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결혼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돌아보니 그동안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면목동의 단독주택에서 시작하여 며칠 전 광주로 이사한 것까지 포함하면 30년 동안에 열두 번이나 옮겨 다녔다[면목동-잠실동-가락동-장안동1-장안동2-문정동-성남-문정동-암사동-여주-구의동-사당동-광주]. 30년 동안 평균 2.5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 셈이다. 도시 유목민이라고 할 만하다.
열두 번의 이사 중에서도 이번이 제일 힘들었다. 전에는 이사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직장에 나가면 되었으나 이젠 내 할 일이 많아졌다. 나이 탓도 있어 몸살까지 났다. 집안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피곤해지니 짜증이 생기고 아내와는 티격태격도 자주 했다. 전세살이도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다양하게 살아보는 맛이 있다며 자위했지만 솔직히 이제는 이사를 하고 싶지 않다.
이사를 자주 다녔으니 웬만한 물건은 다 버려 단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버린 짐도 한 트럭이나 되었다. 여기저기 들어가 있던 살림을 꺼내놓으니 뭐가 그렇게 많은지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었다. 이사 전 날까지 버리고 이사 와서도 버렸다. 사람이 산 흔적은 쓰레기로 남는 것 같다. 특히 옷과 책을 많이 버렸다. 책은 전과 비교하면 1/3 정도로 줄었다. 그리고는 또 새로운 세간을 사들인다. 사람 사는 게 우습다.
여기 와서 대체로 만족하는데 위층에 사는 아이들의 소음이 걱정이다.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는 진동과 떠드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린다. 그런 소음이 있으면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예전에는 나도 아파트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웠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아이들이 뛰는 걸 나무랄 수도 없다. 공동생활의 에티켓을 얘기한들 먹혀들 것 같지도 않다. 참으며 살 수밖에 없지만 스트레스 받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다 글러 버렸다.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곳이 정착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유목민 생활이 좀더 길어질지 모른다. 그때는 사람보다는 나무와 흙이 더 가까운 곳을 택할 것이다. 외롭고 조용한, 가벼워서 홀가분한 곳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