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펌] 도올의 교육입국론

샌. 2014. 6. 27. 07:40

혁신 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1. 총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간됨의 특징을 “호학”(好學)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했다. 끊임없이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움 앞에 자신의 가슴을 열어놓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 도올은 묻겠다. 진실로 진실로 우리 한민족처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보냐?

 

다카쿠스 준지로가 세계 불교성전의 최고 권위있는 에디션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의 위압적인 목판 경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판 한 판 한 판 매 글자에 새겨져 있는 고려인들의 숨결, 그 방대하고도 광활한 지식결구의 지극한 정성을 회상하는 나의 눈시울에는 뜨거운 경외의 기운이 서린다. 고려청자의 그 단아하고 세련된 빛깔과 곡선미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과연 요즘처럼 시험만 잘 보는 이지적 계산에 밝은 영수의 천재, 그런 인간들이었을까? 삼천대천세계를 한 공간에 압축해놓은 듯한 석굴암의 장중웅려한 화장세계의 한 땀 한 땀의 끌자국이 과연 김대성 한 사람의 작품일까보냐? 이 모든 것, 우리 민족이 문아(文雅)하고, 화려하고도 세련된 자취를 이 지구상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최근 기러기아빠들의 피눈물 나는 인생역정이 말해주듯, 이 민족 전체가 호학의 열정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 존재의 결실이 아니고 또 무엇이랴!

 

국민의 심상 속에 박근혜는 선거에 관한 한 헤라클레스처럼 보인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이다. 희랍신화에서 영웅(hero)이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그래서 영웅은 무수한 운명적 과업을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극복해 나간다. 그러나 영웅은 결국 죽는다. 아버지가 신이지만 인간 엄마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웅의 죽음을 살펴보면 “휘브리스”와 관계되어 있다. 휘브리스란 자기에 대한 지나친 과신, 오만을 의미한다. <일리아드> 속의 아킬레스도 휘브리스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만다. 박정희의 신화가 살아있는 한 박근혜는 헤라클레스처럼 많은 과업을 무난히 수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의 휘브리스는 박정희 신화 그 자체를 소멸시켜가고 있다. 제우스의 방패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요번 선거는 박근혜의 눈물이 지켜낸 헤라클레스적 대과업의 일환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와중에도 혁신교육감 시대가 도래했다.


우익보수의 한 진실한 대부임을 자만하는 언론인이 이와 같이 말했다: “새누리당이 6·4 지방선거에서 참패해도 전 학생인구의 40%를 관장하는 서울·경기도의 교육감만 장악하면 승리하는 것이요, 반대로 대승한다 하여도 서울·경기도 교육
감을 놓치게 되면 대패하는 것이다. 이것은 헌법정신이 사느냐 죽느냐의 대결전이다.” 참으로 통찰력 있는 명언이다. 도대체 그분이 생각하는 헌법담론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국가의 운명을 통시적으로 생각하는 혜안은 가상한 것이 있다.

 

최근 나는 어느 유수 대학에서 이공계 1·2학년 500여명을 상대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변 이후의 참담한 분위기였고, 강연자인 나의 가슴에는 무엇인가 조국의 앞날에 관하여 우려를 전하고 싶은 파토스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40분 정도였다. 여하한 대중이든 4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나의 말에 집중을 시키지 못하게 만든 경험은 나의 기억에 있지 않다. 나의 강의는 한 달 전부터 학생들에게 예고되었고, 총장과 교수님들도 참석했을 뿐 아니라, 학생들도 강연장을 가득 메운 상태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매우 조용하게 앉아 있었으며 주변 학생들과 담소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이크가 쩌렁쩌렁 울리는 매우 좋은 시설의 강론장이었는데, 5분이 지나도록 나의 언변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이 없었다. 차라리 담벼락에 대고 이야기하라면 그런대로 일방적인 담론을 쏟아놓을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인간 앞에서 1밀리미터도 교감의 통로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는 울화가 치밀고 말았지만, 계속 학생들을 달래면서 강론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 학생들은 출석체크가 되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상 밑으로 눈을 깔고 카톡에 열중하였고, 카톡을 안 하는 학생들은 조용히 잘 뿐이었다. 도올이 누구인지, 자기들이 공부하는 과학의 위대성이 무엇인지, 도올의 강론이 자기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일체 자기향상에 관한 의지나 호기심이 부재한 상태였다. 500여명 중에 내 말을 듣는 초롱초롱한 눈빛은 몇몇 눈동자에 불과했다. 초현실주의적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에게는 진실로 깊은 상처를 안겨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내가 사랑해온 내 나라 대한민국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자리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특징지은 것은 오직 아파티(apathy), 즉 무감(無感), 그리고 개별화된 시공간 속에 자기를 단절시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창문 없는 모나드에게는 예정조화라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감각만 있는 것이다.

 

세월호 안에서 무기력하게 스러져간 어린 생령들의 행동은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라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최선의 방도였다는 것을 우리는 공감하고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그 학생들의 상당수가 애절하게 부모님들과 카톡을 했다. 그 덕분에 귀중한 자료가 많이 남았다. 그래서 국가 시스템의 무능의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적 차원에서 안타깝게 반추해볼 수도 있는 또하나의 가설은 카톡이 아닌 생존의 방법의 모색을 위한 진지한 호상적 토론이 우선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선중의 마이크에서 울려퍼지는 “가만히 있으라”는 절대명령이 있었다 할지라도 생사의 기로에서는 생존을 향한 본능적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충분한 토론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공간은 카톡과 더불어 개별화될 수밖에 없었던 문명의 구조적 현실태에 종속되어 있었고, 절대적 권위에 대한 물리적 순응만이 그들의 행위를 지배했다.

 

앞서 지방선거를 예견한 언론인이 헌법 수호를 운운했지만, 헌법이라 하는 것도 필요에 따라서는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헌법 수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헌법도 수정될 수 있는 것이어늘 “가만히 있으라”는 마이크 소리가 개정의 대상일 수는 없겠는가? 생존의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탐색대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긴밀한 상황연락을 취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요번 6·4 지방선거는 “가만히 있으라”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기존 세력의 역사몰이 전체에 대한 응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순결한 단원고 학생들은 우리 시대의 교육이 저지른 죄업의 희생양이었다.

 

보수는 표가 갈리고 진보는 단일화되었기 때문에 진보가 이긴 것이 아니다. 보수를 표방하는 교육감들의 정책방향이 근원적으로 불성실하고 이 땅의 자녀들을 사지로 휘몰고 있다는 불안감이 국민들의 일반정서를 각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보교육감들의 정책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나 요구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진보교육감들이 좀더 성실하고 신중한 느낌을 준다는 것, 그리고 보수교육감들의 정책이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는 마당에는 진보세력에게 일단 기대를 걸고 보자는 애절한 마음이 작동되었던 것이다. 17명의 교육감 자리 중에서 13석을 진보세력이 차지했다는 것은, 내가 단언하건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보다도 더 큰 역사적 의의를 갖는 사건이다. 더구나 노무현도 “바보”가 되고 말았던 부산과 경남 지역마저 진보교육의 정신에 겸허하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의 부마민중항쟁에 비견할 수도 있는 민중역량의 표출이다.

