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병원에 안 가려는 이유

샌. 2023. 7. 4. 10:35

일주일 전부터 오돌토돌한 붉은 반점이 팔에 돋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퍼지더니 사흘째에는 다리에도 나타났다. 원인은 모르지만 두드러기인 것 같다. 우선 보기에 엄청 징그럽다. 다행히 간지러움은 심하지 않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 금방 낫겠지만 그냥 견디기로 한다. 며칠 더 고생하고 병원 신세를 안 지는 쪽을 나는 선택한다.

 

한 달 전에는 앞니 하나에 이상이 생겼다. 건드리면 아파서 양치질도 피해서 했다. 음식 먹는데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치과에 가는 대신 기다려보기로 했다. 날이 지나니 통증이 가라앉고 많이 진정되었다. 지금도 정상이 아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아마 치과에 갔다면 깔끔하게 임플란트를 하자고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이빨로 가능하면 버틸 수 있는 데까지는 견뎌보려고 한다.

 

눈과 손가락도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병원에 찾아갈 마음은 없다. 이만큼 나이가 들었으면 몸에 작은 탈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갈 밖에. 아내는 작은 병을 크게 키우는 미련한 짓이라고 눈살을 찌푸린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몸의 자연치유를 믿지 않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가는 행위도 탐탁지 않다.

 

국가에서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을 안 받은 지도 꽤 되었다. 내시경 검사도 자주 하라지만 그것도 언제 했는지 까마득하다. 지난 번에는 장모님이 대상포진 백신 주사를 맞으라고 20만 원을 주셨다. 워낙 병원에 가려고 하지 않으니 강제로 맞히려고 한 것이다. 뒤에 장모님을 만났을 때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만 받고 뚱쳤으니까. 내 고집도 상당한 편이다.

 

병원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고 하지만 현대인은 너무 병원과 의술에 의존하지 않나 싶다. 일전에 읽은 유나바머 선언문 식으로 말하면 의료 산업과 시스템에 종속되어 버린 것이다. 병원에서는 주체적 인간이기보다 처치 대상이 되는 객체가 된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사고가 나에게도 일부 있기에 병원에 대한 소극적 저항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은 내 게으른 성품 탓이긴 하지만.

 

다른 하나는 의술이나 의사에 대한 불신이다. 병원 진료를 받았던 과거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처남이 의사여서 건강에 대한 얘기를 가끔 나누는데 의사가 병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실망을 한다. 전공 분야에서는 지식이 깊을지 몰라도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의학 교육이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테크니션만 양산하고 있지는 않는지 회의가 든다.

 

현대는 건강 상식의 과잉 시대다. 너무 많은 정보가 도리어 진실을 왜곡한다. 하루에 얼마를 걸으라느니, 물은 얼마나 마시라느니, 커피가 몸에 좋으니 안 좋으니, 잠은 몇 시간을 자야 한다느니, 무슨 음식이 몸에 좋다느니 등 내가 볼 때는 온갖 헛소리들이 난무한다. 어떤 잣대나 표준에 나를 끼워맞추려는 것은 생명을 무시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각자는 자기 몸이 요구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단 것이 당기면 사탕이나 초콜릿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 물론 특정한 질병을 가진 사람의 경우 예외가 있다. 보통의 사람이 지나치게 건강 염려증에 사로잡힌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건강이나 수명은 일정 부분 하늘이 허락해준 영역이 있다. 주어진 지분을 인정하고 아웅다웅하지 않는다면 삶은 훨씬 여유로울 수 있으리라. 의술이 인간의 삶을 향상한 건 사실이지만 너무 의존하게 될 때의 위험성에도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나는 일흔을 넘겼으니 살 만큼 산 셈이다. 검진을 소홀히 하고 병원을 멀리한 대가로 큰 병이 불시에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갈 때가 되면 가야지 어떡하겠는가.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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