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밤이 얼마나 되었나 / 김시습

샌. 2021. 11. 23. 12:42

밤이 얼마나 되었나, 아직 다하지 않았구나

숱한 별 찬란하여 빛발을 쏟누나

깊은 산 깊고 깊어 가물가물 어두운데

아아 그대는 어찌 이런 산골에 머무는가

앞에는 범과 표범 뒤에는 승냥이와 이리

게다가 올빼미 날아와 곁에 앉는 곳

인생살이란 뜻 맞음이 귀한 법

그대는 어이해서 홀로 허둥대는가

나 그대 위하여 오래된 거문고를 타려 하나

거문고 소리 산만하여 슬픔이 밀려오고

나 그대 위하여 긴 칼로 검무를 추려 하나

칼 노래 강개하여 애간장을 끊으리

아아 슬프다 선생이여, 무엇으로 위로하랴

삼동 이 긴긴 밤을 어이 한단 말인가

 

夜如何其夜未央

繁星燦爛生光芒

深山幽邃杳冥冥

嗟君何以留此鄕

前有虎豹後豺狼

況乃鵬鳥飛止傍

人生百歲貴適意

君胡爲乎獨遑遑

我欲爲君彈古琴

古琴疏越多悲傷

我欲爲君舞長劍

劍歌慷慨令斷腸

嗟嗟先生何以慰

柰此三冬更漏長

 

- 夜如何 / 金時習

 

 

분위기상 이 시는 매월당이 말년에 쓴 작품 같다. 평생을 방랑과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 대한 울분은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책을 불태우고 아웃사이더의 길을 간 매월당 김시습, 지나온 세월을 회고하는 심경이 자탄(自嘆)으로 가득하다. 매월당이 노자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노자의 한탄도 이와 비슷했다. 시대와 인간세를 고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지 않을까.

 

"인생살이란 뜻 맞음이 귀한 법

그대는 어이해서 홀로 허둥대는가"

 

이렇게 읊은 매월당의 깊이에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나 역시 이 늦가을의 계절에 허둥대며 속을 끓인다. 고작 좁디좁은 족(族)의 문제로, 다시 위염이 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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