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며 <한정록>을 읽는다. <한정록(閑情錄)>은 허균(許筠)이 42세 때, 중국의 고서들에서 선비들의 한적한 삶을 그린 글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당시는 어렵게 진출했던 공직에서 쫓겨나는 등 허균으로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아마 그 자신 은둔의 삶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한정록> 서(序)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 찬찬하지 못하였고, 또 부형父兄이나 스승 또는 훈장이 없어서 예법 있는 행동이 없었다. 또 조그마한 기예技藝는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하지도 못하면서도 스물한 살에 상투를 싸매고 과거를 보아 조정에 나갔다. 그러나 경박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에 당세 권세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나는 마침내 노장老莊이나 불교 같은 데로 도피하여, 형해形骸를 벗어나고 득실得失을 구별 없이 하나로 보는 그런 것을 좋게 여겼다. 그리하여 세상일 되어가는 대로 내맡기어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금년으로 내 나이 이미 마흔두 살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무엇인가 할 만한 일도 없고,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는데 공업功業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내 스스로를 가만히 생각하니 슬퍼지누나.
제일 멋지게 산 저 당의 사마승정司馬承禎이나 후한 때의 방덕공龐德公처럼 산과 계곡에 마음과 뜻을 자유롭게 팽개쳐놓지도 못하였고, 이들보다 못하지만 그 다음으로 멋지게 산 저 후한 때의 상장尙長이나 양나라 도홍경陶弘景처럼 자녀의 혼인을 끝내고 멀리 유람하거나 관직을 사직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도 못하였으며, 또 그들보다 못한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저 남조 송의 사강락謝康樂이나 당의 백거이白居易처럼 벼슬을 하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와 정회를 푼 것과 같이 하지도 못하였다.
그리고는 형세에 급급하여 끝내 한가하지 못하여 조그마한 이해에도 어긋날까 마음이 두렵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도 마음이 동요되었다. 이렇게 되자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이며 혹시 함정에 빠질까 여겨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큰 기러기나 봉황이 멀리 날 듯, 매미가 허물을 벗듯 초연히 탁세濁世를 벗어나는 옛날의 어진 이와 나를 비교해보니, 그들의 지혜와 나의 어리석음의 차이가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에 그치겠는가.'
그래서 병을 얻어 두문불출하던 차에 옛 글을 읽으며 거기서 마음에 드는 내용을 뽑아 열 편으로 된 <한정록>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라고 쓰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숨어 사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김원우 선생이 번역했다. 10여 년 전 은둔의 꿈을 꿀 때부터 지금까지 심심할 때면 꺼내서 읽어보고 있다. 그중에서 몇 개의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옛사람이 고문을 필사한 심정도 이러했는지 모르겠다.
1
양적현陽翟縣에 두생杜生이란 자가 있는데,
그 이름은 알 수 없고
다만 마을 사람들이 그를 두오랑杜五郞이라 부를 뿐이었다.
마을에서 삼십오 리 떨어진 곳에 사는데 집이라고는
두 간뿐이고 집 앞에 열 자 정도의 빈터가 있는데,
두생이 문밖을 나가지 않은 지가 벌써 삼십 년이었다.
여양위黎陽尉가 일찍이 그를 방문하여
문밖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그는 문 앞의 뽕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십오 년 전에 저 뽕나무 밑에서 더위를 피한 적이 있었으되,
그저 일이 없어 우연히 나가지 않았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두생이,
"남에게 택일도 해주고 약도 팔아
싸라기죽으로 연명하였는데,
자식이 커서 농사짓고부터는 식량이 넉넉해져서
택일도 하지 않고 약도 일체 팔지 않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또 평상시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단정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책을 보느냐고 물으니,
"이십 년 전에 일찍이 <정명경淨名經>을 보고 빠졌던 적이
있으나 지금은 잊었고, 그 책마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기품이 넓고 조용하며 말씨가 맑고 간단하니,
도가 있는 선비이다.
한추위인데도 베옷에 짚신을 신고
방안에는 의자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2
축석림祝石林이 말하였다.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은 나이가 들수록
꾀만 깊어지는 데 있다.
무릇 부싯돌은 금방 꺼져버리고
황하의 물은 수백 년 만에 한 번씩 맑아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속에서 살려 하거나 세속을 떠나려 하거나 간에
모름지기 조화造化의 기미를 알고 멈춤으로써
조화와 맞서 권한을 다투려 하지 말고
조화의 권한은 조화에게 돌려주고,
자손을 위해서는 복을 심어 자손의 복은 자손에게
물려준 뒤에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고
눈앞의 맑은 일에 유의할 것이다.