 

정치적 혁명이야말로 역사에서 강렬하게 표출되는 진정한 전변의 계기인 듯이 보이지만, 대부분의 정치혁명은 권좌의 인간들을 환치시키는 데 그치고 말 뿐이며, 교육혁명을 수반하지 않는 한 좌절로 끝나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서 정치혁명보다 교육혁명이 역사의 진로를 더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부형태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공동생활의 형식이요, 공유하는 경험의 양식이다. 교육받은 유권자 없이는 보통선거권은 의미가 없으며,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으면 국민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가질 수 없다. 민주와 교육은 한몸이며, 교육은 민주사회의 지표이다. 교육의 바른 방향을 주도하는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주체이며 정치권력의 구현자이다.

 

철학만 해도 그렇다! 철학은 존재론이나 인식론, 형이상학을 운운하는 한가한 소수의 게으른 담론이 아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모든 진리나 가치의 기준은 오로지 교육을 통하여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은 철학의 목적이며 소이연이다. 플라톤의 <국가>도 결국 이상국가 건설을 위한 교육론이며, 공자의 모든 철학도 교육의 방법론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다. 교육철학이 없는 철학자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상가가 될 수 없다. 교육철학이 인식론의 지평을 주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자녀의 교육에 관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란 공통된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방법론적 견해의 차이일 뿐이다. 체험의 공통기반이 없다면 애초로부터 싸움을 할 건덕지가 없다. 공통기반이 확보된 싸움은 자신들이 고집하는 방법론의 제약을 초극하는 전체적 비전을 획득할 때 해소될 수 있다. 모든 악은 스피노자의 말대로 부분적인 앎의 소산이다. 앎이 전체의 상에 도달하면 부분적 앎의 악은 사라지고 만다.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12)

 

진보와 보수를 갈라서는 아니되지만, 역사적으로 서양교육사에 흔히 논의되어온 양자의 입장을 일별해보자! 우선 인간을 규정하는 시각이 다르다. 인간 본성에 관하여 보수주의자들은 몸(Mom)이라는 인간의 총체적 사태를 교육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몸을 정욕이나 감정의 타락의 물질적 장으로 비하하고, 그 신체적 몸과는 구분되는 마음, 흔히 영혼이나 이성으로 불리는 특수한 측면만을 배양해야 할 고귀한 부분으로 고양시킨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은 몸이라는 총체적 사태에 대한 선악의 규정성을 거부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육체와 정신에 대한 선악적 규정성을 확고하게 전제하고 들어간다. 대부분의 기독교적 신앙의 소유자들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이원론에 빠지게 되며, 도심·인심을 운운하는 신유학의 주리론자들도 이러한 경향성을 노출한다.

 

인식, 즉 앎에 대한 시각도 달라진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성의 능력, 수학과 같은 연역적 추리활동을 계발하거나 이성의 추리활동을 도와주는 사실적 자료를 암기시키는 것을 학업의 고차적 원리로 간주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의 총체적 경험을 강조하며 귀납적 추리를 매 상황에 따라 학습시키며 자신의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진리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보수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이 절대적인 진리가 인간 앞에 선재한다고 본다. 절대적 진리는 결국 이성의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재하는 진리를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문명화된 세계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절대적이고도 초월적인 진리로 학생을 이끌어주는 것이 유일한 교육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절대적 진리는 없으며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기존의 진리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탐구의 과정이야말로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진리에 대한 상대론적·상황론적 관점이야말로 물리적 우주와 사회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실제적 사태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확실성의 성취를 추구하는 데 반하여 진보주의자들은 불확실성과 회의의 태도를 조장한다. 보수주의자들의 진리는 항구적인 데 반하여 진보주의자들의 진리는 역동적이다.

 

17명의 교육감 중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자리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한국 역사의 진보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더없는 기회인 동시에 더없는 위기상황이다. 진보교육감들이 “진보교육”이 과연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오직 기존의 악에 대한 혁신적 해체만을 진보교육으로 생각한다면, 보수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교육의 디시플린(규율)과 기강과 질서의 감각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진보교육”은 국민대중의 외면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그 추동의 구심력을 상실할 것이다. 보수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오히려 진보의 기대를 좌절시켰다. 그 죄과를 지금 우리는 10년이나 치르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진보교육감의 실정이 민중에게 또다시 오욕의 인상을 던져준다면 오늘의 기쁨은 이 민족으로부터 영원히 진보의 가능성을 앗아가는 비극이 될 것이다. 나 도올은 진보세력의 승리를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

 

 

2. 공부론

 

우리말에 “공부”라는 말이 있다. 이 “공부”라는 말은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을 생각할 때, 그 함의의 99%를 차지한다. 나의 자녀를 “교육시킨다”는 말은 “공부시킨다”는 말과 거의 같다. 나의 자녀에 대한 자랑도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해요”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를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일상언어의 가장 평범한 의미체계를 정직하게 밝히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것은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 공부 잘한다는 의미에 실제로 딴 뜻이 없다.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것은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뜻이고,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것은 서울의 몇몇 일류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우리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생각하고 저 현묘한 허공에 무한히 펼쳐진 갤럭시를 생각할 때, “공부”가 겨우 요따위 밴댕이 콧구멍만한 서울의 시공에 집약된다는 것은 감내하기 어려운 위선이요 치졸함이건만, 우리 5천만 동포의 현실적 가치관은 공부의 다른 의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공부의 본래적 의미를! 공부를 한자로 쓰면 “工夫”가 된다. 이것은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 자형에서 “공장 인부” 정도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런데 이 “工夫”는 우리 현대어에서 실제로 영어의 “to study”라는 말과 상응한다. 그 라틴어 어원인 “studēre”도 “학문을 한다”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습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 개념적 지식의 한계를 넓힌다는 뜻으로 인간 이성의 확충이라는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엘리트주의적 함의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동양 삼국의 서양언어 번역이 일치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스터디”의 번역어는 일본에서는 “벤쿄오스루”(勉強する)로 되어 있고, 중국어에서는 “니엔수”(念書)로 되어 있다. 일본말의 “벤쿄오스루”는 “억지로 힘쓴다”는 뜻이니, 사실 공부라는 것이 억지로 해야만 하는 괴로운 것이라는 매우 정직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니엔수”는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스터디”의 실제 행위 내용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선비를 “뚜수르언”(讀書人)이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스터디”의 번역어로서는 일본어나 중국어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만이 유독 “공부”(工夫)라는 요상한 자형을 선택했을까? 일본어나 중국어에는 “공부”라는 말이 없을까?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스터디”와는 거리가 먼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일본어의 “쿠후우스루”(工夫する)는 “요리조리 궁리하고 머리를 짜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중국어의 “工夫”는 그것을 과거의 웨이드자일시스템으로 표기하면 “kung-fu”가 되는데, 그것을 그냥 표기된 영어로 발음하면 “쿵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중국말의 공부는 이소룡이나 견자단이 펼치는 “쿵후,” 즉 무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공부”의 원의는 사실 중국어의 “쿵후”가 보존하고 있는 의미를 계승한 것이다.

