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샌. 2023. 5. 1. 10:22

2021년에 나온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이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바람의 말' '우화의 강' '갈대' 같은 시를 좋아한다. 시인의 부친이 마해송 작가이신데 어렸을 때 작가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커서는 아들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마종기 시인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6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수련의 시절을 거쳐 전문의가 되었다. 평생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했으며 은퇴 뒤에는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왜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에 사연이 자세히 나온다. 의사와 시인으로서 성공한 삶을 사신 유복한 분이지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글 곳곳에 묻어 있다. 시의 바탕도 이런 향수나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대표시인 '바람의 말'을 쓰게 된 배경 설명도 이 책에 나온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할 때 정치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제대를 하자마자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준비 안 된 미국 생활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귀국할 수도 없었다. 고국을 떠난 지 10년이 될 때에 한국에서 교수 자리가 나서 겨우 귀국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신문기자로 있던 동생이 북한 주민과 연락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해직되는 바람에 무산되어 버렸다. 좌절과 절망으로 울며 지낸 시기였다고 한다. 그때 태어난 시가 '바람의 말'이다. 내가 처음 이 시에서 받은 느낌은 상실, 체념, 위안 등이었다. 시의 한 부분이다.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무조건 가슴 떨리게 외로워야 한다." 시인이 말하는 시인의 조건이다. 한 줄의 시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만인의 입술에 회자되는 시구(詩句)가 아무렇게나 끄적거린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시인이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지금의 시인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도 담겨 있다. 이국 생활을 이겨낼 힘을 음악과 미술에서 찾은 것 같다. 아마츄어 애호가의 경지는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시를 쓰는 영감도 여기서 얻지 않나 싶다. 이런 분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부러울 뿐이다.

 

마종기 시인은 시 뿐만 아니라 삶이나 인품도 훌륭하신 분 같다. 작품에서의 느낌이 시인의 삶으로 확인될 때 더욱 존경심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따스한 이야기를 통해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선한 마음을 접하며 위로를 받는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결이 바람 될 때  (0) 2023.05.14
더 크라운 & 더 퀸 & 스펜서  (0) 2023.05.07
어금니 깨물기  (0) 2023.04.24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0) 2023.04.16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0) 2023.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