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을 보면가슴이 뛴다. UFO, 우주인, 외계 문명 등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지적 생명체를 상상하면 더욱 그렇다. 우주의 나이가 120억 년이나 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수의 별들이 있는데, 우주의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논리는 지극히 타당하다. 생명 발생이 지구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도리어 이상하다.
그러니 우주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문명으로 발전시킨 존재가 있을 것이고, 그들은 성간 여행을 했을 것이고, 은하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우주 공간에서는 그들이 통신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어디 있지?" 논리적으로는 그들과 접촉해야 마땅한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걸 '페르미의 역설'이라 한다.
스티븐 웹(Stephen Webb)이 쓴 <모두 어디 있지?>(Where is Everybody?)는 '페르미 역설'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견해와 논쟁을 소개하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무척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우주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이만큼 논리정연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안내서는 보지를 못했다. 모든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셋으로 나누어진다. 그들은 '여기에 있다', '있지만 아직 모른다', '어디에도 없다'인데 지은이는 이를 다시 50가지로 세분하여 설명한다.
그들은 여기 있다
풀이 1. 그들은 여기 있고, 스스로를 헝가리 사람이라고 부른다
풀이 2. 그들은 여기 있고, 인간의 일에 참여하고 있다
풀이 3. 그들은 여기에 있었고,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풀이 4. 그들은 존재하는데, 바로 우리다 - 우리 모두는 외계인이다!
풀이 5. 동물원 시나리오
풀이 6. 금지령 시나리오
풀이 7. 플라네타륨 가설
풀이 8. 신이 존재한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아직 의사소통이 안 된다
풀이 9. 별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풀이 10. 그들이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이르다
풀이 11. 여과이론 접근법
풀이 12. 브라스웰-폰 노이만 탐사장치
풀이 13. 우리는 태양 쇼비니스트들이다
풀이 14. 그들은 집에 머문 채....
풀이 15.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다
풀이 16. 그들은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듣는 법을 모른다
풀이 17. 그들은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주파수에서 들어야 할지 모른다
풀이 18. 우리의 탐사 전략이 틀렀다
풀이 19. 신호는 이미 자료 속에 들어 있다
풀이 20. 우리가 충분히 오랫동안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풀이 21. 모두 듣고는 있지만, 아무도 보내고 있지는 않다
풀이 22. 버서커
풀이 23. 그들은 통신을 원치 않는다
풀이 24. 그들은 다른 수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풀이 25. 그들이 부르고 있지만 우리가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풀이 26. 그들은 어딘가에 있지만 우주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이상한 곳이다
풀이 27. 갖가지 파국들
풀이 28. 그들이 특이점을 촉발했다
풀이 29. 구름 낀 하늘은 다반사다
풀이 30. 무수히 많은 외계 생명체가 있지만, 우리의 입자 지평선 안에서는 우리가 유일하다
그들은 없다
풀이 31. 우주는 우리를 위해 여기에 있다
풀이 32. 생명은 최근에서야 나타날 수 있었다
풀이 33. 태양계는 드물다
풀이 34. 우리가 처음이다
풀이 35. 암석형 행성은 드물다
풀이 36. 지속적 서식가능지역의 폭은 좁다
풀이 37. 목성들은 드물다
풀이 38. 지구에는 최적의 '진화 펌프'가 있다
풀이 39. 은하는 위험한 곳이다
풀이 40. 행성계는 위험한 곳이다
풀이 41. 지구의 판구조 체계는 유일하다
풀이 42. 달은 유일하다
풀이 43. 생명의 탄생은 드물다
풀이 44. 원핵생물-진핵생물 전이는 드물다
풀이 45. 도구를 만드는 종은 드물다
풀이 46. 기술 진보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풀이 47. 인간 수준의 지능은 드물다
풀이 48. 언어는 인간 고유의 것이다
풀이 49. 과학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이 제목만 가지고도 우주의 지적 생명체에 대한 논의의 흐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풀이와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풀이 17, 26, 27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풀이 5, 6, 12 같은 것도 무척 흥미롭다. 특히 '브라스웰-폰 노이만 탐사장치'는 자기복제 되는 자동기계다. 외계 문명은 은하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직접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동기계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기계는 행성에 착륙하여 미리 프로그램된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탐사장치들이 은하 전체를 식민지로 만드는데 대략 400만 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바로 외계에서 보낸 탐사장치의 결과물일지 모른다는 해석이 기발하다. 아주 먼 옛날, 어느 외계인의 탐사장치가 지구에 찾아와 생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생명 진화의 프로그램대로 인간으로까지 나아왔다. 그렇다면 결국 인류는 자동복제 기계를 만들어 우주로 진출하게 된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DNA에 내재된 명령일 뿐이다.
마지막 50번째 풀이는 지은이 자신의 견해다. 우리은하에 1조 개의 행성이 있다는 데서 출발해서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가능한 행성 수를 조사하자.
1단계. 은하에는 생명서식가능지역이 있다. 은하 중심이나 구상성단 등은 제외된다. 대략 전 은하의 20% 되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가능 행성 수는 2천억 개다.
2단계. 너무 밝은 O, B형, 너무 어두운 K, M형 별은 제외해야 한다. 태양과 같은 별은 대략 5%이므로 가능 행성 수는 1백억 개다.
3단계. 태양계 안에도 연속적 서식 가능 지역이 있다. 전체 행성의 0.1% 정도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 행성 수는 1천만 개다.
4단계. 그런 행성에서 생명이 발생할 가능성을 지은이는 5%로 보았다. 그러면 가능 행성 수는 5십만 개다.
5단계. 우주에는 어떤 재난이 일어날지 모른다. 20% 정도는 재앙이 의해 생명이 사라졌을 것이다. 가능 행성 수는 4십만 개다.
6단계. 생명 진화에 영향을 끼친 지구의 판구조체, 달의 역할은 무시한다.
7단계.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의 진화는 40개 중에서 하나 정도 일어날 수 있다. 이제 고등 다세포생물체를 보유한 행성은 1만 개가 남았다.
8단계. 고등생명체가 도구 사용이나 기술을 계속적으로 개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행성은 얼마나 될까? 지은이는 여기서 엄격한 체를 적용한다. 어떤 행성도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직 지구만 남는다.
결론은 '우리는 외톨이다'. 은하에는 수많은 생물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적 생명체는 오직 한 행성, 여기 지구에만 존재한다. 이 넓고 오래된 우주에서 우리가 외톨이라는 것은우울하고 쓸쓸하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먼 우주인 친구를 그리는 것은 상상일 뿐이다. 이것이 지은이의 풀이다. 이로써 '페르미의 역설'은 풀린 것일까? 아니다. 이 넓고 오래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이상하다. 각자가 이 역설에 대한 풀이를 만들어보는 것도 즐거운 지적 유희가 될 것이다.책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나는 이보다 더 슬픈 일을 생각한다. 만약 자의식을 지닌 유일한 동물, 우주를 사랑과 해학, 그리고 동정심의 행동으로 비출 수 있는 유일한 종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을 절멸시키고 만다면? 만약 우리가 생존한다면, 우리는 우리은하를 탐험해서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파괴한다면, 우리가 고향별을 떠날 준비를 끝내기도 전에 지구를 폐허로 만든다면..... 글쎄, 또 다른 종에서 진화한 한 생명체가 자신의 행성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모두 어디 있지?"라고 묻는 것은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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