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68]

샌. 2023. 1. 13. 10:53

그런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가리옷이 대제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주기로 했다. 그들이 듣고 기뻐하며 은전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 하면 스승을 넘겨줄 수 있을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마르코 14,10-11

 

 

다른 복음서에는 '은전 30냥'이라고 나온다. 30냥의 값어치는 그리 큰 액수는 아니라고 한다. 과연 유다 이스가리옷이 돈 때문에 예수를 팔아넘겼을까? 그렇더라도 예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앞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의 수장을 배신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유다 이스가리옷 역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중심으로 유대 왕국의 부활을 꿈꾼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스가리옷'이 유대 지역에 있는 지명이라면 갈릴래아 촌놈들인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 이스가리옷은 유대 왕국 재건에 더 열성이었을지 모른다. 유다는 예수를 그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고, 예루살렘 입성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군중들도 메시아를 연호하며 예수를 환영했다.

 

그러나 예수살렘에서의 며칠을 지켜본 결과 예수의 언행은 기대와 영 딴판이었다. 예수는 무장봉기를 통한 혁명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느 순간 유다 이스가리옷은 예수를 통해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쩌면 예수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뭔가 충격적인 사태가 일어나야만 했다. 예수의 체포가 군중의 소요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와는 반대로 군중은 예수의 처형을 택했다. 모든 희망을 포기한 유다는 자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예수에 실망했다면 유다 이스가리옷은 조용히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예수의 죽음을 앞당긴 만고의 역적이 되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유다가 아니었어도 예수는 언젠가는 붙잡혀서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제자들도 결국은 모두 예수를 배신하는 행동을 했다. 열하나 중에서 끝까지 용감하게 예수 곁을 지키며 함께 할 제자가 없었다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베드로마저 얼마나 비겁하게 처신을 했는가. 인류의 스승들 중에 이토록 철저히 제자들로부터 곡해받고 버림받은 이는 예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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