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샌. 2023. 4. 16. 10:34

'동물의 왕국'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연계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아프리카 야생의 자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경쟁의 장으로 보인다.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개념도 잘못 받아들이면 자연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주변을 제압하고 최적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 책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해서 신선하다. '적자(適者)'란 강한 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는 것이다. 손 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 역시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가운데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다. 온갖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인간만큼 잔인한 종도 없다. 그러나 진실은 반대라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 같다가도 워낙 선입견이 강해선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지은이는 '자기가축화 가설'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자기가축화 가설에 따르면 늑대들 중에서 특별히 친화력이 높은 개체들이 인간의 주변으로 찾아오면서 스스로 가축화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늑대를 개로 길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야생 늑대는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개는 개체수가 수억 마리에 이르도록 생존에 성공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기가축한 종이다. 약 8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 시기에 나타났던 친화력이 높은 호모 사피엔스가 기술 혁명을 이끌며 번성하게 되었다.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자기가축화는 동물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두뇌를 발달시킨다. 호모 사피엔스의 번성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서로간의 친화력, 협력, 다정함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가축화는 외형과 생리 작용의 변화도 수반한다. 사람의 자기가축화 가설이 옳다면,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공격성과 잔인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과 함께 가축화에 성공한 개를 보면 주인에게는 충성을 다하지만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사납게 짖는다. 인간 역시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표출한다. 인간의 뇌는 타집단을 비인간화하며 적대시한다.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만 친화력을 느끼는 부산물이며 연민과 공감의 능력에 따르는 그림자다. 타자를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으로 같은 편에는 친절하지만 다른 편에는 잔인해진다. 친화력과 함께 적대감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이념 대립을 보이는 있는 현상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출현한 대안우파(극우 이데올로기 추종 집단)를 예로 든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회 지배 성향이나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집단을 혐오하거나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극도의 불관용을 보인다. 타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이중성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은이는 염려한다. 타자에 대한 접촉과 교류를 늘리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가축화에 성공한 인간의 다정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어둡다. 더 나아가 다른 동물 다른 존재들과도 더 큰 사랑과 공감을 나눌 줄 알아야겠다. 현대 사회의 여러 생태적 환경은 인간의 새로운 심리적 문화적 형질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 진화는 목적이 없는 과정이다. 미래의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썼다. 원제는 <Survival of the Friendliest>다. 책 뒷표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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