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에 갖고 가서 읽은 책이다. 여행 중에는 바쁘고 피곤해서 책을 볼 짬이 나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로 읽었다. 대부분 곤히 잠 자는데 독서등을 켜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이긴 했다.
이 책은 우리 일상에서 쓰이는 속어나 은어를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의 겉뜻과 속뜻, 주석과 용례를 달았다. 사전처럼 딱딱하지 않고 유머러스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권혁웅 시인이 썼다.
<외롭지 않은 말>에는 77개의 말이 실려 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교회 오빠, 귀요미, 그림 좋은데?,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넘사벽, 늙으면 죽어야지, 다리 밑에서 주웠어, 루저, 먹방, 밀당, 빵꾸똥꾸, 사랑하니까 헤어지자, 삼삼한데?, 식당 이모, 심쿵, 썸, 아몰랑, 언제 밥 한번 먹자, 엄친아, 잠깐 쉬었다 가자, 지금 무슨 생각해?, 차카게 살자, 친구 누나, 호갱 등등.
유행가가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듯 이런 일상어가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실제 삶을 보여준다. 인간의 숨겨진 심리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알만 한 사람이....'라는 말의 설명은 이렇다.
알만 한 사람이....
<겉뜻> ("왜 그래?"와 함께 쓰여) 상대방의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질책함
<속뜻> 상대방이 보잘것없다고 무시함
<주석> "알만 한 사람이 왜 그래?" 선임이나 연장자가 훈계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저 말이 따라붙으면 후임이나 젊은이는 엉뚱하거나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한 사람이 된다. 저 말은 답변을 요구하는 말도 아니다. 질책이 아니라면 은근한 회유다. 회유일 때, 저 말 뒤에는 하여가(何如歌)가 따라붙는다. "세상 둥글게 살아야지.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모가 나서야 쓰나?" 요컨대 둥글둥글하게 살라는 거다.
사전에는 '상식'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나와 있다. 다시 '일반적'이라는 말의 뜻은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게 널리 걸치는'이란다. 요컨대 상식이란 그 집단이나 공동체에 널리 퍼진 관습이나 행동에 따르려는 생각이다. 논문 표절이 일반화된 사회에선 스승이 제자 논문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게 상식이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은 나라에선 식민 지배가 하느님의 뜻이 되는 게 상식이다. 그게 알만 한 사람들이 둥글게 사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알만 하다는 말은 '알 수 있는 수준에 있다'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달걀이나 메추리알만 하다는 뜻이다. "알만 한 사람이 왜 이래?"를 번역하면 '요 지름 3~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놈이 어딜 까불어?'가 된다. 난 타조알이야. 내가 너보다는 큰 알이라고. 그렇게 알로 된 몸을 알몸이라고 한다. 지금도 여고 앞에는 바바리로 서툴게 포장한 큰 알들이 굴러다닌다. 알만 한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그처럼 쉽게 벗는 것다. 욕망을 옷 대신 입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타인의 시선을 욕망했지만 알로 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욕망한다.
<용례> (1) 2014년 6월에 우리는 곡학아세, 일제사랑, 장교학생, 셀프임명, 나태민족 등의 이상한 사자성어로 대표되는 사람을 총리로 모실 뻔했다. 언론에서는 그의 이름에 빗대어 총리가 될 뻔한 사태를 '참극'이라고 불렀다.(그렇다면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다른 이가 대변인이 될 뻔한 사태는 '참중'인가?) 방송에서 본 그는 큰 탁구공 혹은 타조알처럼 보였다. 그의 항변은 정확히 이렇게 들렸다. "알만 한 사람이 왜 이래?"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알만 하지 않다고. 당신은 아무리 커고 큰 알이지만, 우리는 아무리 작아도 사람이라고. 난생설화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라고. (2)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머니가 자꾸 달걀을 사던 일을 기억하는가? 사랑방 손님이 달걀을 좋아한다고 한 이후다. 원작에는 없지만 영화(1961, 1978)에서는 식모가 임신한 일로 사랑방 손님(하명중 분, 1978)이 의심을 받는다. 범인은 달걀 장수(김상순 분)였다. 알몸이었으니 그럴밖에. 알을 들고 왔으니 그럴밖에.
촌철살인의 유머와 시사성 있는 소재로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비판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통념이나 고정관념에 대한 시인의 지적이 날카롭다.
왜 책 제목이 '외롭지 않은 말'일까? 일상어는 공허한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생한 현실의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말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삶은 일상어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 책은 일상어를 통해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읽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