꽃을 찾고 달을 묻는 데 두셋이 동반하고,
차 달이고 향 피우는 데 거동이 단아하며,
모임에는 약속이 필요 없고, 의식에는 겉치레가 필요 없고,
시에는 기교가 필요 없고, 바둑에는 승부가 필요 없으며,
모든 일이 날로 감소되기를 구하고,
이 마음이 하늘과 함께 노닐도록 하여
나이도 기억하지 못하고 연대도 망각해버린다면
이 또한 티끌세상의 선경仙景이요 불가의 정토淨土이다."
3
명산은 터잡고 살 만하지 않으니,
조그마한 산이 겹겹으로 둘러싸이고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 나아가
땅 두어 이랑을 개간하고 삼간 초가집을 짓는다.
무궁화나무를 꽂아 울타리를 만들고
띠를 엮어서 정자를 만들며,
한 이랑에는 대나무를 심고
또 한 이랑에는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그 옆에는 오이와 채소를 심는다.
이리하여 사벽은 맑게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데,
산동山童을 시켜 채마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한다.
이에 의자 한두 개를 정자 밑에 놓고는
책과 벼루를 끼고서 한가로움을 벗삼고,
거문고와 바둑을 가져다가 좋은 친구를 부르며,
이른 새벽에 말을 채찍질하여 나갔다가
해 저물어 돌아오곤 하면
이 또한 노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4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되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다하자,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제上帝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네 소원을 물어오게 하였노라."
선비가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요,
감히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승에서 의식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다가 죽었으면 족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낙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를 구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 가난한 자는 춥고 배고픔에 울부짖고
부귀한 자는 명예와 이익에 분주하여
죽을 때까지 거기에 골몰한다.
생각해보면, 의식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극락이건만
하늘이 매우 아끼는 바이기에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가난하다 할지라도
도시락 밥 한 그릇 먹고 표주박 물 한 잔 마시고서
고요히 방안에 앉아 천고의 어진 이들을 벗으로 삼는다면,
그 낙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어찌 낙이 반드시 산수 사이에만 있겠는가.
5
안촉이 제나라 선왕을 뵈니,
선왕이 말했다.
"안선생이 과인과 같이 있어준다면,
반드시 소, 양, 돼지를 갖춘 성대한 음식상으로 대접하고
출타할 때는 반드시 수레를 타도록 하고
처자에게는 아름다운 옷을 제공하겠소."
그러자 안촉이 사양하고 떠나면서 아뢰었다.
"대저 다듬지 않은 옥玉은 산에서 나는 것인데
다듬자면 깨뜨려야 합니다.
다듬어놓은 옥이 보배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박옥 본연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선비가 초야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게 되면
녹을 받게 되니, 존대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본디의 몸와 마음은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시골로 돌아가,
때가 지나 식사하면 거친 음식도 고기 맛이고
천천히 자유롭게 거닐면 수레를 탄 것보다 낫고
아무런 죄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귀한 것이니,
맑은 마음으로 스스로를 즐기고 싶습니다.
원컨대, 신의 땅과 가옥을 회수하시고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리고는 두 번 절한 다음 떠나갔다.
6
전당錢塘의 왕기王琦는 나이 오십에
벼슬에서 물러난 뒤 생업에 힘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깊은 겨울 큰 눈이 내릴 때면
주려 쓰러져 문밖도 나오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지금 요직에 있는 이들이 공을 매우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입만 한 번 떼면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
그러자 왕기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춥고 배고파도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네."
7
도홍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시골에서 편히 쉬고 교외에서 조용히 살며
한결같은 뜻을 지키는 것은
감히 영화를 멸시하거나 세속을 비웃어
스스로 고상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품대로 구김없이 살면서
벼슬하지 않아 한가함을 얻고,
나무하고 물을 길어도 즐거움이 넘치며,
소나무를 베어 창출을 구워 먹어도 기쁘니,
이 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8
왕정진王廷陳이 여무소餘懋昭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임천林泉에서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내지만 위로는 옛 성인을 사모하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세속과 동조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어설프고 게으른 짓은 할지언정
감히 미친 짓은 못하고,
졸렬하고 어리것은 짓은 할지언정 악한 짓은 못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이 고상하지만
그 방탕함은 비루하게 여기고,
굴원屈原의 충성이 가상은 하지만
그가 멱라수에 빠져 죽은 것은 지나쳤다 여기고,
월나라 범여가 벼슬을 버리고 떠난 것은 슬리롭지만
그가 이룩한 부는 더럽게 여긴다.
경치가 마음에 흡족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스스로 노래하지만
술은 양껏 마시지 않고
노래도 끝까지 다 부르지는 않으며,
피곤해지면 드러눕지만 꿈을 꾸지 않는다.
세속이 지겹도록 싫지만 어찌 마음붙일 데가 없겠는가.
그래서 다시 노장老莊의 사상을 궁구하여
성명性命을 보양한다.
흥이 일면 강호江湖에 노닐기 좋아하지만
물이 넘치면 배를 띄우지 않고,
구름 낀 산봉우리를 좋아하지만
미끄러운 이끼가 낀 위험한 비탈길이면
물러서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이 내 행동의 대략이다."
