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4

한 장의 사진(17)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J가 세상을 떴다. 10년 넘게 병마에 시달리다가 안식에 들었다.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으나 한 번 찾아가 보지를 못했다. 부고를 접하니 그게 제일 미안하다.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게 재작년 어느 결혼식장에서였다. J는 성치 않은 몸으로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지방에서 올라왔었다. 피로연에서 옆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도 부인이 도와주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다. J는 키가 작지만 당찬 성격이라 동기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J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지금도 말한다. 산골 집에서 중학교까지 10km를 3년 내내 걸어 다니면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과외 한 번 받은 적 없었다. 집이 가난해서 방학 때는 아이스케키 장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

길위의단상 2012.01.14

소식소동(小食小動)

겨울이 되니 몸을 덜 움직이게 된다. 추운 날씨가 바깥 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걷는 시간이 다른 계절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겨울은 활동보다는 휴식의 계절이다. 동물도 먹이를 구하는 때 외에는 활동을 자제하고 아예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나무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도 겨울에는 적게 활동하는 게 자연의 순리에 맞는 일이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산 옛날 농부들은 겨울 한 철을 농한기라고 하여 쉬었다. 그런데 적게 움직여도 먹는 양은 그대로니 살이 찌는 게 문제다. 아침 공복 상태에서도 체중계에 올라가면 지금은 65kg을 훌쩍 넘는다.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전에는 항상 62kg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때가 몸 상태가 제일 좋다. 몸무게를 줄이자면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집에서 노니 ..

길위의단상 2012.01.06

2011년을 보내며

2011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연말이 되면 흔히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쓰는데 바로 올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큰일들이 한 해에 집중된 인생 대변화의 때였다. 묘하게도 나이 끝이 아홉이 되는 해에는 쓰나미가 몰려온다. 10년의 주기 중에서도 올해의 진폭이 가장 컸다. 올초에 35년 직장 생활에서 떠났다. 정년까지는 4년 더 남았지만 명퇴를 택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고백하건대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직업은 나에게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그 짐을 벗으니 날아갈 듯 가볍다. 퇴직 후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표정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퇴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기본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게 도리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일 중요한..

길위의단상 2011.12.31

2011년을 웃긴 말

어느 네티즌이 2011년의 망언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역시 MB의 발언이 1위에 올랐다. 이에 사람들은 '도덕적이 아니라,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 '이명박 장로님, 방언 터지셨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분들, 늘 우리를 즐겁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한편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俺耳盜鐘)'을 뽑았다. '엄이도종'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에 대한 비판의 사자성어다.

길위의단상 2011.12.21

홀가분하다

석 달 간격으로 두 딸을 시집보냈다. 연초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 한 해는 자식 결혼시키느라 바빴다. 힘들었어도 경사를 두 건이나 연이어 치렀으니 복 받았다 할 수 있다. 나이가 찬 자식을 아직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일찍 혼사를 끝낸 우리를 부러워한다. 큰일을 치르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둘 다 연애로 자기 좋아하는 짝을 찾아갔으니 서운한 게 덜 한 편이다. 잠시라도 떨어질세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도리어 질투가 날 정도다. 그래도 엄마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아내는 상당 기간 잠 못 들고 슬퍼하고 있다. 딸의 빈방에서 나올 때 눈가가 빨개진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겠지, 앞으로 아이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아내의 우울도 잦아들 것이다. 둘째가 신혼여행 뒤 집에 찾아와 인사하..

길위의단상 2011.12.10

70억

지난달부터 세계 인구가 70억 시대에 접어들었다.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30억이 안 되었는데 그동안에 세 배 가까이나 늘어났다. 폭발적인 증가다. 자료를 찾아보니 10억 단위로 인구가늘어난 해는 이렇다. 10억 1805년 20억 1927년 30억 1959년 40억 1974년 50억 1987년 60억 1999년 70억 2011년 세계 인구가 10억 명에서 20억 명으로 되는 데 122년이나 걸렸지만, 그 뒤부터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 지금은 12년마다 10억 명씩 늘어나는 엄청난 속도다. 학자들은 지구 인구가 금세기 중반이 지나면10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이 정도면 식량이나 에너지에 문제가 생길 때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환경과 자원의 관점에서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인구는..

