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3

화장 안 하는 여자

두 달 전에 대만에서는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었다. 대만에서는 첫 여성 총통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대만 원주민인 파이완족 출신으로 1956년에 태어나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교수를 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 민진당 주석에 올라 이번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했다. 차이잉원의 당선에는 진보적 성향과 함께 그녀의 개인적 매력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차이잉원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소개였다. 사진을 보니 꾸밈없는 수수한 얼굴 그대로였다. 얼굴에서는 그녀의 강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화장 안 하는 여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려는 걸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남자도 강하고 씩씩하게 보이려 어지간히 애쓴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

길위의단상 2016.03.08

미국은 싫어

옛날에는 커피와 설탕, 크림이 따로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각자 적당한 비율로 타 마시면 되었다. 내 입맛에는 커피 한 스푼 반에 설탕과 크림을 각각 두 스푼씩 넣는 게 제일 적당했다. 지금은 편리한 믹스 커피가 나와서 비율을 고민하지 않고 뜨거운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 믹스 커피는 국민의 표준 입맛이 되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믹스 커피 애호가였다. 무조건 믹스 커피, 아니면 자판기 커피만 고집했다. 수십 년간 인이 박힌 달달한 맛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믹스 커피가 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하루에 두세 봉지 정도야 무슨 영향이 있겠냐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커피 취향이 바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설탕과 크림이 없는 커피를 마셔야 할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쓴 커피를 맛보면..

길위의단상 2016.02.20

알파고

지난주에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있었다. 구글에서 개발한 바둑 대국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 Go)가 유럽 챔피언인 중국인 프로기사 2단을 5:0으로 이겼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이세돌 9단과 대결한다. 컴퓨터가 이렇게 빨리 인간의 능력에 도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온 바둑 프로그램은 아마 3, 4단 수준 정도다. 어느 정도 바둑을 두는 사람은 컴퓨터와 게임을 하는 게 싱겁다. 그런데 알파고는 몇 단계를 뛰어넘어 프로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자기 스스로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면 앞으로 인공지능의 능력은 어떻게 발전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체스에서는 오래전에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 그러나 바둑..

길위의단상 2016.02.04

망국선언문

연초 경향신문에 손아람 작가의 '망국선언문'이 실렸다. '망국(亡國)'이 아닌 '망국(望國)'이다. 어둠이 짙어야 별이 더욱 빛나듯, 절망은 희망을 싹트게 하는 배경이다. 탄식이 깊어야 세상은 바뀐다. 늦게나마 글을 옮긴다. 망국(望國)선언문 어려운 한 해 보내셨습니다.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을 지옥으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미래의 몫으로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는 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종말을 확신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상상력은 최악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등 뒤로 멀어지는 모든 시점을 우리는 그나마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과거와 작별하고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는 조만간 이 순간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연초마다 마음을 들뜨게 하던 나긋하..

길위의단상 2016.01.28

할아버지도 필요해

여자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손주 보기다. 아내는 몸이 아프다 하면서도 손주만 옆에 있으면 생기가 살아난다. 울고 보채도 불평 없이 다 받아준다. 손주가 귀여운 건 마찬가지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두세 시간이 한계로 그 뒤부터는 손주라도 귀찮아진다. 빨리 가라고 눈짓을 하는 때가 잦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는 걸 보니 누구나 비슷한가 보다. 아내가 줄기차게 손주를 봐주려는 건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요사이 젊은이들은 제 새끼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한다고 혀를 차면서도 무엇이든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다. 딸이 먹을 반찬을 준비하는 것도 일 중 하나다. 남자라면 도저히 그렇게 챙기지 못한다. 제 자식을 향한 여자의 본성은 감탄스러운 데가 있다. 귀여워는 하지..

