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3

생때같다

사고를 보도하는 TV 화면 자막에 '생떼같은 자식'이라는 글자가 뜬 걸 보았다. '생떼'는 잘못된 표기로 '생때'로 써야 한다. '생때같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이) 몸이 건강하고 튼튼하여 병이 없다'로 적혀 있다. 사전에는 '생때'가 구체적으로 뭔지 설명이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제일 그럴듯한 해석이 '생때'를 '살아있는 대나무'로 보는 것이다. '생[生]'은 '살아있다'로 의미가 분명하고, '때'는 '대[竹]'가 된소리로 변한 것이다. 옛날 조선어사전에는 '생대같다'는 단어도 수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생대'가 '생때'로 경음화 되었다. 대나무는 성장이 빨라 하루에 수십 cm씩 자란다. 쑥쑥 성장하는 건강한 자식을 대나무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그러므로 '생때같은 자식'은 싱싱..

길위의단상 2014.04.28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방귀 뀐 놈이 오히려 성내는구나. 저 울그락불그락 화내는 꼴 좀 보소. 죄 없는 공중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란 말인가. 제 평생 한 짓이 그러한 줄 알겠구나. 네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티를 책잡아 오두방정을 떠는구나. 네 이놈, 그러면 못쓰느니라. 놀부를 닮아서 너도 오장칠부더냐. 아무리 제 발이 저려도 그렇지 참 꼴불견이라, 생트집 잡는 네 꼬락서니를 보거라. 그런다고 네 허물이 덮어질 줄 아느냐.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 아서라, 이젠 나잇값을 할 만도 하렷다.

길위의단상 2014.04.22

9단의 자살골

지난 4월 3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9기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보기 힘든 돌발사건이 일어났다. 박지은 9단[흑]과 김채영 초단[백]이 1:1이 된 가운데 벌어진 마지막 세 번째 대국이었다. 바둑은 박지은 9단의 승리로 굳어진 가운데 몇 군데만 메우면 종국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박지은 9단이 무심결에 우상귀의 흑돌을 이은 것이다. 바둑 초보도 알 수 있는, 놓아서는 안 되는 자충수였다. 김채영 초단은 공짜로 들어온 흑돌을 들어냈고 바둑은 역전되었다. 뒤늦게 착각을 알아차린 박지은 9단은 망연자실했다. 큰 시합에서 9단이 저지른 충격의 자살골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마추어처럼 온정에 기대거나 물릴 수 없다. 바둑 한 수의 치열함을 조치훈 9단의 '목숨을 걸고 둔다..

길위의단상 2014.04.08

두 일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인간됨을 알아보는 데는 짧은 단편으로도 충분하다. 리영희 선생의 글에 나오는 두 사람에 대한 일화다. 1 구한 말 한국 조정의 고문으로 와 있던 스티븐슨이 미국으로 돌아가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민족이다. 앞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어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여 민족의 분노를 샀다. 그때 그 보도를 보고 격분한 교포 2명이 부두에서 스티븐슨을 저격했다. 두 의사들은 살인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조선인 변호인을 찾아야 할 텐데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동변상련의 처지에 있던 유대인들이 무료변론을 해주겠다고 나왔다. 그런데 또 통역을 누가 해야 할지 문제가 되었다. 교포사회에 이름도 있고 미국에서 ..

길위의단상 2014.04.01

한 장의 사진(18)

인생에서 그나마 아름다운 시절은 유년이 아닐까 싶다. 유년은 가족의 축복 가운데 태어나서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 그대로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년의 기억은 대부분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았다. 간신히 남은 몇 개의 기억이 따스했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 준다. 삭막한 인생살이에 지친 몸이 쉬어가는 오아시스가 바로 유년의 기억이다. 내 의식에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은 아마 서너 살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따스한 봄날이었는데 시골 동네에는 잔치가 있었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새 옷을 곱게 차려입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나도 고모 등에 업혀서 한 손에는 풍선을 들고 행렬을 따르고 있었다. 골목길은 시끌벅적했다. 그런..

