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전중환 교수가 쓴 책이다. 지은이가 인간의 뇌를 정의하는 한 마디가 바로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은 텅 빈 백지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인간의 뇌는 우리 조상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번식하게끔 해 주었던 행동지침들로 가득하다. 즉,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망치, 대패, 톱 같은 도구가 들어 있는 연장통과 같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의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된 수많은 심리 기재들의 집합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연장통'이 인간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인간의 뇌는 현대의 복잡한 사회생활이나 정보화 시대에 맞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백만 년이 넘는 오랜 살았던 아프리카 초원 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선택된 해결책들이 지금도 우리 뇌를 이루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 양식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진화심리학이다.
<오래된 연장통>은 도덕, 성, 음악, 종교, 동성애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리가 있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로서 진화적 시각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생존과 번식이야말로 인간 행동의 제일 동인이다.
책 내용 중에 꽃에 대한 인간의 애착이 나온다. 왜 우리 조상들은 진화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꽃에 매혹되는 심리를 진화시켰을까? 이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고든 오리언스에 따르면 꽃이 향후 몇 달 동안 이곳에서 유용한 자원을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꽃은 오래지 않아 이 자리에서 과일이나 견과, 덩이줄기 같은 음식물이 나게 되리라고 알려 준다. 뿐만 아니라 꽃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들도 찾아온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이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이런 진화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왜 그토록 꽃에 끌리고 매혹되는지에 설명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평소에 의아하게 여긴 점은 인간의 연약한 피부다. 다른 동물에는 다 있는 털이 없는 것이며, 더구나 부드럽고 약한 피부는 유별난 진화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기능만 따지면 당연히 털이 있고 두꺼운 피부를 가지는 게 맞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에게서 털을 없앴고, 인간의 살갗은 연해서 상처가 나기 쉽다. 책에서는 털이 없는 건 기생충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옹색하다. 털 없는 원숭이가 된 데는 옷을 입고 멋을 내게 된 것도 원인일지 모른다. 번식을 위한 성적인 매력도 관계될 수 있다. 그러나 쉬운 길을 마다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앞으로도 책 제목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말은 상당히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너무 이론의 틀에 맞추다 보면 억지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