 

“工夫”라는 글자는 선진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당나라 때 고승들의 어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당대에 이미 구어로서 정착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工”은 “功”의 약자이고, “夫”는 “扶”의 약자이다. “工夫”는 “功扶”를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도와서(扶) 공(功)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성공한다”는 말도 단순히 “출세한다”는 뜻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공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공을 이룬다”(成功)는 말을 신체의 단련을 통하여 어떤 경지를 성취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한국인의 다양한 무술적 성취야말로 공부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공부”라는 개념을 가장 많이 활용한 사상가가 바로 신유학의 에포크를 마련한 주희(朱熹, 1130~1200)라는 인물이다.

 

주희는 그가 편찬한 신유학의 앤톨로지인 <근사록>(近思錄) 속에서 송학(宋學)의 선구자 정명도·정이천 두 형제의 사상을 표현하면서 “공부”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리고 그의 <어류>(語類)에서 그 자신의 독특한 수양론을 펼치면서 “공부”라는 말을 무수히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서양 언어인 “스터디”를 번역하는데 “공부”를 고집한 것도, 바로 우리나라가 정통 주자학의 완강한 전통을 연속적으로 담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백화적 표현에서 “꽁후우”(나의 씨케이시스템으로 표기한 “쿵후”)는 쿵후라는 좁은 무술의 개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 단련을 통하여 달성하는 모든 신묘한 경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선반공이 쇠를 정교하게 깎는다든가, 용접공이 철판 용접을 감쪽같이 해낸다든가, 서예인이 능란하게 붓을 휘두른다든가, 어느 학동이 암산을 귀신같이 한다든가, 도축업자나 요리사가 식칼을 자유자재로 놀린다든가 하는 것을 중국인들은 “他的工夫不錯”(그 사람, 공부가 대단하다)라고 표현한다. 희랍철학에서 덕(德)이라는 것을 “아레떼”(aretē)라고 표현하는데, 아레떼는 바로 칠예(七藝)의 모든 방면에서 한 인간이 신체적·정신적 단련을 통하여 달성하는 탁월함(excellence)을 의미한다. 공부와 아레떼는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옛 한석봉의 고사에서 한석봉이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모친이 어두운 밤중에 떡을 써는 장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모친이 도마 위에서 떡을 써는 것과 아들이 종이 위에 글씨를 쓰는 것은 동일한 “공부”의 경지로서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판소리 소리꾼들이 득음을 하는 수련을 “소리공부”라고 하는데, “갸는 공부가 되얏서”라고 내뱉는 소리꾼의 명제는 바로 “공부”라는 말의 원의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도덕”(道德)이라는 말을 서양말의 모랄리티(morality)에 해당되는 말로서 의식 없이 쓰고 있는데, “도덕”이라는 말은 본시 노자(老子)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은 도(道)와 덕(德)의 합성어이다. <도덕경> 51장에 보면, “도는 생(生)하는 것이고 덕은 축(畜)하는 것이다”(道生之, 德畜之)라는 함축된 명제가 있다. 도는 생생(生生)하는 천지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라면 덕이란 그 천지의 생생지덕을 몸에 축적해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이다. 그것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교육이란 축적해 나가는 과정, 즉 덕(德)의 측면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도가 자인(Sein)이라면 덕은 졸렌(Sollen)이다. 축적이란 시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즉 교육이란 시간의 예술이다. 이것은 교육의 모든 주체가 철저히 시간성에 복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에는 “선험적 자아”는 부재한 것이다.

 

“공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어느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하여 “시간(짬) 있니?”라고 말하는 것을 현대 중국어로 표현하면, “你有沒有工夫?”가 된다. 다시 말해서 “공부”는 디시플린(=아레떼)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간(時間)·틈(暇)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공부”가 반드시 시간을 요한다는 철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성의 선험적 구성이나 비시간적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축(畜)되어야만 하는 덕(德)이다. 그 덕이 바로 교육이요, 우리가 말하는 도덕(morality)의 핵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수의 산상수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 5:28) 생각만으로 이미 간음죄를 범하였다는 것인데, 사실 한 인간의 내면적 상상에 관해서는 우리가 측량할 길이 없다. 정죄란 그것이 사회적 행위로 표현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행동 이전의 사유에 대하여서도 도덕성을 요구하였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저 여자를 음탕하게 쳐다보는 것이 나의 몸의 요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저 여자를 음탕하게 쳐다보지 않는 것은 마음속에서 상상하고 지우는 관념적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몸의 공부(쿵후), 즉 몸의 단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을 통하여 공부를 축적해 나갈 때만 가능한 것이다.

 

퇴계의 말년 걸작인 <성학십도>(聖學十圖)에는 우주와 인간 전체가 상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명”(天命)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인간에게 명령하는 하늘, 인격적 주재자의 가능성으로서의 천(天)이라는 관념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천명, 즉 하늘의 명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퇴계는 명쾌히 대답한다: “천(天)은 리(理)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는 천(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위는 나의 책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늘은 곧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은 곧 리(理)며 성(性)이다. 나의 마음은 나라는 존재의 일신(一身)을 주재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주재하는 것은 경(敬)이다. 그래서 퇴계의 철학을 경의 철학이라 말하고 그의 교육론을 경의 교육론이라 말한다. 주희(朱熹)는 학자의 공부로서 거경(居敬)과 궁리(窮理)의 이사(二事)를 말했는데, 그는 암암리 이 양자가 호상발명한다고 말하면서도 궁리, 즉 객관적 사물의 탐구에 더 역점을 두었다. 퇴계는 거경과 궁리를 근원적으로 포섭하는 경의 철학을 확립하고 철저히 우리 몸의 내면의 본질을 파고든 것이다.

 

경이란 우리가 여기서 말한 “몸의 공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천명이 사라진, 이 지상에 던져진 고독한 인간이 스스로의 자각에 의하여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Process)인 것이다. 경(敬)은 우리말에서 보통 “진지함”(earnestness) “공경함”(reverence)을 뜻한다. 그런데 신유학의 독특한 용어로서는 일차적으로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의미가 된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가 하나에 전념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것이다. 경은 현대심리학에서 말하는 “어텐션”(attention)으로 환치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집중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집중력이야말로 모든 학습의 효율성을 지배하는 근원적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학생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의 양이 곧 공부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공부의 핵을 형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중하는 마음의 상태가 경(敬)인 것이다. 이러한 경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공부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사상사의 획기적인 분수령을 기록한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崔水雲, 1824~64)의 좌잠(座箴)에 이런 말이 있다: “나의 도는 넓고 넓지만 또 간략하기 그지없다.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별다른 도리가 아니요, 성(誠), 경(敬), 신(信) 세 글자일 뿐이다.”(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 성(誠)은 우주적 운행의 성실함(Cosmic Authenticity)을 말하는 것이요, 경은 집중하는 진지한 마음상태를 말하는 것이요, 신(信)이란 신험 있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수운은 제자들에게 성·경·신 이 세 글자 속에서 “공부”(工夫)를 할 것을 당부한다. 그의 <동경대전>은 “공부”라는 용어의 전통적 의미를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의 맥락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고 거시적 테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교육의 역사는 “공부의 역사”였던 것이다.