길위의단상 2014.03.10

짬뽕과 순대국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때가 지나면 시장기가 든다. 배는 고프고 집까지 가는 길도 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건 짬뽕 아니면 순대국이다. 뭘 먹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속을 시원하게 하고 싶을 때는 짬뽕, 고기 생각이 날 때는 순대국을 먹는다. 짬뽕과 순대국은 꼭 가는 집이 있다. '홍콩반점'은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음식점이다.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지만 그보다도 실내가 깔끔해서 좋다. 종업원도 여느 중국집과 달리 젊은이들이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카페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는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선해서 재미있다. 어떤 날은 매운 짬뽕을 먹고 싶을..

길위의단상 2014.02.24

감기와 스트레스

감기몸살이 진하게 찾아왔다. 닷새 동안 끙끙 앓고 나니 조금 사그라진다. 백수였기 망정이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훨씬 더 오래 끌었을 것이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안 먹고 견디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졌다. 그만큼 증상이 복합적인데다 특히 기침이 심했다. 블로그에 들어오기도 귀찮아서 며칠간 공백이 생겼다. 밖에 쏘다녔거나 무리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감기에 걸린 것은 올 초부터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증상으로 연결되느냐 않느냐는 것은 면역력과 관계가 있다. 과로와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도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의 방어벽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더구나 아내가 부재중이어서 더 힘들었다. 아픈 ..

길위의단상 2014.02.13

웃으면서 화내자

, 제목 때문에 가끔 생각나는 책이다. 읽지는 못했어도 특이한 제목 때문에 기억에 새겨진 책들이 있다. 이 책이 대표적이다. 웃으면서 화내는 기발한 방법이라도 있을까, 책을 펼쳐보기는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엉뚱한(?) 내용이어서 완독하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고' 싶을 때가 있다. 바보들에게 정색하고 화내는 건 똑같은 바보짓이다. 바보들에게는 웃으면서 화를 내줘야 한다. 얼굴로만 웃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날려주어야 한다. 그게 바보를 바보에 걸맞게 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자!" 어제저녁부터 이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바보들에게 줄 선물은 이것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게 슬퍼질 때가 있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며, 결국은 평..

길위의단상 2014.02.04

통일은 대박

지난 연말부터 통일에 대한 발언이 무성하다. 국정원장이 2015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자고 직원들에게 훈시한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 자리에서는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통일을 언급하며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그 뒤에도 통일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유망한 투자처며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외국 학자들의 발언이 연신 소개되고 있다. 늦어도 2020년까지는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동시에 TV에서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방송하고 있다. 갑자기 통일 풍년이 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민족의 비원인 통일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국민의 통일..

길위의단상 2014.01.23

[펌] 아이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미화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이 격렬한 반대 여론에 결국 채택을 철회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걸까. 왜 우리는 ‘친일’과 ‘반공’의 역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공산주의를 반대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려는 걸까. 우리가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그게 실은 민족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 어떤 방식으로도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은 잘못이며, 그런 역사에 굴종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우리가 ..

길위의단상 2014.01.15

식탁의 눈물

내일로 잡혀 있던 제주도행을 취소했다. 예약했던 숙소와 렌터카, 비행기표도 전부 해약했다. 이번에 내려가서 1년 동안 살 집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걱정하던 일이 앞당겨 일어났고, 이곳을 비울 수 없게 되었다. 사는 게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듯,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인생인가 보다. 하긴 인생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길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일 것이다.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다. 그중에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장애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그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이며 충동적이다. 모든 것이 남 탓이고 상대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른다. 성장 과정에서 정상적인 인격 발달에 문제가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교실에는 이런 아이가 ..

길위의단상 2014.01.05

단주

올해 일어난 변화 중 제일 으뜸이 술을 끊은 것이다. 지난 6월에 단주를 결심하고 지금까지 잘 지켜왔으니 술잔을 입에 대지 않은지가 여섯 달이 되었다. 되돌아보아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 앞으로도 다시 술을 가까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술은 마실 때는 흥겹지만 뒷날은 고약했다. 후회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마셨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필름이 끊기는 건 물론이고 집에 찾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늙은이의 추태를 보였다. 또 술에 취하면 공격적이고 비판적이 되어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게 했다. 확실한 해결책은 술을 끊는 것밖에 없었다. 적당히 절주하면 되지 않느냐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었다. 전에 있었던 일 중에 제일 아찔했던 건 골목에 주차해 놓은 트럭 밑에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 ..