9
원풍元豊 6년 10월 보름날 밤에
막 옷을 벗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밝은 달빛이 방안에 비치어 벌떡 일어났으나,
생각해보니 함께 노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승천사承天寺로 가서
장회민張懷民을 찾았더니,
회민도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뜨락을 거니는데,
뜨락은 마치 호수와 같아서 물 속에 수초가
서로 엇갈려 있는 듯 하였으니,
대개 그것은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가
달빛에 서로 엇갈려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인들 달이 없으며
어느 곳인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으련만,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로운 정취가 있는 사람이
드문 것뿐이다.
10
정한廷韓 막시룡莫是龍은 말하였다.
"내가 평소에는 그리 좋아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시냇가 버드나무 숲 그림자가
조그만 창문을 가리고 있는 정경을 볼 적마다
곧 그 아래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11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인 것이다.
12
왕휘지는 산음山陰에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이 깨자 방문을 열어놓고
술을 따르라 명하고 사방을 보니 온통 흰 빛이었다.
일어나서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을 외다가
갑자기 대규 생각이 났다.
이때 대규는 섬계에 있었다.
그는 작은 배를 타고 밤새 가서
대규 집 문에 이르렀다가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흥이 있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니
어찌 꼭 대규를 보아야 하는가?"
13
조물주가 사람에게 공명과 부귀를 아끼지는 않으나
한가한 것만은 아낀다. 천지 사이에는
천지 운행의 기틀이 발동하여 돌고 돌아
한 순간도 정지하는 때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지도 한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높은 벼슬에 많은 녹을 받는 사람이나
좋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그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조용히 세속적인 데서 떠나
물러날 줄을 아는 자는 매우 적다.
그리하여 그들 중에는 날마다
재산을 모으고 좋은 집을 지으려는 생각뿐이나
한번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죽고 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집에서 먹고 지낼 수만 있다면
정말 한가한 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좋을 텐데도
돈지갑만을 꼭 간수하려고 손을 벌벌 떨고,
금전출납부만을 챙기면서 마음을 불안하게 먹고 있으니
어찌 낮에만 부산하여 바쁘겠는가.
밤 꿈에도 뒤숭숭할 것이다.
이러한 처지에 있다면 좋은 산수와 좋은 풍경에 대해서야
어찌 일찍이 맛을 알겠는가.
그리하여 부질없이 삶을 수고롭게 하다가 죽어도
후회할 줄 모른다.
이들은 실로 돈만 모을 줄 아는 수전노로서
자손을 위하여 소나 말과 같은 느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수전노보다도 더 심한 자가 있으니,
그들은 자손을 위하여 거의 독사나 전갈 같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을 얻지 못하니
한가한 사람이 바로 등한한 사람은 아니라네
不是閑人閑不得
閑人不是等閑人
라는 시구가 있다.
14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이
마치 달리는 말을 틈 사이로 보듯 빠른데,
비 오고 바람 부는 날과 근심하고 시름하는 날이
으레 삼분의 이나 되며,
그 중에 한가한 때를 가지는 것은
겨우 십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된다.
더구나 그런 줄을 알고 잘 누리는 사람은 또한
백에 하나나 둘이고, 그 하나나 둘이 되는 속에도 또한
음악이나 여색으로 낙을 삼는 이가 허다하니,
이는 본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경지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지 못해서이다.
눈에 보기 좋은 것이 당초부터 여색에 있지 않고
귀에 듣기 좋은 것이 당초부터 음악에 있지 않은 법이다.
밝은 창 앞 정결한 탁자 위에 향을 피우는 속에서
옥을 깎아세운 듯한 얌전한 손님과 서로 마주하여,
수시로 옛사람들의 기묘한 필적을 가져다가
조전鳥篆, 와서蝸書와 기이한 산봉우리,
멀리 흐르는 강물을 감상하고,
옛 종과 솥을 만지며 상商, 주周 시대를 친히 관찰하고,
단계연端溪硯 먹물이 바위 속에 원천 솟듯 하고,
거문고 소리가 패옥佩玉 울리듯 한다면,
자신이 인간 세상에 살고 있음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맑고 한가로운 복을 누린다는 것이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는가.
15
산에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거기에 미련을 가지고 연연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있는 것과 같고,
서화 감상이 고상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거기에 탐욕을 내면
서화 장사나 마찬가지이며,
술을 마시는 일이 즐거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남의 권유에 따르면 지옥과 마찬가지고,
손님을 좋아하는 것은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일이지만
속된 무리에게 한번 끌리면 고해苦海와 같다.
16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고,
시내는 흐르고 돌은 서 있고,
꽃은 새를 맞아 웃고,
골짜기는 초부樵夫의 노래에 메아리치니,
온갖 자연 정경은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소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