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에 강릉에서 출발한 배는 12시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꼭 세 시간이 걸렸다. 양로원에서 단체로 온 노인들이 얼마나 배멀미를 하는지 세 시간이 고역이었다. 덩달아 아내도 막바지에는 여러 차례 토했다. 2박 3일의 울릉도 여행은 힘겹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쾌속선이기 망정이지 예전에는 1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는데, 울릉도 가기가 외국 나가기보다 더 힘들었을 게 짐작이 된다.
울릉도를 오가는 배 표만 예매를 했지 다른 것은 모두 현지에서 부딪치기로 했다. 먼저 숙소를 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터미널 안내소에서 조용하게 묵을 숙소에 대해 문의하니 '독도 호텔'을 추천해 주었다. 신축 건물에 시설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일박에 8만 원으로 다른 데 비하면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편안한 잠자리가 우선이었다.
원래 계획은 첫날 오후에 해상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를 일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객이 적어 운항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음부터 일정이 어긋났다. 비수기에는 정해진 운항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행남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저동항은 생각보다 넓고 현대식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기원까지 있는 걸 보니 도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울릉도 여행 하면 숙소와 먹을거리를 걱정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된 듯하다.
저동과 도동을 연결하는 해안 산책로는 산사태로 끊어져 있었다. 부득이 도동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 오면 예상한 것과는 어긋나는 일이 생긴다. 그게 여행의 재미일지도 모른다.
해안 절벽을 따라 만든 행남산책로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저녁 무렵이어서 사람도 없는 호젓한 길이었다.
같은 화산섬이지만 울릉도와 제주도는 너무 달랐다. 울릉도는 산과 바다가 바로 만나고 있다. 변변한 평지를 찾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다. 그래선지 주민들 인심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산책을 마치고 아내가 가고 싶어한 도동성당을 찾았다. 아내가 기도를 하는 동안 저물어가는 도동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둘째 날, 숙소 방에서 일출을 보았다. 십 년 전만 되었어도 알람을 해 놓고 일찍 일어나 바닷가로 나갔을 것이다. 이젠 그런 열정이 사라졌다. 그렇게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은 다 무엇이었던가. 정처없이 불어 흘러간 바람이 아니었던가.
나리분지까지 버스로 이동해서 성인봉을 올랐다. 9시부터 2시까지 다섯 시간이 걸렸다. 나리분지와 성인봉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셋째 날 오전에는 원래 독도를 가려고 했다. 전날 해운사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매진되었단다. 비수기인데 설마 만석이 될까 방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또 한 번 계획이 틀어졌다.
대신 내수전과 삼포 사이의 길을 걸으려고 아침도 거른 채 내수전으로 갔다. 내수전에서 식사를 할 요량이었는데 그것도 오산이었다. 식당이 전혀 없었다. 텅 빈 속으로 몇 시간 걸을 수는 없었다. 나오는 차를 얻어 타고 다시 저동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우왕좌왕이 되었다.
이런 변수를 없애려면 패키지를 이용하면 된다. 아무 신경 쓸 필요 없이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 대신 자유가 없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오래 머물 수도 없다. 나는 패키지의 꽉 짜여지고 표준화된 일정이 싫다.
아직 울릉도 일주도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내수전과 삼포 사이가 지금 터널 공사중이다. 내년이면 이 도로가 뚫린다고 한다. 비행장도 건설될 예정이라니 그때가 되면 울릉도가 더 붐비게 될 것이다. 편리해지는 대신 자연은 망가진다. 울릉도 같은 섬은 불편한 채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하드웨어가 완성되어도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면 반쪽 짜리밖에 안 된다. 이번 울릉도 여행에서 제일 안타까웠던 점이 주민의 불친절이었다. 가만 있어도 손님이 찾아오니 아쉬운 게 없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주민 소득의 상당 부분이 관광객으로 인하여 생기는 줄 안다. 비싼 물가는 어찌할 수 없다고 쳐도 서비스 마인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도에 못 간 대신 다시 도동성당을 찾았다. 아내는 성경 필사도 하고 묵상도 했다. 새로운 걸 보는 대신 익숙한 풍경과 다시 만나는 것도 괜찮았다.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어제 성인봉 등산으로 몹시 피로한 상태였다.
다시 행남산책로를 걸었다.
이 암석이 자가각력암(自家角礫巖)이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점성이 높은 용암이 경사면을 따라 흐르면 표면은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지만 내부는 여전히 뜨거워서 계속 흐르려고 한다. 이때 표면의 굳은 용암이 깨어져 생긴 작은 조각들을 클링커라고 하는데, 클링커와 용암이 뒤섞여 만들어진 암석을 자가각력암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암석 이름을 하나 배웠다.
해안 절벽은 침식 작용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불과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자세히 본 것은 행남산책로 주변 뿐이었다. 울릉도 전체 해안의 극히 일부분만 이번에 만났다. 앞으로 다시 울릉도에 올 이유는 충분히 있다.
식사는 네 끼를 식당에서 먹고, 나머지는 간편식으로 대체했다. 정애식당에서 홍합밥과 따개비밥, 나리분지에 있는 늘푸른식당에서 산채비빔밥, 기사식당에서 오징어내장탕을 먹었다. 그중에서는 정애식당이 제일 나았다. 전체적으로 음식은 만족스러웠다. 처음부터 기대가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숙소는 불친절했다. 마지막 날 9시에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서너 시간만 배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예 절벽이었다. 저동터미널에는 물품보관소가 없었다. 개인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2박 3일 동안 울릉도에서 쓴 경비는 60만 원이었다. 배 값이 24만 원, 숙박비가 16만 원이었으니 2/3를 차지한 셈이다.
오후 3시에 저동항에서 강릉으로 출발했다. 저동에서 멀미약을 미리 사서 먹었더니 잠이 쏟아졌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에는 배멀미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다도 바람이 없이 잔잔했다.
이번 여행은 성인봉 등산이 주목적이었으므로 일차 목표는 이룬 셈이다. 그러나 울릉도를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주마간산이라고 해야 옳겠다. 만약 다음에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렌트카를 빌려 육로 일주를 하면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이번에 놓친 해상유람선도 타보고, 내수전과 삼포 사이 트레킹도 해보고 싶다. 울릉도와 안면을 텄으니 다시 가기는 훨씬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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