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66]

샌. 2022. 12. 24. 10:31

이틀 뒤면 해방절이자 무교절이었다. 대제관들과 율사들은 속임수로 예수를 붙잡아 죽일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축제 동안에는 안 됩니다" 하였다.

 

- 마르코 14,1-2

 

 

해방절(解放節)/유월절(逾越節)/무교절(無酵節)/파스카는 봄에 찾아오는 유대인의 명절이다. 기원은 유대 민족의 이집트 탈출과 관계있다. '탈출기'의 기록에 따르면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 탈출기 12,3-14

 

하느님이 유대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면서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린다. 그중 마지막인 열 번째가 이집트 모든 집의 맏아들과 맏배를 죽이는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초상 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아, 하느님은 너무 잔인하시다. 이때의 하느님은 부족신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라오는 이러다가는 이집트가 망하겠다고 판단해서 유대 민족이 이집트 땅을 떠나도록 허락한다. 해방절은 이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로 말 그대로 유대 민족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많은 유대인은 해방절을 예루살렘에서 맞았다. 대략 이 기간에 성전에서 희생양으로 바쳐진 양이 10만 마리나 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 수십만 명의 외지인이 예루살렘을 찾았을 것이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찾아온 때가 바로 이 해방절 기간이었다. 예수에게는 순수하게 해방절을 보낸다기보다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 자신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때까지도 제자들은 예수를 오해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떤 제자는 예수를 중심으로 군중을 선동해서 로마의 억압 체제를 뒤엎으려 했을 것이고, 어떤 제자는 예수가 세속 권력을 쟁취한다면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내심 죽음까지 각오한 듯 보이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어쨌든 유대교 지도부에서는 예수를 붙잡아 죽일 음모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대제관과 율사들은 예수가 기존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위험인물이라고 이미 판단했다. 두려운 것은 군중들을 자극해서 소요가 일어나는 사태였다. 그래서 해방절이 지나고 순례객이 떠나간 뒤에 은밀히 처리하려고 했을 것이다. 마르코가 쓴 예수의 드라마는 이제 클라이막스로 향해 간다. 마르코가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읽는 <마르코복음>에서는 고독한 인간 예수의 그림자가 어디서나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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