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전쟁 언제나 끝나지. 빨리 끝나야 고향엘 갈 텐데." 때와 땀에 절어 새까만 감발을 풀며 그는 말했다. 부풀어 터진 그의 발바닥이 찢어진 이 강산의 슬픔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치고 더럽게 얼룩진 그의 몸에선 어쩌면 그의 두고 온 고향 같은 냄새가 났다 1950년 8월의 경안리 주막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우리는 같은 또래끼리의 하염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적의(敵意)는 없었다 같은 말을 쓸 수 있다는 행복감마저 있었다 고급중학교에 다니다 강제로 끌려나와 여기까지 왔다는 그 그에게 나는 또 철없이 말했었다 "북이 쳐내려오니 남으로 달아나는 길"이라고 적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고, 우리만 하염없는 얘기로 밤을 밝혔다 그리고 새벽에 그는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