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숨결이 바람 될 때

샌. 2023. 5. 14. 10:46

부제가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다. 이 책을 쓴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보인 그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자 예일 의과대학원에 입학해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의사로서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던 중 암이 찾아왔다.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가 2015년에 사망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쓴 책이다.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아름다운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말에서 볼 수 있듯 폴 칼라니티는 의사로서의 소명 의식이 남다른 분이었던 같다. 문학 등 다른 분야에서의 재능도 뛰어났다. 암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는 투혼을 보였다. 다르게 보면 성취욕이 과한 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태도에서 성숙한 인격을 만난다.

 

그런 바탕이 된 데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글쓰기가 죽음을 앞둔 그를 위무한 측면이 상당히 강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노트북을 곁에 두고 있었는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다. 폴의 마지막은 아내인 루시가 기록했다. 폴은 육체적으로 무너져 가면서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차 있었다고 한다. 그의 희망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에는 폴 칼라니티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 온정, 관대함,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일찍 죽은 사람의 기록이어서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다. 그는 의사이면서 환자였다. 어느 순간 치료를 하는 사람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그는 마지막에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았다.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생을 마무리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책의 어느 부분인가에 나오는 '편안한 죽음이 꼭 좋은 죽음이 아니다'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책의 서두에 실린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의 글이 <숨결이 바람 될 때>가 전하는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

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

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

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

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

But steps to your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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