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평상심

샌. 2016. 7. 19. 15:48

중국 바둑 기사 중에 스웨(時越) 9단이 있다. 1991년 생으로 나이는 이십 대 중반이다. 지금은 랭킹이 좀 떨어졌지만, 전에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 기사 킬러로 유명하다.

 

삼성화재배였던가 큰 번기 승부를 할 때 스웨 9단에게 기자가 물었다. 대국 사이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스웨 9단은 <논어>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기사가 스웨 9단이다.

 

스웨 9단이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 바둑의 본질은 무엇인가?

"<역경(易經)>의 논리가 바둑과 비슷하다. '변화'가 <역경>의 초점이자 바둑의 핵심이다."

 

- 마음에 남는 다른 책은?

"<논어>와 <도덕경>이다."

 

- 스스로를 '싸움꾼'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반면에 평상심도 강조했는데.

"바둑에서 기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형세판단인데, 그 밑바닥에는 평상심이 있다. 바둑은 싸움이라 마음이 격동되기 쉽다. 격동되면 집중력이 약해진다. 평상심 없이는 싸움도 없다."

 

- 바둑은 용어가 신랄하다. '두점머리 때리다' '젖히다' 등 용어를 볼 때 정적인 놀이가 아니라 동적인 놀이다.

"하지만 흑백 돌은 병정이다. 대국자는 장군이고. 그래서 정적인 게임이라 본다. '군막을 나서지 않고 천리를 내다본다'는 말이 있잖은가."

 

- 평상심에 다다르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마음을 훈련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 명상을 말하는가?

"종교나 명상과 관계 없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되느냐, 그게 관건이다."

 

- 우칭위안(吳淸源) 선생도 수법에 앞서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우 선생의 거울 비유가 있다. '거울의 표면을 닦지 말고 내면을 닦아라'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잡념 없는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 마음에 새겨두는 글귀가 있나?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아니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뜻이 다르게 다가온다. 어느 하나를 붙잡아 말하지 못하겠다."

 

20대 젊은이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깊이가 상당하다. 스웨 9단은 바둑에서 평상심을 강조한다. 평상심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바둑을 두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마추어인 나도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그런 경지에 이른다면 바둑만이 아니라 인생의 고수이기도 할 것이다.

 

평상심에 다다르는 방법은 마음을 훈련하고 또 훈련하는 것이라고 스웨 9단은 말한다. 바둑 역시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되느냐의 문제다. 스웨 9단은 바둑을 통해 도(道)에 이르는 공부를 하는 것 같다.

 

요사이 젊은 기사를 보면 승부에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테크니션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 내면의 성숙보다는 기량이 우선이다. 국가 대표 훈련에서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견문이 짧아선지 모르지만 고전에 심취한다거나 본인의 철학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우리나라 기사를 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스웨 9단은 확연히 눈에 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장땡이 아니다. 어느 길로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둑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지 기(技)와 예(藝)는 겸비되어야 한다. 현대 바둑은 너무 기술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스웨가 말한 평상심이란 도(道)에 다름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평상심이다. 즉 상황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임을 뜻한다. 승패에 집착하게 되면 평상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부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바둑만이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살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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