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리운 나무 / 정희성

샌. 2013. 6. 14. 08:15

사람은 지가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 사람 가까이 가서 서성대기도 하지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 그리운 나무 / 정희성

 

 

누군가가 우주를 '색(色)과 욕(欲)'으로 정의한 걸 본 적 있다. '욕(欲)'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그리움'으로 바꿔 불러도 좋겠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모든 존재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무가 인간을 본다면 얼마나 수선스럽게 보일까?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쉼 없이 돌아다니는 동물이 얼마나 피곤하게 느껴질까? 그리워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에게로 갈 수 없어 그리움은 더 정결해지고 순수해지는 건 아닐까?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벋고, 속절없이 꽃이 피고, 바람 불어 향기 실어 보내는 나무의 그리움이, 그리움의 원형인 것만 같다. 가까이 있으니 더 외롭다고 불평하는 인간이 너무 많은 것만 봐도 알겠다.

 

이 시는 올해 정지용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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