길위의단상 2016.01.21

2015년 과학사진

미국과학진흥협회에서 펴내는 에서 2015년의 과학 사진을 발표했다. 올해 잡지에 실린 사진 중에서 주목을 받은 10장을 골랐다. 어지러운 세상사 뉴스보다는 이런 소식이 더 반갑고 담박하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 출발해서 탐구와 연구를 통한 결과물은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품게 한다. 안다는 것은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아름답다. 1. 토성에 내리는 헬륨 비 다이아몬드에 레이저를 발사해 토성 내부에서 생기는 헬륨 비를 재현하고 있다. 2. 이상한 날개를 가진 익룡 중국에서 발견된 익룡 '이치'의 상상도로 현생 조류의 조상이다. 박쥐처럼 깃털이 없는 날개를 가졌으며, 비둘기 정도의 크기다. 3. 먹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북극곰 지구온난화로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회색곰과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길위의단상 2015.12.31

WR124

우주에는 온갖 종류의 별들이 모여 산다. 그중에서 울프-레이예(Wolf-Rayet) 별이라 불리는 매우 극적인 삶을 사는 별이 있다. 울프-레이예는 태양 질량의 20배가 넘는 거성으로 뜨겁고 격렬하게 에너지를 방출한다. 표면 온도가 수만 도에 이르는데 거센 항성풍이 별의 물질을 우주로 흩날린다. 손실량이 태양의 10억 배나 된다. 그래서 별의 수명은 수백만 년에 불과하다. 보통 별 수명의 천분의 일밖에 안 된다. 사람으로 치면 한 달도 못 사는 셈이다. 울프-레이예는 별 중에서 가장 굵고 짧게 산다. 최후는 장렬한 초신성 폭발로 막을 내릴 것이다. WR124는 울프-레이예 별에 속한다. 별에서 날아간 물질들이 별 주위에 성운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초속 수천 km의 속도로 팽창 중이다. 성운의 지름은 6..

길위의단상 2015.12.21

헬조선인 이유

올해의 유행어에 '헬조선'도 후보에 오를 만하다. 한국에서 살기가 지옥 같다는 데서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이다. 어릴 때는 입시 경쟁에, 대학에서는 스펙 쌓기 바쁘고, 졸업해도 취직하기 어렵고, 그나마 직장인이 되어도 야근이 다반사다. 집 하나 장만하는 데 평생을 보내고, 돈 버느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는 현실을 '헬조선'이라는 말이 담고 있다. 돈 없고 빽 없는 보통의 청년이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갑갑한 나라다.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우리나라가 헬조선인 이유 60가지를 TV 뉴스 화면을 캡처해서 정리했다. 자막을 정리하면 이렇다. - 한국, GDP 대비 복지 비율 OECD 최하위 - 아이들 '삶의 질' 꼴찌 - 직장인 유급휴가 한국이 '꼴찌' - 한국 아동복지 지출 OECD 최하..

길위의단상 2015.12.15

이게 누구로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타계했을 때 그분의 어록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같은 명언도 있지만, 국민을 즐겁게 해 준 건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유머들이었다. 사투리 발음부터 직설적이면서 좀 모자라 보이는 말들이 화제에 올랐다. 그런 점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중 하나에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일화가 있다. 인사를 하며 "하우 아 유"라고 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후 아 유"라고 했단다. 당신 누구냐고 물었으니 황당할 수밖에. 나중에 YS의 변명이 걸작이었다. 경상도에서는 반가운 사람과 만날 때 첫 인사가 "이게 누꼬"라고 하는데 영어로 "후 아 유"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내 고향 말투로는 "이게 누구로"다. 반가운 사람과 만날 때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길위의단상 2015.12.05

노화 현상입니다

몇 달 전에 머리에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갔다. 영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자란다면 내년쯤에는 도깨비 머리에 달린 뿔처럼 될지 몰랐다. 망설이다가 피부과에 찾아갔다. 피부암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레이저로 지지면 된다고 했다.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었다. 왜 이런 게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의사 대답은 간단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초여름에는 눈에 멍울이 맺힌 걸 발견했다. 흰자위에 물방울처럼 생긴 게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색깔이 없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시력을 잃지 않는가 싶어 바로 다음 날 안과에 갔다. 불안한 내 마음과 달리 의사는 태평하게 말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보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