길위의단상 2013.12.26

안녕들 하십니까?

어느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가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과 부드러운 내용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보통 대자보라고 하면 운동권 용어를 쓰는 격문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변했다. 원리주의적 이념이나 투쟁적 언어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피부에 닿는 소통과 공감의 언어가 아니면 관심을 끌 수 없다. 학생의 대자보는 사회 현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학우를 비판하기에 앞서 안녕들 하시냐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니 마음이 열린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하는 많은 대자보가 이를 증명한다. 전에 진보 쪽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분이 방송 연설 때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란 멘트를 해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이젠 혁명도 감성..

길위의단상 2013.12.20

우리 시대

아일랜드에 가 있는 친구가 한국이 왜 이리 어수선하냐며 메일을 보내왔다. 차라리 인터넷이 없었으면 싶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봤을 때는 거의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나 보다. 신부가 강론 중에 한 시국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들이려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종북'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 JTBC '뉴스9'에서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 비난을 듣게 된다."

길위의단상 2013.11.28

올해 나온 카메라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향상되어 가는 카메라 성능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모델 교체 주기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기계를 좋아하지 않지만 카메라는 예외다. 탐나는 카메라에는 갖고 싶은 욕심이 동하지만 덜컥 사지는 않는다. 카메라 회사의 소비자 지갑 털기 전략이 어느 정도는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나이 또래에서는 카메라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고 여러 기종을 만져 보았다. 금년에도 기술적으로 혁신을 이룬 제품이 등장했다. 올해 나온 카메라 중에서 관심이 가는 것을 골라 보았다. 1. 소니 A7 소니에서 세계 최초로 풀 프레임[FF] 미러리스를 만들었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FF 바디에 대한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DSLR은 가격이 비싸고 무거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니가 드디어 미러..

길위의단상 2013.11.27

연이은 착각

두 번의 연이은 착각을 했다. 지지난주에는 결혼식장에 갔더니 혼주가 엉뚱한 사람이 서 있었다. 청첩장을 꺼내 보니 축하해줘야 할 친지 결혼식은 다음날이었다. 날짜를 하루 착각한 것이다. 지난주 결혼식은 식장에 갔더니 이미 끝난 뒤였다. 시간을 두 시간이나 오해해 주인공을 보지도 못하는 실례를 했다. 깜빡하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나 이렇게 연달아 실수하고 보니 내 정신이 녹슬어가는 게 실감 난다. 운전을 해보면 안다. 내비의 안내를 받지만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가 잦다. 여러 갈래 길에서 정확한 결정을 못 내린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감각만으로도 길을 잘 찾아갔다. 이제는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고작 선택한 게 정답이 아니다. 총기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도로가 복잡해져서 그렇다고 자기 위안을 해 보지만 자..

길위의단상 2013.11.15

바쁜 10월

이번 10월만큼 바쁜 달도 없다. 내 특기인 아무 일 없이 집에서 논 날이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특히 후반부에는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느라 분주했다. 18일 ~ 21일 전주와 고창 방문 22일 ~ 24일 가평으로 가족여행 25일 휴식 26일 ~ 27일 경떠회 여행 28일 ~ 29일 전주 상가 조문 30일 서울에서 바둑 31일 ~ 11월 1일 홍성 지역 여행 예정 전반부에도 3박4일과 1박2일의 여행이 두 번 있었다. 역마살이 낀 달이다. 이러니 피로를 풀 시간도 없이 다음 피로가 몰려온다. 약속된 것이니 일정을 취소하기도 어렵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으니 그나마 버틸만하다. 몸살기가 나타나더라도 잠을 잘 자니 바로 회복된다. 나에게는 잠이야말로 보약이다.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

길위의단상 2013.10.31

10월에 찾아온 태풍

올해는 태풍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10월에 들어서야 늦손님이 찾아왔다. 24호 태풍 다나스(DANAS)였다. 23호 피토(FITOW)와 비슷한 때에 발생하여 다나스는 북쪽으로 올라왔고, 피토는 중국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다나스도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문간에서 안부만 여쭈며 동해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가 10월에 태풍 영향을 받은 건 15년 만이라고 한다. 지금도 서태평양에는 새로운 태풍 두 개가 만들어져 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적도의 고수온 해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늦은 태풍의 방문을 받을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 같다. 10월 6일 15:00 10월 7일 15:00 10월 8일 15:00

