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67]

샌. 2023. 1. 3. 10:55

예수께서 베다니아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묵으시던 때였다. 음식상을 받고 계신데, 한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져와 깨뜨려서 향유를 그분 머리에 부었다. 그러자 몇 사람이 언짢아하며 서로 말했다. 

"왜 이렇게 향유를 낭비하는가? 이 향유라면 삼백 데나리온도 넘는 값을 받고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리고 그에게 화를 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냥 두시오. 왜 괴롭힙니까? 그는 나에게 좋은 일을 했습니다. 가난한 이는 주변에 늘 있게 마련이니 원한다면 잘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대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할 만한 일을 했습니다. 내 장례를 위해 몸에 향유 바르는 일을 앞당겨 했습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그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마르코 14,3-9

 

 

1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라고 한다. 300데나리온이면 유대인 가정의 일 년 생활비 정도 되는 큰 금액이다. 일부 제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도 있는데 왜 낭비하느냐고 언짢아할 만하다.

 

그러나 예수는 이 여인의 뜻을 존중해 준다. 인간의 삶에는 경제적 관점을 넘어선 더 높은 정신적 가치가 있다. 그녀에게 300데나리온은 이 가치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30년 전 대원각 요정을 운영하던 김영한 님은 당시 시가로 1천억 원이 넘는 재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면서 길상사를 여는 초석을 만들었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수천억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두 종교는 달라도 시공을 달리 한 이런 일화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을 넘어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해방절 기간 중 예루살렘 성 밖 베다니아에 있는 시몬의 집에 머물면서 낮에는 예루살렘을 다녀오곤 했다. 시몬은 나병환자였다. 당시에 나병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병으로 인식되어 있었고, 나병환자와의 접촉은 금지되었다. 예수가 이런 나병환자 집에 거처를 정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지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찾아오신 그분의 사랑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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