 

공부는 몸(Mom)을 전제로 한다. 몸이란 정신(Mind)과 육체(Body)의 이분법적 분할을 거부하는 인격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공부란 몸, 그 인격 전체를 닦는 것이니, 그것이 곧 “수신”(修身)이다. 공부는 몸의 디시플린을 의미하는 것이다. 몸의 단련이란 몸의 다양한 기능의 민주적 균형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어느 부분의 기능도 그 탁월함(아레떼)에 도달했을 때 가치상의 서열을 부여할 수 없다. 개념들의 연역적 조작에 영민한 학생이 수학을 탁월하게 잘하는 것이나 운동선수가 탁월한 신체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나 음악성이 뛰어난 학생이 악기를 다루는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을 동일한 가치의 “공부”로서 인정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몸”이라는 우주의 총체적인 조화로운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일어나고, 세수하고, 밥 먹고, 걷고, 생활하고, 독서하고, 놀이하고, 쉬고, 잠자는 모든 일상적 행위가 경(敬)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 진지함 속에 개인과 사회와 우주의 도덕성이 내재한다는 것을 교육의 원리로서 자각해야 한다. 자녀에게 성 모랄을 가르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 방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매사에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을 스스로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몸의 모랄을 깨닫게 하는 더 유용한 도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서구적 자유주의의 파탄을 넘어서서 우리 민족의 유구한 일상적 규율의 원리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3. 제도론

 

교육에는 진보·보수가 없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혁신교육감시대”로 규정한 것도, 교육감을 사소한 몇몇의 방법론적 기준에 의하여 진보와 보수라는 카테고리로써 분류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매사에 보수를 싫어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역사의 진보(the Progress of history)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적 사관이나 칼 맑스의 경제발전단계설적 유물사관류의 필연주의적 역사주의(historicism)를 거부한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 그 자체는 인간의 언어행위나 가치관의 소산인 “진보”라는 개념에 의하여 규정될 수 없다. 역사는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않는다. 역사에 진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보수”란 기존의 것을 보존하고(保) 지킨다(守)는 뜻인데, “기존의 것” 그 자체가 실체가 없을 뿐 아니라, 모든 보존과 지킴이 추구하는 안정(stability)이라는 것은 결국 서서한 퇴락과 몰락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퇴몰을 막는 유일한 길은 새로움(novelty)을 창출하는 것이다. 창신(創新)의 요소를 도입하지 않는 모든 조화는 정체된 죽음의 조화일 뿐, 곧 시들고 만다. 새로움의 창출, 그것을 일컬어 “혁신”이라 하는 것이다. 혁괘(革卦)를 보면 연못 한가운데서 불이 피어오르고 있다(澤中有火, 革). 그 얼마나 버거운 “타오름”이냐? 혁명이란 본시 이와 같이 불리한 조건에서 타오르는 것이다. 물에 금방 파묻힐 수도 있는 불길이지만, 결국 그 불길이 연못 전체를 들끓게 하고 만다. 그것이 혁명이요, 혁신이다!

“혁신교육감시대”라고 하는 것은 국민들의 정성의 불씨가 모여 지펴놓은 가냘픈 연못 속의 불길과도 같다. 그것은 이 시대의 필연적 존재론적 규정이 아니라 17명의 교육감의 정의로운 삶의 양식과 혁명적 사유가 주체적으로 창조해야 할 새로움의 당위인 것이다. 이 당위를 거부하는 어떠한 보수세력도 국민의 선의지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니깐 없애겠다구? 자멸의 망언일 뿐!

 

앞서 나는 보수 교육철학과 진보 교육철학의 진리에 대한 관점을 절대적·상대적, 고착적·역동적, 선재적·상황적인 시각의 차이로써 규정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선(善)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도, 불변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학생의 행동이나 습관 그리고 그 평가방식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선재적으로 전제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모든 가치는 시대의 변화와 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류의 욕구에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하며 영구적인 선악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학교의 존재이유에 관해서도, 이성주의적 입장에서 명료하게 규정하며, 가정환경이나 도제체제로써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집단적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으로써 자만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엘리트주의를 낳는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학교에 궁극적이고도 최종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는 없다고 보며, 그것도 지성의 개발보다는 전인발달이나 개인의 발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끝없이 전개할 수도 있겠으나 우선 우리는 한국의 현황적 맥락에서 “보수주의”니 “진보주의”니 하는 개념의 명료한 근거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정치에 과연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그렇다고 쥐뿔개뿔 진정한 진보가 있는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한국정치에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는 것을! 그럼 뭐가 있는가? 그것은 너무도 쉬운 얘기! 오직 기득권에 집착하여 개인의 부귀영달을 꾀하는 승냥이들의 완고한 집단만 있고, 그들의 폭압과 위압에 항거하여 그래도 다수의 민중이익을 방패막이로 내거는 투쟁집단이 있을 뿐이다. 자생의 이즘의 대결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에 있어서도 이즘의 대결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여태까지 “진보주의”라고 표현한 것은 영어로는 “리버랄리즘”이 되는데, 이 “리버랄리즘”은 보통 “자유주의”로 번역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유주의”라는 어감은 보수주의의 대칭이 아니라, 곧바로 보수주의의 이론적 보루가 되는 상황이 허다하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국가주의, 시장주의를 표방하는데, 그들의 국가주의는 보편주의적 가치기반을 무시한 철저한 개인의 이권주의·패권주의의 둔갑형태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는 국가는 기존의 이권얼개일 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민족주의를 결하며, 친미적 종속주의와 반공론적 분열주의를 결탁시킨다. 따라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개인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론적 함수를 나열하여 한국의 정치·교육상황을 범주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이 실체를 명료히 깨닫는 것은 실상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한국의 교육보수주의는 실상 입시교육주의이며, 입시교육에 성공적인 여건을 이미 보유한 기득권자들의 엘리트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엘리트주의의 실상을 깨닫는 데도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이 엘리트주의의 궁극적 근원은 일제식민지교육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가난하고 힘없고 부당하게 억압받던 일제식민지시절! 그나마 구한말로부터 시작하여 경술국치 이전까지 짧은 신교육의 각성기가 있었지만, 그 꿈은 산산이 좌절되었다. 독자적인 폴리테이아의 주체기반을 갖지 못한 우리 민중에게 있어서 교육을 받아 신분의 상승이나 확보를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확고한 길이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거나, 법대를 가서 법관이 되는 것이었다. 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일경에게 정치범으로 몰리지 않고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고, 법관으로 임관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면 일본인과 거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착각 속에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집요하게 만연하는 의대·법대병, 특히 경성제대 후신인 서울대에로의 집착병은 바로 이 식민지 멘탈리티의 완고한 연속태로써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식민지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독립을 가르치지 않고 영원한 의존과 굴종을 가르치는 것이다. 식민지교육은 식민지의 신민(臣民)을 가르치는 것이다. 누구든지 테라우찌(寺內正毅, 1852~1919: 육군 대장. 초대 조선총독)의 입장이라면 이 원칙을 당연히 고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독립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과연 교육이냐? 내가 기르는 닭을 보아도 병아리의 교육은 오직 병아리가 독립하도록, 다시 말해서 독자적인 삶을 스스로 살 수 있도록 환경과 싸우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최근 고교 사회과목에서 헌법지식과 독자적인 삶의 판단의 방법론을 강화하는 건강한 교과서를 만드는 커리큘럼 개선의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헌법을 학생들이 배워 헌법정신을 통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적 법률적 지식을 갖는 것조차도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세력에 의하여 그러한 노력은 좌절되었다. 역사교과서의 문제도 가급적인 한 다양한 역사해석을 가능케 하는 격조 높은 차원에서의 사관의 확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일제강점기의 모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저급한 역사기술을 강요하려 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우리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언어로써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민족의 독립을 두려워하는 식민지교육의 완고한 연속상에 불과한 것이다. 1886년 10월30일에 반포된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보라! 모든 학문적 성취와 덕성이 오로지 “천양무궁(天壤無窮)의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하는 것”으로 구조 지어져 있다. 그리고 뒤이어 이러한 진술의 내용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이며, 천황 스스로 신민(臣民)들과 더불어 실천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1968년 12월5일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은 거의 동일한 사상구조와 언어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교육이란 그 교육이 처한 역사가 체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적 상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교육은 인간형성(Human Building)이다. 빌딩에는 설계도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그 역사사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념의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희랍인들의 교육은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폴리스는 전쟁국가였다. 도시국가간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전사(Warrior)들을 길러내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한 커뮤니티 형태였다. 따라서 희랍의 모든 교육이념은 어떻게 이상적인 전사를 길러내느냐 하는 명제로 집약된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면 너무도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유에 치를 떨게 된다. 가혹한 몸 규율의 강요, 철저한 재산공유, 우생학적 목적을 위한 가족관계의 철저한 파기, 엄마·아버지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결혼은 완벽하게 국가가 조종한다, 애조풍의 리디아 음악이나 흥겨운 이오니아 음악이 금지되고 용기를 북돋는 도리아 음악, 극기와 절제를 자아내는 프리지아 음악만 허용된다, 시인이나 비극적 드라마는 추방된다. 이러한 괴이한 교육론도 그가 처한 아테네의 현실 속에서는 매우 리얼한 현실적인 이상이었다.

