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젬병이지만 관심은 많다. 평생 사진을 업으로 삼고 일가견을 이룬 사람 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물론 직접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최건수 사진 평론가가 풀어놓는 사진 세상 이야기다. 따분한 사진 이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진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사진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직설(直說)이 따끔하다.
이 책 <사진 직설>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예술 사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다. 나와는 관계가 없지만 사진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읽은 효과는 있다.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사진은 사물과 나와의 대화다. 선생은 사진을 배우려는 한 스님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스님, 찍지 말고 관조(觀照)하세요. 그러면 보여요. 스님들이 왜 면벽을 하겠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벽도 십 년을 보면 그곳에서 삼라만상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니 조용히 관조하세요."
보일 때까지 기다리기, 그래서 사물과 내가 서로 통하게 되면 구도, 빛, 색깔, 형태가 한꺼번에 보인다고 한다. 왜 그게 아름다운지,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보인다.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햇빛이 소나기처럼 잘게 나뉘어 머리 위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잎들 사이로 흩어지고, 마침내 공기가 에메랄드빛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궁구할 때 멀리서 사진이 내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사진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명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에 구체적인 장소를 찾아야 한다. 촬영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곳, 반경 4km 이내에 있도록 선생은 권한다. 내가 사진가 흉내를 낸다면 그런 장소가 어디가 될까? 뒷산은 어떨까? 부리나무는?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난 뒤에 수도 없이 뒷산을 올랐지만 주로 소일거리였다. 뒷산이 하는 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 자격이 아직 안 된 것이다.
책에는 선생 본인의 작품도 몇 점 실려 있다. 그중에서 달을 소재로 한 '루나' 연작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을 예술처럼'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 본의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