길위의단상 2013.10.10

소리에 둔해지기

우리 나이가 되면 몸의 기능이 저하되는 걸 실감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나 예외가 있다. 청력만은 젊었을 때와 전혀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늙어서도 계속 자라는 것이 귀라고 한다. 그래서 귀가 큰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도 생겼는가 보다. 귀는 외형뿐만 아니라 성능에서도 제일 오래 버티는 기관인지 모른다. 100세 넘게 사셨던 외할머니도 마지막 몇 년을 빼고는 청력만은 정상이셨다. 옆에서 소곤소곤하는 얘기도 들으시고는 참견을 하셨다. 그게 싫었던 어머니는 어떻게 젊은 사람보다 귀가 더 밝느냐고 혀를 찼다. 귀 때문에 외할머니는 지청구를 많이 들으셨다. 늙어서는 못 들은 척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귀가 밝다는 건 축복이기보다는 성가신 일이다. 상하좌우로 다..

길위의단상 2013.09.26

블로그 10년

블로그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2003년 9월 12일에 한미르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첫 글을 올렸으니 오늘로 꼭 10년이 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자고 다짐했는데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켜온 게 우선 기쁘다. 포스트의 양보다 꾸준함이 스스로 대견하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도 일기를 계속 썼으니 매일 글 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블로그는 공개되는 일기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블로거들과의 소통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그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방문해 댓글을 다는 이웃 블로거는 거의 없다. 내가 나들이 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내 블로그는 그저 독백 수준의 자기만족으로 그만이다. 블로그에서는 블로그 주인의 성격이 나타난다. 오지랖이 넓지 않은 건 블로그 세계에서도 마..

길위의단상 2013.09.12

걱정하지 마

"어떻게 지내셔?"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지 뭐." "일산 킨텍스의 건축 박람회 보러 가자." "나가는 것도 귀찮다. 그냥 집에 있는 게 편타." "야, 너무 그러면 폐인 된다. 바깥바람도 쐬고 그래." "알겠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뭣 하고 있어?" "똑같지 뭐. 집에 있어." "답답하지 않냐?" "답답하긴, 이게 편하고 좋은데." "집에만 있으면 생지옥이 따로 없는데, 하여튼 희한타." "......." 최근에 두 친구와 통화한 내용이다. 집에서 할 일 없이 논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긴다. 한 친구는 끔찍하게도 '생지옥'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사업하는 친구인데 그는 지금까지 일 없이 집에서 놀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닥치지도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 남자가 집에서 빈둥거리면 왜 안 되는 ..

길위의단상 2013.09.03

포기하지 않으면 꾸준히 는다

서봉수 사범은 환갑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선에서 맹활약이다. 최근에는 공식 대국에서 10연승을 거두었다. 서 사범이 바둑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꾸준히 는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실력이 최전성기였던 90년대보다 세다고 단언했다. 그때는 응씨배를 우승하고, 진로배에서도 9연승을 했다. 바둑 실력이 20대 때 절정이었다가 점차 줄어든다는 게 통념이다. 객관적 성적도 그걸 증명한다. 그런데 서 사범은 안 된다고 포기하지 않으면 꾸준히 는다는 것이다. 바둑 두는 사람은 기력 향상이 최고의 소원이다. 젊었을 때는 죽순이 자라듯 실력이 부쩍부쩍 늘었지만 지금은 제자리 걸음이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쉽게 나이 핑계를 댄다. 그러나 가만히 관찰해 보면 늙었다고 기력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다..

길위의단상 2013.08.25

갖고 싶은 카메라

내가 샀던 첫 카메라는 모델명이 '캐논 GⅢ'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형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였는데 1970년대의 어느 해에 한 푼 두 푼 월급을 모아서 산 것이었다. 그 뒤로는 니콘의 SLR을 주로 사용했다. 마지막에 샀던 F3는 지금도 장롱속에서 잠자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필름카메라는 골동품이 되었다. 아날로그 시대에 비해 지금은 카메라 가격이 싸졌고 성능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디지털에서는 필름값과 현상비도 들지 않는다. 찍은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전 세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그러나 디지털의 편리함으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잊혀지는 건 아니다. 도리어 디지털의 경박함이 아날로그 시대를 더욱 그립게 한다. 지..

