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다르게 살아보기

샌. 2020. 3. 15. 12:38

"감옥살이하느라 죽을 지경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집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친구가 한 말이다. 워낙 바쁘게 돌아다닌 친구니 그럴 만도 하다.

"야, 이럴 때 좀 다르게 사는 방법을 배워 봐."

나는 친구와 달리 평소에도 방콕 형이다. 코로나19라 해도 별로 다른 게 없다. 오랜만에 큰소리칠 기회가 찾아왔다.

 

잠잠하던 우리 동네에도 확진자가 생겼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루가 지나니 동선이 공개되었다. 확진 판정받기 전 며칠간 그가 들린 장소가 시간대별로 상세히 드러났다. "뭘 이렇게 싸돌아다녔지?"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인데 분주하게 산 게 한눈에 보였다. 점심 00음식점, 저녁 00음식점, 00당구장, 00치킨집 등 상호명만 바뀔 뿐 매일이 비슷했다. 퇴근은 이른 시간에 하는 것 같은데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도대체 집에서는 아예 식사를 안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때는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과 차분히 지내면 좋지 않았을까.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저녁 시간이 주어진다면 과연 바로 귀가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일에서는 벗어나더라도 또 다른 놀거리를 만들고 결국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제도적으로 보장해 준다고 개인 삶의 패턴이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고 번잡하게 사는 건 아닐까.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돈을 번다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 시간을 쓰는 데는 인색하다. 70년대부터 잘 살기 위한 목표 하나로 일벌레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열심히 살아왔다. '바쁘다' '빨리빨리'는 한국인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은퇴한 이후에도 좀이 쑤신다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삶의 관성이란 그만큼 무섭다. 이젠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외식이나 다른 이와의 접촉을 삼가며 조심한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향한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선물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삶의 모습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조금 덜 소비하고, 사람들과 덜 만나고, 덜 돌아다니고, 대신에 자신과 가족과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다. 심심함과 친해지는 것이다.

 

뒷산에 오르면 코로나19 이후로 산길을 걷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었다. 전에는 서너 사람 만나는 게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수십 명을 만난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많다. 사람이 북적대는 곳을 피하려고 가까운 뒷산을 찾은 것이다. 이 역시 코로나19가 가져온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복합 쇼핑몰이나 화려한 축제장보다는 이런 한적한 산길 걷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관성적으로 살아온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휘청이는 세계 경제를 볼 때 우리가 딛고 선 삶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 알겠다. 신천지라는 종교 단체의 실상도 확연히 드러났다. 우리에게 다르게 사는 방법을 성찰할 계기를 주기 위해 코로나19가 찾아온 건 아닐까. 세상만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코로나19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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