길위의단상 2011.12.07

이 시대의 광기

이 며칠 자꾸 생각나서 심란해지는 사건이 있다. 고3 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이나 방에 방치해둔 채 함께 지냈다. 그러면서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고 수능 시험도 봤다. 이해되기도 용서하기도 어려운 패륜 범죄다. 그러나 뒷사연을 들어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를 살해하기 전날에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골프채로 12시간 동안 맞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아들도 정상이 아닌 가정이었다. 종기가 곪아 터지듯 결국은 비극적 파국으로 끝났다. 별거 중이었던 이 학생의 아버지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가 7살 때 씻겨주려고 종아리를 걷었는데 매 자국이 보여 놀라 옷을 벗기니 엉덩이가 시퍼렜다."라며 "애 엄마가 매로 다스려야 한다며 홍두깨로도 때리고, 물건을 던져 애 ..

길위의단상 2011.11.27

군대와 학교

친구들과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입대하게 되는 악몽을 공통으로 꾼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붙잡아가려는 당국과 도망가려는 나 사이의 갈등이 군대 꿈의 기본 틀이다. 꿈을 깨고 나면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군대가 체질인 사람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에게는 군대 경험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공통적인 꿈 경험이 대변해 준다. 나에게는교직 생활 역시좋지 않은 꿈으로나타난다. 퇴직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학교가 꿈에 나오면 영 기분이 언짢다.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꿈이 제일 잦다. 미로 같이 얽힌 학교 건물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 버린다. 또, ..

길위의단상 2011.11.05

미친 놈들

지난 26일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는 소식을 늦게야 들었다. 선생은 지금 EBS에서 '중용, 인간의 맛'이란 강의를 하고 있는데, 예정된 내용에서 반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연 강의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다. 현장에서 도올은이 정권에 대해 직설적으로 "미친 놈들!"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중용, 인간의 맛'은 내가 지금 가장 열심히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신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정규 과목 강의인데 EBS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중계해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9월부터 시작해서 총 36회 분이 방송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도올만큼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도드물 것이다. 그분의 고전 해석에서부터 인품에까지 도올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길위의단상 2011.10.30

시험 감독을 한 어느 학부모의 소감

.... 일주일 전.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갔다. 3학년 한 줄, 1학년 한 줄 섞여 앉아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은 교탁에, 그 대척점인 뒤 칠판 쪽에 내가 섰다. 종이 울리자 나란히 도열한 회색빛 등짝이 일제히 수그러진다. 푸코의 에 나오는 판옵티콘 구조, 일망감시체제에서 감시자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됐다. 환절기라서 아이들이 코를 킁킁 거리고 기침을 해댔다. 다리를 떨고 몸을 비트느라 의자의 삐그덕거리는 쇳소리가 울렸다. 매캐한 사내냄새 자욱한 공간에 왠지 불길한 기운을 자아내는 음향효과들... 맨 뒷자리 덩치 큰 녀석은 뒷모습부터 남달랐다. ‘학교 싫어 공부 싫어 시험 싫어’를 온몸으로 발산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문이 빼곡한 영어 시험지를 받더니 앞뒤로 김을 굽듯이 두어 차례 뒤집어 훑고는..

길위의단상 2011.10.14

조용히 살고 싶어라

집 앞에 태권도 학원이 생겼다. 덕분에 시끄러운 소음을 견뎌야 한다. 초기여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기합 소리가 요란하다. 위층에서는 쿵쿵거리고 밖에서는 아이들 함성이 신경을 자극한다. 집에 주로 있다 보니 소음에 더 예민해졌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마음은 더 시끄러워진다. 이곳 아파트 단지는 젊은 가구가 대부분이다. 우리 윗집, 아랫집, 옆집에는 전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놀이터에도 언제나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전에 서울에 살 때는 양로원이라 할 정도로 아이들 보기가 어려웠다. 엘리베이터에 타도 항상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이쁘게 보면 활기차서 좋고, 밉게 보면 너무 소란하다. 처음 이사 와서는 위층에서 아이들..

길위의단상 2011.10.07

3000

블로그에 올린 글 수가 3,000개를 기록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8년여 만이다. 매일 하나씩의 글을 쓰자고 약속하며 블로그를 2003년에 열었는데 지금까지 그 다짐을 잘 지켜온 셈이다. 내용이나 양보다 매일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글을 올리려 노력했다. 매일매일 한 걸음씩 걸어왔다는 게 소중하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대문 이름은 ‘마가리의 꿈’이었다. 백석 시에 나오는 ‘마가리’는 당시 내 귀촌 생활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 후 꿈이 깨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문패는 ‘내 마음의 뒤란’으로 바뀌었다. 블로그는 답답하고 울적한 심정을 토로하고 위안을 받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재작년부터는 지금의 ‘먼.산.바.라.기.’를 쓰..