 

서양 중세사회가 지향한 인간상의 이념은 전사가 아닌 종교적 성직자였으므로, 그 교육철학도 중세보편성을 지향하는 종교교육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의 교육은 뿌리 깊은 중세기의 종교적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문주의적 전략(humanistic strategy)이었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귀족국가였다. 조선조의 교육철학은 바로 그러한 사회의 귀족관료를 수급하기 위한 군자(君子)를 길러내는 방편으로서의 철학이었다.

 

자아!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무엇일까? 전사일까? 성직자일까? 군자일까? 인문학자일까?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을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민주시민인 것이다. “시민”(市民)이란 무엇인가? 시(市)의 민(民)이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사람이다. 한마디로 “장돌뱅이”인 것이다. 장돌뱅이를 서구 역사학에서 “부르죠아”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상행위의 자유를 보장받기를 원하는 개체들이었다. 이 부르죠아가 프롤레타리아로 확대되고, 프롤레타리아가 20세기 민족국가에서 다시 국민으로 확대되어 오늘의 보편적 “시민”의 개념을 형성한 것이다.

 

이 시민의 개념과 더불어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개념이 “대중교육”(mass education)이다. 한 국가에 소속한 구성원 전체를 국가의 돈으로 집단적으로 교육시킨다고 하는 발상은 산업혁명의 고도의 발전과 그에 수반된 20세기 민족국가의 성립, 그 이후에나 성립한 인류의 새로운 체험이다. 1세기의 실험으로는 아직도 인류가 이 체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국방비의 2배 가까운 돈을 대중교육에 쏟아붓고 있다. 대중교육의 소이연은 대중사회 즉 민주사회의 균질된 인력의 형성, 그리고 평균적 가치의 보편화라는 테제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평균적 가치의 시민상의 핵심을 “자유”(libertas)로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오류이다. 민주는 오직 성숙한 인간의 관계망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도덕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민주사회 제1의 명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민의 제1의 덕성은 자유가 아니라, 협력이다.”(The primary virtue of a citizen is not freedom, but cooperation.) 자유는 소극적 가치이며 협력은 적극적 가치이다.

 

바로 시민사회를 형성해가는 주축수단인 대중교육의 소이연은 바로 “협력하는 인간”(homo cooperativus)에 있는 것이다. 시민은 개인의 모든 덕성을 포섭하지만, 반드시 협력을 전제로 해야만 시민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 협력이란 유기적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는, 칸트 미학의 과제상황이 시사하듯이, 부분들의 협력을 위하여 가설적으로, 유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대중교육의 구현체인 공교육의 장은 고등한 지능(high intelligence)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협력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제1원리를 우리는 끊임없이 환기해야 한다. 협력은 자기절제와 대의의 존중을 전제로 한다.

 

일제식민지교육의 폐해를 극복한 것은 우리 학생들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한 것이었다.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 5·18, 6·10민주항쟁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그들이 산 시대에 항거했지만 그 항거를 억누르려는 식민통치자의 후손들은 식민지배를 계속 강화해나갔다. 그 변통을 모르는 타락의 소돔과 고모라의 현장에서 민중 스스로의 각성에 의하여 솟은 불길이 바로 해공 신익희가 다닌 바 있었던 너무도 초라한 남한산초교에서부터 시작한 “혁신학교” 운동이다. “혁신학교”는 현재 우리 민족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희망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혁신학교”로 머무르면 안된다. 혁신학교의 모습이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전체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특목고·자사고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모든 공교육 하나하나의 교실이 다양한 사회 전체상의 축소판이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든 논의는 대학입시라는 막강한 벽을 놓고 생각하면 무기력한 공론처럼 들린다. 서울대학교가 엄존하는 한 중·고교 체제의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만약 공교육 전체가 혁신학교가 되면 역으로 대학입시가 저절로 중·고교의 요구에 의하여 규정되는 혁명적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대학이 고교의 모습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교의 교육체제가 대학의 정당한 모습을 요청하는 것이다. 서울대학은 학부가 폐지되고, 그 전체가 새로운 고등교육기관으로 승격되어야 하며, 전국의 국립대학이 국립서울대학 부산캠퍼스, 광주캠퍼스, 전주캠퍼스, 대전캠퍼스, 춘천캠퍼스……로 통합된다. 그리고 전국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사립대학의 3분의 1 이하가 된다. 그리고 교수들에게는 정당한 재원이 지원되며 주기적으로 각 캠퍼스를 따라 이동되며 대학을 평준화시킨다. 그리고 학생은 통합시스템 속에서 학점을 자유롭게 트랜스퍼할 수 있다. 서울시립대학이 반값등록금을 실천한 후 곧 선망의 대학으로 격상되어간 모습을 보라! 혁명은 눈앞에 오고 있다! 우리 민족의 밝은 앞날이 혁신학교의 장도와 더불어 같이 개벽되리라!