길위의단상 2015.11.23

2015년이잖아요

지난달 캐나다 선거에서 야당인 자유당이 338석 중 184석을 차지해 보수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보수당은 99석에 머물렀다. 부유층 증세, 난민 수용, 마리화나 합법화 등의 진보적 공약을 내건 40대의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를 이끌게 되었다. 트뤼도 총리는 새 내각을 구성하면서 30명의 각료 중 남녀의 수를 15:15로 맞추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트뤼도는 쿨하게 대답했다. "2015년이잖아요." 변화를 바란 캐나다 국민의 멋진 선택과 함께 파격적인 신임 총리의 행보가 무척 신선하다. 트뤼도의 내각에는 무슬림과 시크교도, 장애인, 원주민, 버스기사 출신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트뤼도는 이같은 내각을 구성하며 "캐나다와 닮은 내각을 구성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재작년에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 ..

길위의단상 2015.11.10

국정

'국정(國定)'이란 말 그대로 나라에서 정한다는 뜻이다. 일단, 나라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유신 때도 교과서를 국정화하면서 독재를 미화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서 가르쳤다. 이름만 국가를 내걸었을 뿐 실은 권력자의 입맛에 불과하였다. 역사상 수많은 민중의 희생이 국가 폭력 아래 자행되었다. 국가를 우상화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가는 역사 가치관의 기준을 정할 자격이 없다.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 역사 교과서가 잘못되어 있다고 본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재의 검정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검정 기준을 강화한다든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된다. 일본이 하는 방법이다. 일본은 비난하면서 더 나쁜 짓을 지금 정부는 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든다고 국정 체제로 가는 건 선친..

길위의단상 2015.11.07

제 분수도 모르고

작년에 아내와 에버랜드에 놀러 갔다. 이 나이에 놀이공원에 가는 게 마뜩잖았지만 오랜만에 신나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였다. 롤러코스터를 비롯해서 마구 흔들어주는 기구가 너무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성장한 뒤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은데 그림으로나 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다. 반대로 아내는 탈 것에는 질색이다. 예전에도 자유입장권을 끊으면 아내가 손해 본 걸 만회하려는 듯 나 혼자서 몇 번씩이나 타곤 했다. 에버랜드에 간 날은 소원대로 젊은이들 틈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안내원이 괜찮겠느냐고 묻길래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롤러코스터의 단점은 단 하나,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락만 한..

길위의단상 2015.11.02

어떤 인연

대학 시절에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친구가 있었다. 성격뿐만 아니라 공부나 노는 방식도 비슷했다. 전공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점도 닮아서 같이 고시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자연히 둘이서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시기도 비슷했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타과 여학생에 마음을 뺏긴 것이다. 속으로 애만 태웠던 나에 비해 친구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여학생이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에 가입해서 안면을 익히며 접근했다. 그러나 진도는 상당히 느렸다. 친구는 진행 상황을 수시로 나에게 들려주었지만 몇 달이 지나도 데이트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친구의 속앓이도 점점 깊어졌다. 내 코가 석 자이기도 한 나는 도움을 줄 위치에 있지 않았다. 하소연을 들어주고 술을 ..

길위의단상 2015.10.20

65에서 75 사이

9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형석 선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5세에서 75세 사이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걸 보았다. 오래되어서 선생이 든 이유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 역시 선생의 생각에 찬성한다. 어제 어느 방송에서는 인생의 절정기로 20세와 69세를 들었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어느 때를 돌아보아도 그 나이로서의 빛나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빛만 아니라 그늘 또한 존재한다. 청년기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고민과 번뇌의 어두운 밤이 함께 하는 시기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노인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싶지만 노년은 또 그대로의 멋과 재미가 있다. 육체는 쇠락해가지만 정신은 익어가는 감처럼 완숙해지는 시기다. 삶의 경험이 잘 발..

