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절 첫날, 곧 해방절 양을 잡는 날, 제자들이 예수께 여쭈었다.
"저희가 물러가서 당신이 해방절 음식을 드시도록 준비하려는데 어디가 좋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이르셨다.
"성 안으로 가시오. 어떤 사람이 물 항아리를 지고 마주 올 터이니 따라가시오.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해방절 음식을 드실 방이 어디냐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시오. 그러면 자리를 깔아 준비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상을 차리시오."
제자들이 성 안으로 가서 보니 과연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해방절을 준비했다.
- 마르코 14,12-16
유대인은 해방절/유월절 저녁에 함께 모여 희생양으로 잡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함께 양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누룩 없는 딱딱한 빵을 먹으며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건을 기념했다. 이것이 무교절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지 나흘째 되는 날, 해방절을 - 무교절 첫날 - 맞았다.
순례객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집의 방을 얻어서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해방절을 기념했는데 예수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예루살렘 인구 수보다 더 많은 순례객이 모이니 방을 구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방을 구하는 데 제자들은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예수의 심부름꾼 노릇만 한다. 복잡한 해방절에 큰 이층 방을 얻었다는 것은 그동안 성 밖 베다니아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머물며 왕래하던 예수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예수를 따르는 유력한 인물도 존재했다는 뜻이 될까. 어쨌든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이 내 눈에는 제자들의 무능함만 돋보인다. 나중에 스승에게 등을 돌리고 모두 도망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