 

4. 교사론

 

인문학 르네상스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는 1학년 정원 35명 중에서 6개의 자리를 특별히 대안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배당한다고 한다. 처음에 3명만 받았다가 그들의 성적이 너무 우수하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있어 6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의 존재는 과의 면학 분위기를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색과 억압받지 않는 삶, 그리고 목전의 당면한 성취 스트레스에 오염되지 않은 여유로움을 지닌 어린 생령의 정신능력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한 토양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입학 내규가 국립대학 과 교수들 자체의 합의에 의하여 성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혁명은 바로 이렇게 로칼하고도 자율적인 작은 불씨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중·고교의 현실태가 대학입시에 영향을 주는 좋은 사례로서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성공회대학교에도 대안학교·혁신학교 출신들을 따로 배려하는 입학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엄선된 대안학교·혁신학교 출신의 우수학생들을 대학과 협의하여 추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앞서 시민의 제1의 덕성을 자유 아닌 “코오퍼레이션”(cooperation)이라는 영어단어를 써서 말했는데, 그것을 “협동”이라 번역하지 않고 “협력”이라고 번역했다. 협동이라는 단어는 전체우선주의에 의하여 개체가 말살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협력”이란 대등한 개체 간의 협조양식을 의미한다. 민주는 법질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자도 우리 인생이란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했고, 사회질서를 법으로 유지하게 되면 민중이 피하는 것만 배우고 염치를 상실한다고 했다(民免而無恥). 민주는 인간개체 내면의 덕성의 공통분모가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다.

 

여기 협력과 대극점에 있는 “자유”라는 말은 “freedom”의 번역술어이다. “自由”라는 단어는 선진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freedom”은 “free”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인데, “free”는 반드시 “from”이라는 전치사를 수반한다. 자유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반드시 “……로부터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 절대적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란 결국 억압으로부터 풀려날 때 느끼는 일시적인 느낌일 뿐이다. 이러한 일시적 느낌을 인생의 지고의 목표로 삼거나, 보편교육 즉 대중교육의 주제로 삼을 수는 없다.

 

인간은 자유에 탐닉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파멸을 가져오게 되거나, 향유하던 자유를 헌납하게 된다. 이 자유의 헌납이 인간이 사악한 종교에 굴종하게 되는 이유다. 인류가 자유를 처음으로 흠뻑 누리게 된 20세기 벽두에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창궐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일시적인 느낌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가? 물론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떻게? 존재모드를 자유에서 “자율”로 전환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자율(自律)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스스로 규율을 부과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주체이다. 욕망은 공생의 진리를 부정하는 강렬한 유혹성을 가지고 있다. 사적인 욕망에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법정 스님께서 그토록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 우리의 존재모드를 소유모드에서 무소유모드로 전환하는 것, 이 전환을 나는 “협력”(cooperation)이라고 부른 것이다.

 

칸트는 이 자율의 궁극적 원리를 나의 주관적 의지의 격률이 항상 동시에 모든 사람이 같이 지킬 수 있는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한다고 하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 두었다. 그리고 인간은 수단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목적의 왕국에서 같이 공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진보교육 즉 혁신교육이라는 것은 피교육자인 학생을 입시나 여타 사회적 경쟁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 자체의 인격을 목적의 왕국에 안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보교육의 원리가 왕왕 서구적 시장중심주의적 자유주의와 혼효되고 있다는 것을 나의 공부이론과 협력이론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이란 인간 존재의 소유모드를 근원적으로 단절시키는 “무아”(無我, anātman)의 철학적 배경이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유란 쉬운 것이나 자율이란 어려운 것이다. 자율이란 반드시 “교육”을 통하여 달성되는 “교양”이며 이 교양의 집합을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civilization”이라는 단어는 “civilized”(교양 있다)라는 단어와 상통하며, 시민(civitas)이라는 말과도 어원이 상통한다. 시민, 교양, 문명, 협력, 무아가 결국 동일한 가치관의 내재적 맥락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주의교육이 왕왕 자유주의로 오해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지상의 테제로 삼는 성향이 있다. 개체지상주의는 결국 방종으로 귀결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 미국 교육철학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의 리버랄리즘적 교육관의 계승자들이 시행한 교육방법론의 파탄은 미국의 공교육을 망쳐버리고 미국 사회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키는 데 공헌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듀이 철학이 역동적 과정을 중시하지만, 교육이 “과정 그 자체”에 대한 신화적 예찬에만 머물게 되면 아무런 목표설정이나 “휴먼빌딩”의 결실이 부재하게 된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초창기의 대안학교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던 제1의 이유였다. 어설프게 혁신교육을 외치는 자들이 흔히 말한다: 학생은 온전한 개체이므로 그 온전한 개체의 가능성이 스스로 발현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다. 말인즉 매우 근사하게 들린다. 그러나 학생의 현실태는 온전한 개체가 아니다. 학생은 교육받기 위해서 학교에 오는 것이다. 목가적인 에밀(Émile)의 체험을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온전한 개체라는 것은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설정의 이데아티푸스적 좌표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학생의 현실태일 수는 없다.

 

맹자도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 했고, 나는 성인과 동류(同類)라고 말했다. 그리고 왕양명의 제자들은 “길거리에 가득찬 것이 모두 성인이다”(滿街人都是聖人)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19세기 조선의 유자 최한기(崔漢綺, 1804~1877)의 말대로, 인간의 가능성을 말한 것이지 현실태의 승인은 아니다. 인간은 교육되어야 한다. 혁신학교의 자발성은 교육적 계기의 효율적 방법론을 말한 것이지 자발성 그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두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무아적 자기규율의 난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협력하는 인간”(homo cooperativus)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수행자가 바로 “교사”이다. 모든 낭만주의 교육, 열린 교육, 자유 교육의 낭패는 바로 교사와 학생을 완벽하게 평등한 개체로 설정하는 천진스러운 낙관주의에 있다. 나의 “공부론”은 이러한 낙관론을 거부한다. 모든 성공적인 대안학교·혁신학교는 자율적 규율성을 강조한다.

 

프랑스가 인류의 인문주의세계에 자랑하는, 세계지성계를 선도한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한 걸출한 교육기관으로서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라는 것이 있다. 앙리 베르그송, 에밀 뒤르껭, 사르트르, 보봐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 이 셀 수 없는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 한 교육기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경이롭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랑스 교육부 산하의 교육기관이 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하기 위한 “사범학교”로서 출발한 기관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프랑스에서는 중·고등학교 교사도 “프로페쇠르”(professeur)라고 부른다. 에꼴 노르말을 거친 사람들이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다가 논문을 써서 대학으로 가기도 하고, 또 대학에서 가르치던 사람이 고등학교 교사를 택하여 전근가기도 한다. 교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우리나라의 사범대학제도와 교사임용고시제도를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대학에 문리과 대학의 국문과, 물리학과와 사범대학의 국문과, 물리학과가 2원적 구조로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대학에서는 무전제의 순수학문을 전공하고, 교사의 임용은 대학원 레벨의 고등교육기관의 심오한 훈도를 받은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허락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서울대학교를 대학원 수준의 에꼴 노르말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 미래비전의 중요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새 질서는 당장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상황이므로 주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교육개선을 이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이지 학생이 아니다. 학생은 피교육자이며, 입학하여 졸업하는 과객(過客)이다. 객(客)에 대하여 주(主)의 자리는 선생이 지키는 것이다. 학교의 주체도 교사이지 교장·교감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교육개혁의 주체도 결국 교사이다. 교사는 교육의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교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없이는 우리는 교육개혁을 실현할 수 없다. 교육개혁이란 결국 교사가 학생들의 교육 그 자체에 헌신할 수 있는 존귀함의 입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학교를 학부형이 좌지우지하고 교사는 그 하수인인 꼴, 교장·교감은 교육청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하달하며 교사를 닦달하고 있는 꼴, 이것은 도무지 한참 잘못된 판국이다. <여씨춘추> 「존사」(尊師)편에는 중국의 모든 고래 성인이 스승을 존귀하게 섬기지 않은 자가 없었다(未有不尊師者也)고 말한다. 스승을 존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교사의 존엄성과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제고시키기 위한 현실적 개선방향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 테제를 제시한다.