길위의단상 2015.10.01

그리니치 올해의 천체사진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주관하는 2015년의 천체사진 공모전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특수한 장비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보통의 카메라로도 찍을 수 있는 게 천체사진이다. 특히 지상의 풍경이 포함된 천체사진은 일반 카메라로도 충분하다. 요사이는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져서 웬만한 DSLR이면 ISO 감도를 높여서 은하수나 별 하늘을 넉넉히 찍는다. 이번에 수상한 하늘 풍경 부문 1등과 2등 작품이 좋은 예다. 이런 사진을 보면 가슴이 뛴다. 우리가 실제 보는 것보다 카메라는 몇 배나 더 아름답게 묘사해 낸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밤하늘을 찾아가고 싶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얼마만 한 열정이 필요한지를 알기에 감히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겠다. 젊음이 좋다는 건 앞뒤 재지 않고 우선 시도해 ..

길위의단상 2015.09.23

한 장의 사진(21)

중학생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열다섯 해를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부모님은 몇 달에 한 번씩 만났을 뿐, 십 대와 이십 대의 대부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주신 분이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철없던 그때는 당연하다고 여겼을 뿐 고마움을 몰랐다. 오히려 투정을 많이 부렸다. 내가 그 당시 외할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손주를 돌보는 게 얼마나 큰 고역인지를 안다. 나만이 아니라 동생 넷도 전부 객지에서 외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컸다. 사춘기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다. 외할머니는 백수를 하셨으니 장수하셨다. 우리 동네에서 백 세를 넘기신 분은 외할머니가 유일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치매에 걸려서 모시는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나는 아무 도움도 되어 드..

길위의단상 2015.09.06

마우스콘신

쥐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 그들도 4년마다 투표를 하는데 묘하게도 늘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그러니 쥐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마우스콘신의 법률은 고양이를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고양이가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쥐구멍 크기를 제한하거나 쥐의 속도를 규제하는 것 등이다. 쥐들은 다음 선거에서는 흰 고양이 대신 검은 고양이를 선출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고양이 언론에서는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게 당연하다고 선전한다. 마침내 한 쥐가 외쳤다. "이제 고양이를 뽑는 일은 그만두고, 우리의 대표로 쥐를 뽑자!" 쥐들을 박수를 치고 미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우스콘신'이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다. 우리 현실의 비유이기 때문에 무척 착잡하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늘 이 모양 이 꼴인 게 ..

길위의단상 2015.08.25

일본인의 친절

처음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제일 인상에 남은 게 일본인의 친절이었다. 일본인의 질서 의식과 청결, 남에 대한 배려와 친절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었지만, 막상 직접 접해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연극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고 친절했다. 당연히 우리와 비교되는 바였다. 어떤 때는 너무 하다 싶기도 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상황도 많았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울 것이지만 한국인인 나한테는 거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문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내리면 될 텐데 굳이 양보한다. 어찌 됐든 일본 민족은 경탄스럽다. 그런 습성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일본에서 배운 대로 며칠 전에 산에 갔을 때 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

길위의단상 2015.08.13

야쿠시마 여행 계획

닷새 뒤면 조몬스기를 보러 야쿠시마에 간다. 트레커 15명이 참가한다. 두 팀으로 나누어서 A 팀은 산장에서 숙박하며 산악 종주를 하고, 내가 속한 B 팀은 야쿠시마 숲 트레킹이 계획되어 있다. 5박6일 중 중심은 조몬스기를 친견하는 둘째날의 트레킹이다. 산길 20km를 10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야쿠시마 하면 조몬스기와 야마오 산세이가 떠오른다. 개인적 여정이라면 야마오 산세이 마을도 지나는 걷는 여행을 더 추가했을 것이다. 그래도 조몬스기가 포함되는 트레커 여행이 있어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이젠 날씨만 무난하길 바랄 뿐이다. 2015년 트레커 야쿠시마 여행 계획 ● 여행지 : 일본 가고시마 야쿠시마 ● 여행기간 : 2015.07.31 ~ 08.05(5박6일) ● 참가자 : 15명 ● 상세 ..

