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서울의 울란바토르 / 최영미

샌. 2013. 6. 2. 09:42

어떤 신도

모시지 않았다

어떤 인간도

섬기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새처럼

나 홀로 집을 짓고 허무는데 능숙한

나는 유목민.

농경 사회에서 사느라 고생 좀 했지

 

짝이 맞는 옷장을 사지 않고

반듯한 책상도 없이

에어컨도 김치냉장고도 없이

차도 없이 살았다 그냥.

 

여기는 대한민국.

그가 들어가는 시멘트 벽의 크기로,

그가 굴리는 바퀴의 이름으로 평가받는 나라.

 

정착해야, 소유하고 축적하고

머물러야, 사랑하고 인정받는데

 

누구 밑에 들어가지 않고

누구 위에 올라타지도 않고

혼자 사느라 고생 좀 했지

 

내가 네 집으로 들어갈까?

나의 누추한 천막으로 네가 올래?

 

나를 접으면,

아주 가벼울 거야

 

- 서울의 울란바토르 /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 실린 시다. 최영미 시인하면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강렬하게 새겨져 있다. 약간은 당돌하고 생경했던 시어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집에서도 직설적이고 터프한 잔영이 보인다. 시인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시인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다. '서울의 울란바토르'는 유목민의 삶을 꿈꾸는 최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살아가려는 의지도 읽힌다. 이런 도발성을 가진 사람에게 나는 왠지 끌린다. 나무꾼이나 봄봄네도 마찬가지다. 소외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북소리에 박자 맞추길 혐오하는 아웃사이더 정신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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