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철도원 삼대

샌. 2020. 12. 11. 11:43

삼대로 이어진 철도원의 삶을 그린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이 철도원 삼대이고, 그 아랫대인 굴뚝 농성을 하는 이진오 이야기가 현재 시제로 교차한다. 실제로는 사대에 걸친 노동자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는 노동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황석영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철도원 삼대>는 이진오의 농성 투쟁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작가의 현란한 글솜씨에 빨려 들어간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특히 주안댁과 신금이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안방에서 듣는 민담 같은 내용이라 정감이 간다. 이 소설에서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소설의 상당 부분은 일제에 저항한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철도원 삼대에서는 이이철과 형인 일철이가 활동하던 시대다. 일제에 협력하며 호가호위한 기회주의자들이 있었던 반면에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한 수많은 지사가 있었다. <철도원 삼대>는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사의 숨은 부분을 드러낸다. 역사의 진보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해방 후 정국에서 친일했던 자들이 요직을 차지한 채 대한민국이 시작된 건 불행이었다. 소설에서는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운동 조직을 와해시키고 이철을 구속, 사망케 한 최달영이 본명을 바꾸고 경찰서장이 되어 다시 빨갱이 사냥에 나서며 떵떵거리며 산다. 나라의 정기를 살릴 기회를 놓친 것은 우리 역사에서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다.

 

20년 넘게 일한 직장을 빼앗기고 이진오는 공장 굴뚝에 올라가 복직 투쟁을 한다. 노동자 사대로 내려온 현재 시점에서도 노동자의 신분 보장은 여전히 막막한 게 현실이다. 투쟁 400일이 넘어 굴뚝에서 내려오긴 했으나 기업주는 약속을 외면한다. 다시 굴뚝에 올라가야겠다는 후배의 다짐으로 소설은 끝난다.

 

스케일 큰 황석영 소설을 <철도원 삼대>는 보여준다. 작가의 화려한 입담을 즐기는 재미도 있다. 일본 강점기에 증기기관차의 기관사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 소설에서 생생히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앞을 흰 증기를 뿜으며 숨차게 지나가던 증기기관차며, 공부를 잘 했으나 집이 가난해서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의 모습이 소설의 장면과 자주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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