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자유와 불안

샌. 2011. 6. 13. 21:54

얼마 전에 어느 보험회사에서 17개국을 대상으로 은퇴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항목 중에 은퇴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유라는 답이 가장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반 이상이 불안이라고 대답해 대조를 이루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도 은퇴라고 하면 자유와 행복, 만족이 우선 연상되었다. 비단 우리나라만 은퇴를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지루함 등의 부정적인 개념들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은퇴를 불안과 연관시키는 건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에서도 은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꼭 경제적인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퇴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할 일이 없어진다는 불안과 소외감이 돈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인지 모른다. 은퇴한 선배를 며칠 전에 만났는데 혼자서 산에 가는 것도 이젠 못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능력하고 비참하게 느껴져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넉넉한 연금을 받고 있는 선배가 돈이 궁색한 것이 아니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라면서 강조하는 것이 노후 생활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자금 마련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자면 젊었을 때 열심히 벌고 저축을 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뒤 돌아볼 여유도 없이 열심히 산 결과가 무엇인가. 인간의 내적 성숙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없다면 은퇴 후 일이 없어지면 무료하고 쓸쓸해진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일 없는 시간은 지루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그런 사람은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취미 활동이든 무엇이든 바쁘게 활동해야만 삶의 보람을 느낀다. 생활의 관성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은퇴는 결국 마음의 문제다. 월수입이 1/2로 줄어들면 욕망의 크기도 그만큼 줄이면 된다. 소득은 작아졌는데 사는 것은 옛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특히 일 욕심을 버려야 한다. 생존 수단으로서의 일이라면 어찌할 수가 없겠지만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의 일은 삼가는 게 옳다. 은퇴는 자신의 참된 모습과 대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러자면 의식적으로라도 일에 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는 게 낫다.

은퇴를 불안으로 여기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은퇴야말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겠는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밥벌이로서의 일에서 떠나 진실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때가 은퇴 이후의 삶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인의 과반수는 은퇴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식한다. 그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너무 바쁘게 달려왔다. 이젠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걷는 즐거움도 배워야 할 때다. 은퇴 이후의 삶이 더욱 그렇다. 그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날 때 은퇴는 복된 경험이 될 것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건 외적인 여건보다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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