면
그 때 그 아이들 하얀 풀꽃 따다 만든 꽃다발
오늘 밤도 내 목에 걸어주는 걸
유난히 날 좋아했던 첫 사랑 그 아이의 커다란 눈이
아직도 날 바라보고 있는 걸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의 추억이 아니라
문득문득 일상의 갈피 속에서 마른 꽃잎처럼 떨어지고 있는 걸
그리워할 것도 기다릴 것도 없이
그저 생각나면 기별없이도 모여들던 동무들
일상의 숨가쁜 날들 속에서 내가 잠시 앉았다 갈 수 있는
그래, 오늘은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가자

<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가자 / 최옥 >


삶이 힘들고 스산할 때
유년의 추억은 피곤해진 마음의 쉼터다.

오늘같이 짙은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고 있는 날,
소리없이 찬 대지 위로 내리는 저 싸락눈처럼 내 지친 일상을 포근하게 덮어준다.

그래, 오늘은 그 옛날의 느티나무 아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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