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새해의 노래 / 김기림

샌. 2018. 2. 17. 13:20

역사의 복수 아직 끝나지 않았음인가

먼 데서 가까운 데서 민족과 민족의 아우성 소리

어둔 밤 파도 앓는 소린가 별 무수히 무너짐인가?

 

높은 구름 사이에 애써 마음을 붙여 살리라 한들

저자에 사무치는 저 웅어림 닿지 않을까 보냐?

 

아름다운 꿈 지님은 언제고 무거운 짐이리라.

아름다운 꿈 버리지 못함은 분명 형벌보다 아픈 슬픔이리라.

 

이스라엘 헤매이던 2천년 꿈 속의 고향

시온은 오늘 돌아드는 발자국 소리로 소연(騷然)코나

 

꿈엔들 잊었으랴? 우리들의 시온도 통일과 자주와 민주 위에 세울 빛나는 조국.

우리들 낙엽 지는 한두 살쯤이야 휴지통에 던지는 꾸겨진 쪼각일 따름

사랑하는 나라의 테두리 새 연륜으로 한 겹 굳어지라.

 

새해와 희망은 몸부림치는 민족에게 주자.

새해와 자유와 행복은 괴로운 민족끼리 나누어 가지자.

 

- 새해의 노래 / 김기림

 

 

이 시가 발표된 1948년은 남북의 이념 대결이 시작되고 한반도가 혼란의 먹구름으로 덮이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70년 뒤인 올해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교류가 다시 열리고 현재 북 응원단이 강원도에 내려와 있다. 핵에서 비롯된 전쟁의 위험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여 다행이다. 1948년의 시인은 남북이 이렇게 70년 동안이나 갈라져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북에서 온 예술단이나 응원단을 보면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몸부림치고 충분히 괴로워했다. '통일과 자주와 민주 위에 세울 빛나는 조국'은 어디메쯤 오고 있을까. 무술년 설날에 함께 큰 목소리로 새해의 노래를 부른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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