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얼마나 되었나, 아직 다하지 않았구나
숱한 별 찬란하여 빛발을 쏟누나
깊은 산 깊고 깊어 가물가물 어두운데
아아 그대는 어찌 이런 산골에 머무는가
앞에는 범과 표범 뒤에는 승냥이와 이리
게다가 올빼미 날아와 곁에 앉는 곳
인생살이란 뜻 맞음이 귀한 법
그대는 어이해서 홀로 허둥대는가
나 그대 위하여 오래된 거문고를 타려 하나
거문고 소리 산만하여 슬픔이 밀려오고
나 그대 위하여 긴 칼로 검무를 추려 하나
칼 노래 강개하여 애간장을 끊으리
아아 슬프다 선생이여, 무엇으로 위로하랴
삼동 이 긴긴 밤을 어이 한단 말인가
夜如何其夜未央
繁星燦爛生光芒
深山幽邃杳冥冥
嗟君何以留此鄕
前有虎豹後豺狼
況乃鵬鳥飛止傍
人生百歲貴適意
君胡爲乎獨遑遑
我欲爲君彈古琴
古琴疏越多悲傷
我欲爲君舞長劍
劍歌慷慨令斷腸
嗟嗟先生何以慰
柰此三冬更漏長
- 夜如何 / 金時習
분위기상 이 시는 매월당이 말년에 쓴 작품 같다. 평생을 방랑과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 대한 울분은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책을 불태우고 아웃사이더의 길을 간 매월당 김시습, 지나온 세월을 회고하는 심경이 자탄(自嘆)으로 가득하다. 매월당이 노자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노자의 한탄도 이와 비슷했다. 시대와 인간세를 고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지 않을까.
"인생살이란 뜻 맞음이 귀한 법
그대는 어이해서 홀로 허둥대는가"
이렇게 읊은 매월당의 깊이에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나 역시 이 늦가을의 계절에 허둥대며 속을 끓인다. 고작 좁디좁은 족(族)의 문제로, 다시 위염이 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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