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샌. 2013. 12. 4. 08:21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집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니 어떤 분이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다. 감사한 눈인사를 하니, "뒤에 따라오시는 것 같아서..." 라며 수줍게 웃는다. 젊은 여성분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뒤에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으면 얼른 문을 닫아 버린다. 같이 타는 게 어색하고 싫기 때문이다. 참 나쁜 습관이다.

 

어제 인왕산에 갔는데 의외로 선바위와 인왕사를 찾아온 외국인이 많았다. 그분들은 마주치게 되면 하나같이 "Hello!" "Hi!" 하며 생긋 웃어주는 것이었다. 바위처럼 딱딱한 내 얼굴이 부끄러웠다.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에 잔뜩 골이 나 있는 표정이다. 삭막한 경쟁 사회의 단면이다. 함께가 아니라 나만 편히 살면 된다는 생각, 참 나쁜 습관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과 토성의 파종법 / 손택수  (0) 2013.12.24
12월 / 박재삼  (0) 2013.12.19
다시 논밭으로 / 서정홍  (0) 2013.11.29
창호지 쪽유리 / 윤재철  (0) 2013.11.20
나의 삶 / 체 게바라  (0) 201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