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22년 첫 뒷산

샌. 2022. 1. 16. 15:53

새해에 든 지 벌써 반 달이나 지났다고 푸념을 하는 동기에게 나는 속으로 한 마디 한다. 넌 참 재미나게 사는가 보다. 나에게는 새해의 시작이 한참 전의 과거로 멀게 느껴진다. "아직 반 달밖에 안 지났다고",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반 달이나'와 '반 달밖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생사에는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새해가 되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올 들어 처음 뒷산을 오르면서 탐, 진, 치(貪, 嗔, 痴)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나이를 더할수록 또렷해지는 어두운 그늘이면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다.

 

산길은 꼬불꼬불 이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온다. 꼭대기라고 여긴 곳이 눈을 들면 작은 봉우리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끝은 아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세상살이에서의 괴로움이 실존적 고뇌로 연결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번민은 인간을 한 발자국도 앞으로 이끌지 못한다.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이 선언은 명확하고 명쾌하다. 바울은 예수를 통해 얻게 되는 생명을 발견한 걸까, 창조한 걸까. 이런저런 상념이 산길 내내 따라붙는다.

 

 

능선을 따라 나란히 키를 맞추며 자라는 나무를 경탄하며 바라본다. 이 세상을 지탱해 나가는 생명의 질서가 아름답다. 

 

산을 내려와서 생각한다. 돈오(頓悟)는 신기루일 뿐, 인간에게는 점수(漸修)만 있는 게 아닐까. 탐진치는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인간의 숙명이리라. 하지만 절망하지 말지니 인간의 내면에도 나무들의 어울림 같은 생명의 조화가 있을 것 같다. 그 하나의 믿음만으로도 넉넉히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안천-칠사산을 걷다  (0) 2022.01.23
어머니한테 다녀오다  (0) 2022.01.21
고니와 놀다  (0) 2022.01.15
풍경(49)  (0) 2022.01.09
경안천에 찾아온 고니  (0) 2022.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