길위의단상 2015.07.26

관절은 누구 편일까

관절을 무척 조심하는 친구가 있다. 무릎 연골이 닳는다고 산에도 잘 가려 하지 않는다. 건강은 미리 대비해 두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등산을 즐기는 친구는 많이 사용해야 관절이 튼튼해진다고 열심히 걷는다. 하루 예닐곱 시간의 산행은 보통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무릎을 조심하는 친구는 사용하면 닳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아껴서 오래 쓰자는 주의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평생을 농사일로 무릎을 혹사한 어머니는 여든 중반이 되어도 넉넉히 밭일을 할 정도로 성성하다. 반면에 도시 생활을 한 장모는 무릎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지팡이가 아니면 걷지를 못한다. 무릎을 사용한 밀도로 치면 어머니가 장모보다 수십 배는 될 것이다. 오히려 장모는 운동 부족..

길위의단상 2015.07.12

입원실 유감

메르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어제까지 사망자가 19명, 확진자가 154명이고, 격리자는 5천 명이 넘었다. 첫 환자가 메르스 증상을 보인지 한 달 동안의 피해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하고, 교통사고로 20명씩 죽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하지만 전염병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의학에 무지하던 시절, 한 번 창궐하면 수백만 명씩 죽어 나갔던 전염병은 공포였을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전염성이 강해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병실 문화를 꼽는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고, 입원실은 방문하는 외부인으로 북적인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발생 전이지만 지난달에 열흘간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이 ..

길위의단상 2015.06.17

온몸으로 기뻐하기

7개월 된 둘째 손주가 있다. 태어나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배워가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게 된다. 아직 제힘으로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지만 저를 돌봐주는 사람은 알아본다. 얼마 전까지도 날 보면 무섭다고 울었는데 지금은 낯이 익었다. 가끔 만나도 처음에는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좋아라 한다. 그런데 아기가 사람을 반기는 모습을 보면 놀라운 데가 있다. 얼굴로 환하게 웃는 건 물론이고 입을 벌리면서 두 팔을 허공에 뒤흔든다. 좋아하는 마음이 온몸으로 드러난다. 기쁨이 전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작은 존재가 즐거움에 온전히 젖어 있는 걸 느낀다. 반면에 어른은 무엇이 좋다고 이렇게 환호하지를 못한다. 내숭을 떨기도 하고, 밀당의 줄다리기를 잘하는 비결을 배우기도 한다. 좋다는 감정에 ..

길위의단상 2015.06.09

한화 야구

4월 하순부터 집과 병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가까이하게 된 게 야구 보기다. 책도 옆에 두었지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소설책을 구하기 위해 신경 쓰기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야구 중계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서너 시간은 시름을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는 나도 팬이었다. 군사 독재 정권이 우민화 정책으로 시작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응원한 팀은 'MBC 청룡'이었고 김재박 선수를 좋아했다. 잠실 야구장에도 직접 구경하러 갔고, 운동장에서 선수가 던져주는 사인볼을 받기도 했다. 승부에 연연한 결과 응원하는 팀이 지면 속이 상해 성질을 부리다가 아내한테 지청구를 듣는 건 다반사였다. 그러..

길위의단상 2015.06.03

퇴원

폐렴으로 입원한 지 열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는 밤낮없이 잠만 자고 있다.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집에 오니 마음은 편하다. 병실 생활은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무슨 검사를 그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CT 촬영은 어쩔 수 없다 해도 ,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각각 다섯 번씩이나 받았다. 의사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래 오랜만에 병원 신세를 졌다. 병실은 3인실에 있었다. 독실은 부담이 너무 크고, 다인실은 신경 쓰이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두려웠다. 서로 생활 스타일이 다른..

