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전에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네에서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전에 살았던 집이 좁아서 옆의 밭을 사서 아버지가 새집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꽤 번듯했던 집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거치면서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낡았고, 수리도 여러 번 했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마침 동생이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시며 살겠다고 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곧 이 집은 헐릴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할아버지, 부모님, 네 동생과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도중에 제일 먼저 집을 떴다. 그 뒤로 하나둘씩 떠나면서 오랜 기간 어머니 홀로 이 집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 연세도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니 부양할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었다.
삼형제가 모여서 어머니를 모시고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집과의 이별 의식인 셈이다. 나는 이 집에서 산 해가 3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어머니는 54년을 사셨다. 구석구석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 싶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시지만 속내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삶의 매듭이 있다. 어머니에게, 동생에게, 그리고 우리 형제들에게도 지금은 삶의 분수령이 되는 때다. 동생이 잘 모시기만 해 준다면 나도 어머니에 대한 염려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다. 생활의 변화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