 

첫째, 교사는 교육의 커리큘럼을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주체적으로 시험문제를 내고 자기가 채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성있는 교육이 가능해지는 첩경이다. 수학자·물리학자로서 20세기의 가장 완정한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수립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는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과정을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상황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문·과학교육의 기본여건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입시교육의 전체주의적 엄격성 때문에 그러한 권한을 교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둘째, 교사에게는 체벌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 교사가 체벌을 할 수 있다 없다 하는 문제가 법규적으로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인 것이다. 요즈음처럼 민주화된 사회에서 교사가 체벌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과연 체벌의 어려움을 감내할 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공부는 몸의 공부이며 교육은 몸의 교육이다. 말의 한계를 느낄 때 각성의 계기로서 체벌을 사용하는 것은 유용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단지 체벌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감정의 표출이 아니며 객관화된 제식(objectified ritual)이라는 것, 그리고 신체적 상해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체벌에 관해서는 학생들과의 자율적 약속의 전제가 있으면 그만이며, 시나 고전 구절을 외우게 한다든가 운동장을 몇 바퀴 뛰게 한다든가 하는 다양한 방법이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학부형이 학교에 항의하는 일체의 행위를 학부형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는 전반적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학생의 본질적 인권이 훼손당하는 중대사 이외로, 점수나 학교행정상의 사소한 문제에 학부형이 개입하는 행위는 차단되어야 마땅하다.

 

넷째, 교감·교장의 평가기준이 교사들의 창의적인 교육적 가치에 대한 기여도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현금의 교육개혁은 혁신학교 운운하기 전에 이미 교장 한 사람만이라도 위대한 인격체로서 교사들을 보호하고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모범을 보인다면, 학교분위기의 많은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장학사가 되기 위하여 일제식 관변주의사고의 악순환을 영속시키고 있는 교장의 행태는 정죄되어야 한다.

 

다섯째, 교육청 자체 내의 수많은 비리가 깨끗이 척결되어야 한다. 나와 대학동기인 이재정 교육감에게 나는 이런 말을 건넸다.
“여보게, 혁신학교에서는 교장을 공모한다는데 내가 한번 응모해보면 어떨까?”
한참 생각해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자격여건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당신은 나이가 많아 실격일 것 같구만.”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럼 한 3개월 공석을 메우는 기간제 교사를 신청해보면 어떨까?”
“그건 될 수 있겠는데. 암 되구말구!”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내가 한 말들을 차분하게 검증하고, 새롭게 “교육함”을 배워가는 체험을 해보고 싶다. 교사의 덕성은 <예기> 「학기」(學記)에 나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 「학기」는 말한다: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고, 지극한 도리가 앞에 있어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대함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가르쳐 보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교육의 곤요로움을 깨닫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연후에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교육의 어려움을 깨달은 연후에 교육자는 자신의 실력을 보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노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는 서로를 키운다!”


 

5. 회고와 전망

 

내 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맥락으로부터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라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의 모든 실천주의, 과정론적 참여주의, 그리고 요즈음 말하는 체험학습의 의미를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주체성과 그 존엄을 말하면서도, 교사라는 주체가 일방적인 주체가 아니며 반드시 학생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쌍방적·상감적(相感的)·융합적 주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선생과 학생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교감하는 생성태라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나는 분발치 아니 하는 학생을 계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나는 의심이 축적되어 고민하는 학생이 아니면 촉발시켜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한 꼭지를 들어 말해주어 세 꼭지로써 반추할 줄 모르면 더 반복치 않고 기다릴 뿐.”(不憤不啓, 不悱不發, 舉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이것은 공자 교학방법의 전모를 말해주는 명언인데,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계발”(啓發)이라는 말이 바로 이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자는 주입식의 교육을 강요한 적이 없고 철저히 계발식의 교육을 주장했다. 공자는 학생의 자학능력(自學能力)과 독립사고, 그리고 학생의 주동성(主動性)적 깨달음의 과정을 강조했다. 그 과정의 초기 단계가 “계”(啓)이고 진전된 단계가 “발”(發)이다. “거일반삼”(擧一反三)이라고 하는 것은 학생이 주동적으로 깨달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사문화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촉발의 계기를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맹목적이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움은 반드시 배우는 자의 반추적 사유를 동반해야 하며, 또 그러한 자기체험적 사색을 통해 배움의 계기 그 자체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학”(學, Learning)과 “사”(思, Reflection)는 변증법적 발전 관계에 있다. 교학상장이나 학과 사의 변증법은 공자 본인의 삶의 자세였다. 공자는 자기 인생을 총평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묵묵히 사물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싫증내지 아니 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하지 아니 하노라. 이것 외로 내 인생에 또 무엇이 있으리오!”(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공자의 교수방법을 나타내는 명언이 하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말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말이야,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단지 비천한 아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 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양단(兩端)의 논리를 다 꺼내어 그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 자세히 말해준다. 이래서 내가 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吾有知乎哉?無知也。有鄙夫問於我,空空如也,我叩其兩端而竭焉。)

공자의 위대함은 주입식 교육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학생이 아무리 멍청한 질문을 해도 그 질문의 긍정적·부정적 양극단의 가능성의 모든 스펙트럼을 드러내어 질문자 스스로 그것을 깨닫도록 만드는 “계발”이 그의 교육방법이었다. 21세기 혁신교육의 모든 가능성은 이미 공자에 구현되어 있었다. 공자는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계급적 차별의식이 없었다: “난 말이야, 누구든 육포 한 다발이라도 가지고 와서 예를 갖추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공자는 말한다: “가르치는데 류(類)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有敎無類) 이 “유교무류”라는 유명한 명제는 “오직 가르침만 있고, 류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공자는 교육에 인간 차등을 두지 않았다. 보편교육의 실천자였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논의가 주입식 교육을 저주하고 토론식 교육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주입”은 교육의 주요 방법이다. 주입하고자 하는 내용이 식민지교육·군사독재교육에 의하여 터무니없이 왜곡되었다고 하는 커리큘럼 비리에 대한 비판과, 주입이라고 하는 교육방법론의 가치를 혼효하는 오류는 허용될 수 없다. 주입의 효율적 방법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선생님은 초특급의 교사요, 위대한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다. 토론도 위대한 교사의 인도가 없으면 공허해진다. 교사의 능력 부족을 토론으로 위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생각에만 골몰하여도 보았으나 별 유익함이 없었다. 역시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공허한 토론, 공허한 사색은 말짱 황이라는 얘기다. 서구의 유수 대학의 대부분의 위대한 강의는 주입식이다. 학생들이 쓸데없는 질문만 남발하는 혼란스러운 강의는 저급한 강의로 폄하된다.