길위의단상 2015.05.08

입원

폐렴으로 입원 닷새째, 생각지도 않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증세가 나타난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지며 음식을 삼킬 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집 가까이 있는 병원에 왔다가 바로 갇혀 버렸다. 다행히 여기 와서는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라면 나흘 뒤쯤에는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담당 의사가 말한다. 지금은 몸이 아픈 것보다 병실 생활 자체가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려니 참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은 병고에 시달리는 인생의 괴로움이 늪처럼 고여 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5월의 신록이 찬란하다. 그러나 그 품에 안길 수 없다. 당장은 아쉽지만 그래도 넉넉히 참을 만하다. 이 병이 낫고 다시 땅에 설 때 햇빛은 환하고 숲..

길위의단상 2015.05.01

흑사탕

환절기가 되면 계절앓이를 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다. 증상은 심신이 축 가라앉고 의욕이 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세상이 생기를 잃는다.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드디어 손님이 찾아오셨구나, 한다. 봄과 가을이 시작될 때가 심하다. 꽃이 피었건만 봐도 심드렁하다. 꽃을 보러 가자는 친구의 초청도 사절했다. 옆에서 아내는 걱정이 많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다. 연례행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손님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제가 지겨워지면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조바심치면 도리어 죽치고 버티는 성질이 있다. 모른 척하는 게 최고다. 이럴 때 생각이 나는 게 단 음식이다. 집 앞 슈퍼에서 좋아하는 흑사탕을 몇 봉지 사 왔다. 우울할 때는 달콤한 게 제일이다. 소파..

길위의단상 2015.04.01

다 한때인 걸

내 나이 즈음이 되면 손주 키우는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자식을 출가시키면 홀가분해질 줄 알지만, 손주가 태어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요즈음은 대부분이 맞벌이라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자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 사정 뻔히 아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공무원이면 육아 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지만 회사원은 다르다. 법적으로 보장되었다고는 하나 3개월 정도만 애기를 돌보라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눈치가 보여서 더 있을 수가 없게 한다. 출산율 저하를 걱정만 하지 말고 이런 걸 확실히 보장해 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여성 대통령이 당선돼서 기대했는데 나아진 것 하나 없다. 일본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충분한 육아 휴직이 보장되고, 지자체에서 돌보미를 지원해 주어 아기 기르기가 수월하다는 ..

길위의단상 2015.03.22

글쓰기

글을 쓴다는 건 바다를 '파도 공장'이나 '깊이 더하기 넓이'라고 멋을 부려 표현하는 게 아니라,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정철 씨의 책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비유나 수사는 곁가지일 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다.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면 된다. 진실은 힘이 세다. 진심이 담긴 글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글은 꾸밈이 아니다. 제 생각과 느낌을 들여다보고 진솔하게 기록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일기가 글쓰기의 본령에 제일 가깝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술수를 부릴 필요가 없다. 편안한 글쓰기가 가능하다. 블로그에 10년 넘게 글을 써 오고 있지만 자주 글쓰기의 뜻을 망각한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름..

길위의단상 2015.03.12

바둑과 당구

일은 재미가 없어도 해야 하지만 취미는 다르다. 취미의 속성은 재미다. 재미도 없이 억지로 하는 취미는 없다. 노년이 될수록 취미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맞다. 취미가 없다면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을 것이다. 아무리 취미라지만 욕심이 안 생길 수 없다. 실력이 느는 재미가 더해져야 취미도 내용이 알차진다. 취미에서 발전하여 전문가까지 된 사람도 있다. 취미도 건성이 아니라 심취할 때라야 도(道)의 경지에 가까워진다.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집착은 금물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근래 새롭게 재미를 붙인 게 바둑과 당구다. 바둑은 직장 다닐 때 3급으로 뒀다. 실제는 3급에서 약간 약한 편이었다. 퇴직하고 나서 모..

길위의단상 201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