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땡볕 속에서 수락산(水落山, 637m)에 올랐다. 다행히 습도가 낮고 바람도 선선히 불어 무덥지는 않았다. 당고개에서 오르는 코스는 햇볕을 등지고 걸을 수 있어 따가운 햇볕도 피했다. 서울에 인접한 산이건만 산길에서 사람을 드문드문 만날 정도로 한적해서 좋았다.
수락산 정상은 근 20년 만에 오른 셈이다. 그때 탈서울을 기념한다고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서울 가까이 있는 모든 산을 섭렵했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산에 오른 과정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마치 처음 오르는 산 같았다.
북한산과 도봉산에 가려 수락산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이번에 그 매력을 한껏 접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암봉이 웅장한 멋진 산이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고양되면서 편안한 그런 산이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당고개역이었고, 학림사를 지나 도솔봉을 거쳐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른 후, 같은 경로를 따라 하산하다가 갈라져 수락산역으로 내려왔다. 나 홀로 여유있게 걸었다.
당고개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학림사(鶴林寺)는 아담한 절로 옷매무새를 여미게 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도시 가까이 있는 돈 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절이 아니었다.
수락산에서 보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전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전 직장에서 옆에 있던 동료는 책상 앞에 '무념무상(無念無想)'이라는 글귀를 항상 붙여 두었다. 그때는 사람이 어떻게 무념무상에 들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산길을 걸으며 그 동료가 문득 떠올랐는데, 무념무상이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니라 삿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소유를 소유하되 집착하지 않음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그런 경지마저도 어려운 일이겠으나 고맙게도 산길을 걸을 때 무념무상의 꼬리라도 살짝 건드려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미소 지어 보는 것이었다.
수락산의 바위들.
수락산 정상.
수락산은 바위산이지만 걷는 길은 대부분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그리고 바위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위압적이지 않고 부드러웠다. 북한이나 도봉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다른 코스로 해서 한 번 더 찾고 싶은 산이다.
* 산행 시간; 5시간 30분(12:00~17:30)
* 산행 거리; 약 9km
* 산행 경로; 당고개역 - 학림사 - 도솔봉 - 치마바위 - 철모바위 - 정상 - 도솔봉 - 학림사 갈림길 - 수락계곡 - 수락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