 

교사의 자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위대한 덕성이 있다. 그 첫째는 학생들에 대한 따사로운 인간적 사랑이다. 학생들을 인격적 개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상태에 이입(empathy)하는 정서적 폭을 갖춘 인격이다. 둘째는 자기가 소유한 지식과 자기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정당한 가치를 가급적인 한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분유시키고자 하는 지적 열정(intellectual ardor)이다. 주입은 그 위대한 방편이요, 토론은 주입의 평화롭고 효율적인 방법론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과목의 성격과 교실의 분위기, 학생들의 수용성과 지적 수준에 따라 상황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교육은 하나의 이념적 방법론에 치우칠 수 없다. 인간은 복합적이다. 교사는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가 아니다.

 

교사는 본래 개인이었다. 국가나 제도의 속박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도 혼자 걸어다니며 아테네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공자도 혼자서 교육의 텍스트를 만들어서 인류사상 최초로 사(士)라는 계급을 창출시켰다. 따라서 교사는 개인의 소신을 전하는 사람이지 국가의 이념을 선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도산서원은 이퇴계 개인의 소신을 전하는 곳이었다. 교사가 국가제도에 복속되고 프로파간디스트로 전락하게 된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모두 20세기의 민족국가(nation state)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종교와 지배계급과 국가의 전횡의 도구였다. 이 전횡에 맞서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 즉 후마니타스(hūmānitās)를 가르친 문명의 전사들이 교사였다. 모든 교사는 혁명가여야 한다. 국민의 의견이 획일주의적으로 통일되면 국가가 강해진다는 생각은 모든 우파적 성향의 꼴통들이 지니는 독단이다. 의견의 제일성(齊一性)은 국가 멸망의 첩경이다. 자유로운 토론과 다양한 견해의 수용, 개방적 정책의 운용만이 국가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인류의 역사는 예시해왔다. 생각의 제일성을 위하여 증오의 복음을 가르치는 종교나 국가나 개인은 필망한다.

 

공자가 그의 철학의 핵심을 “인”(仁)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자들을 평가할 때도 그 인격체가 가진 덕성의 장점을 허여하면서도, “그가 인(仁)합니까?” 하고 물으면 항상 “인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인”은 그의 세계관의 궁극범주(ultimate category)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仁)이 멀리 있다고? 내가 원하면 당장 여기로 달려오는 것이 인(仁)인데!”(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인(仁)에 당하여서는 선생에게도 양보하지 말라!”(當仁, 不讓於師) 선생과 학생의 관계에 있어서 공자가 얼마나 비권위주의적이었나 하는 것을 잘 말해준다. 바로 여기로, 바로 삶의 현장 한가운데로 달려오는 인(仁)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철학적 담론이 있으나, 나는 의사로서 다음과 같은 간결한 해석을 제시한다. “인”의 반대는 “불인”(不仁)이다. 그런데 “불인”은 신체의 마비현상을 의미한다. 느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은 행인(살구씨), 도인(복숭아씨), 의이인, 마자인, 욱리인과 같이 “씨”(seed)를 의미한다. 씨는 전 우주를 느끼는 생명이다. “씨”는 “느낌”(Feeling)이다. 이것은 서양 언어에서 감성을 뜻하는 “aesthetic”(aesthetics, 미학)이라는 단어의 부정태인 “anesthesia”가 “마취” “무감각”을 의미하는 것과 정확하게 상통한다.

 

“인”이란 결국 심미적 감성이 충분히 발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교육은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며, 문화는 아름다움과 인간적 정감에 대한 수용성(receptiveness)을 의미한다. 백과사전적 정보의 축적만으로는 교양있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요즈음처럼 정보가 난무하는 시절에 드라이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교육의 목표는 인(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인(仁)이 곧 인(人)이다.

 

나에게 있어서 교육자의 심상은 나의 엄마가 내 가슴에 그려놓은 것이다. 나의 모친은 무한한 호기심과 섬세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나의 엄마가 평생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신 이야기는 옛 천안 잿배기 가도에 칸트의 산보처럼 전해져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다. 왜? 엄마는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어나는 꽃의 동태를 전부 관찰하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엄마는 교회를 가지 않고 우리집 화단을 지킨 것이다. 어슴푸레 먼동이 트는 추이와 함께 3시간 동안 꼬박 꽃망울을 응시한 것이다. 내가 잠에서 눈을 떴을 때, “난 보았다!” 그 한마디 속에 성취된 엄마의 감성과 해탈인에 가까운 그 환한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학교 때 나는 풍세면을 지나 깊은 고을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폐찰에 가까운 광덕사에서 중노릇을 한 적이 있다. 공부한다고 들어갔다가 아예 머리 깎고 스님옷을 입고 염불을 외웠다. 몇 달을 지내고 집에 오는데 나는 삿갓을 쓰고 스님 복장을 입은 채 갔다. 나는 상당히 두려웠다.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변모한 나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순간, 엄마가 화단에서 꽃을 가꾸고 계셨는데, 순간 뒤돌아보시는 엄마의 낯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그 순간에도 단지 아들이 돌아왔다는 반가움에 활짝 웃음 지으셨던 것이다. 내가 무슨 옷을 입었든지 간에, 그것은 인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단지 “막내아들 용옥이”였을 뿐이다. 옷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셨다. 엄마는 내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때에도 단 한 번도 그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용옥이가 자각이 들어 그리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어라!”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날 교회에 나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양”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회초리와 더불어 <신약성경> <천자문> <격몽요결>을 암송했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용옥아! 너는 너보다 더 부귀한 인간들로부터 상찬을 들으려 하지 마라. 항상 너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라. 영원히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엄마는 영원히 이 민족의 미래만을 걱정하는 인간이었다. 과거의 사감에 사로잡힘이 없으셨다. 나는 생각한다. 학교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엄마의 품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에 관한 한 우리 민족은 지구상의 어느 민족에도 뒤짐이 없는 완미한 전통을 지녀왔다. 교육에 관하여 외국의 모델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전사를 길러내기 위하여 전체주의적 폭력을 조장한 플라톤의 교육론으로부터 출발한 서양의 교육사는 아직도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교육 전통은, 물론 조선의 과거제도와 그와 구조적으로 결탁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교육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의 국가주의에 의하여 왜곡되기는 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함장하고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문명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교육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908년 이후 사망)이 말한 화랑교육의 실상, 유·불·도의 다양한 이념을 배타 없이 수용하는 “풍류”(風流)라는 “현묘지도”(玄妙之道)로 복귀하는 영원한 테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은 “신성”(神聖: divinity)을 의미하며 “흐름”(流)은 실체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역동적 균형이다. 인간의 현묘한 신성(神性)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역동적 조화를 지향하는 몸의 흐름을 말한다.

 

어두운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와 같이 외쳤다: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가할진대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暗然)히 죽이는가!” 컴컴한 바닷속으로 스러져간 단원고의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나 도올은 마지막 한마디만 교육 담당자들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다: “혁신은 창조적 전진(creative advance)이다. 해체(deformation, deconstruction)가 아닌 형성(formation, construc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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