길위의단상 2013.08.18

반가운 소식

그저께 동아일보에 반가운 소식이 실렸다. 기사를 옮기면 이렇다. "SK그룹의 에너지기업 SK이노베이션은 1일부터 구내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주지 않는다. 전 사원을 대상으로 지난달부터 '오후 6시 반 의무퇴근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6시면 '퇴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30분 뒤에는 PC가 자동 종료된다. 지난 한 달간 직원 만족도는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LG전자도 세탁기 냉장고 등을 만드는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가 시작한 '수요일 오후 5시 퇴근제'를 최근 다른 사업부로 확대했다. HA사업본부는 조성진 사장의 지시에 따라 2월부터 매주 수요일 전원이 오후 5시에 강제 퇴근해왔다. 6개월이 지난 현재 서울 여의도 본사와 경남 창원공장의 수요일 5시 정시 퇴근율은 97%에 이른다. 지..

길위의단상 2013.08.07

가장 길었던 장마

어제로 장마가 끝났다. 6월 17일에 시작해서 8월 4일에 종료되었으니 49일 동안 이어졌다. 기상 관측을 한 이래 가장 길었던 장마였다. 종전 기록은 1974년과 1980년의 45일간이었다. 장마전선이 주로 중북부에 머물러서 실제 장마를 겪은 건 중부 지방이었다. 남부는 장맛비보다 폭염에 시달렸다.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서울은 7월 중에 비가 오지 않은 날이 닷새밖에 안 되는데, 부산은 반대로 비가 온 날이 엿새였다. 반쪽장마라는 말 그대로였다. 좁은 땅인데 전연 다른 여름을 경험한 것이다. 긴 장마였지만 비 피해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7월 한 달간 서울의 강수량이 703mm였다. 대체로 고루 분산되어 내렸다. 생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 장마는 여름의 휴식기다. 매..

길위의단상 2013.08.05

창백한 푸른 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칼 세이건이 지구에 붙인 이름이다. 1990년에 태양계 밖으로 날아간 보이저 1호가 60억km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촬영했는데, 희미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명명했다. 이번에 토성 탐사선 카시니(Cassini)가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지난 19일에 지구에서 15억k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것이다. 토성의 고리 밑에 화살표로 표시된 점이 지구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보면 태양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사진 찍기가 힘들다고 한다. 다행히 이 경우는 토성 뒤에 태양이 가려져 있어 지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NASA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지금까지 외계에서 지구 사진을 찍은 경우는 세 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귀한 사진이다. 우리가 사는 ..

길위의단상 2013.07.28

아내의 다짐

아내는 몸이 많이 부실하다. 5년 전의 큰 수술 후 더 나빠졌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여진이 끝나지 않았다. 어제는 구토가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뇌에 이상이 온 건 아닌지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선지 아내는 요사이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 요가를 하고, 장신대에서 하는 자연치유 강좌에도 나간다. 거기서 권해 준 방법을 집에서도 열심히 실천한다. 애쓰는 게 보이지만 나아지는 속도는 거북이보다 느리다. 노란 스티커에 써 놓은 아내의 메모를 보았다. 혼자의 시간 - 산 복식호흡과 여유 의식적으로 웃기 밤에는 다른 일 하지 않고 잠자기 위한 준비 아파하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무력감을 느낀다. 고통은 온전히 아픈 사람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옆에 ..

길위의단상 2013.07.23

귀태(鬼胎)

민주당 홍익표 대변인의 '귀태' 발언으로 정국이 달아오르더니 이제 진정되어 간다. 여당이 국회 일정을 거부하자 문제의 발언을 한 야당 대변인이 사퇴하고 대표가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홍 대변인의 발언은 이랬다. "작년에 나온 책 중에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에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다 태아 태(胎)자를 써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당시 일본제국주의가 세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에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시기 노부스케의 외손자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장녀이다." 귀태라는 말의 ..

길위의단상 2013.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