길위의단상 2011.10.04

장식용 에어컨

에어컨이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올해 큰 맘 먹고 에어컨을 샀는데 한 번도 틀어보지 못하고 여름이 지나갔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았고 중부 지방에는 큰 더위가 찾아오지 않았다. 열대야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새로 이사 온 이곳은 교외 지역이라 도심과 달리 공기 자체가 시원하다. 여름에 피서를 간 것도 아니고 내내 집에 있었는데 에어컨이 아니라 선풍기 신세도 별로 지지 않았다. 9월의 늦더위로 정전이 되고 난리가 났지만 그때도 덥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겨울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겨울바람은 무척 세고 찰 것 같다. 이곳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이 맑은 공기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강원도 심심산골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만하면 서울 생활 40..

길위의단상 2011.09.22

내가 제일 부러운 건

내가 제일 부러운 건 형제간에 우애 있는 집이다. 그런 집을 보면 질투가 날 정도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집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명절이나 잔치 등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 싫다. 다른 사람 대하기에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집안의 내력인지 선대 때도 그랬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형제간에 왕래가 없었다. 만나면 친척 사이에 싸우고 큰소리치는 걸 자주 보며 컸다. 친가나 외가 쪽이 다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주위를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형제 사이가 남만도 못하다. 이런 집들은 내 탓이오, 보다는 주로 남 탓을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가 어쩌면 혈연관계인지 모른다. 가까..

길위의단상 2011.09.14

빨리 지나갔으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결혼식 준비가 너무 피곤하다. 결혼 당사자들도 지치는 건 마찬가지다.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서 오는 정신적, 물질적 낭비가 많다. 초대한 손님 중에 진정으로 축하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혼식을 집안 자랑 마당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신랑 신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인이 깨지기도 한다. 결혼식, 막상 당해보니 문제가 많다. 박정희 정권 때 이런 폐습을 없애고자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되었다. 그때는 청첩장이나 피로연도 금지시킨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관습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상한 결혼문화의 중심에 축의금이 있다. 결혼식장에서 돈 봉투를 주고받는 행위는 부끄러운 일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편하다. 마땅치 않은 짓이란 걸 알면서도 ..

길위의단상 2011.08.31

[펌] 당신들의 하나님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 한국의 보수대형교회 목사들을 내세운 우파 성향의 기독교 정당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반공·친미를 표방하고 있으며, 기독교 정당 결성을 위한 준비단계로 포럼을 주도한 청교도영성훈련원장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보면 그 단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종북좌파들과 반기독교 세력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조용기 목사와 김홍도 목사 등 원로들이 기독교를 표방해 정당을 준비하려는 이들에 대해 사전 정지작업을 해주면 내가 나서기로 했다." 교회국민운동본부가 배포한 포럼 홍보물에는 '종북좌파들의 국가 부정과 적화 통일, 수쿠크법과 이슬람의 비정상적 포교, 북한의 인권문제, 동..

길위의단상 2011.08.29

당황과 황당

티뷰론을 타고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며 달릴 때... 스쿠프가 추월을 하면 당황스럽지만 티코에게 추월당하면 황당하다. 맛있게 사과를 먹다가... 벌레 한 마리가 나오면 당황스럽지만 벌레 반쪽만 있으면 황당하다. 그이가 외박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팬티를 뒤집어 입고 있으면 당황스럽지만 여자 팬티를 입고 있으면 황당하다. 여자가 트럭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데... 트럭이 앞으로 가버리면 당황스럽지만 뒤로 후진해 오면 황당하다. 남자가 트럭 옆에 서서 볼일을 보는데... 트럭이 앞으로 가버렸는데 상대편에서 남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당황스럽지만 여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면 황당하다. . . 그리고 최근에는 . . . .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 시장직은 목 매달아 놓고 무릎 꿇고 ..

길위의단상 2011.08.22

청첩장

‘청첩장(請牒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결혼이나 좋은 일에 남을 초대하는 글발’이라고 나와 있다. ‘첩(牒)’이라는 한자가 편지나 서찰의 의미를 갖고 있으니 초청하는 글이 청첩장의 원뜻이다. 그런데 ‘첩’과 ‘장’은 중복되는 의미가 있으니 그냥 ‘청첩’이라 해도 같은 뜻이다. 딸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내고 있다. 우편으로 부치기도 하고 직접 대면하여 전하기도 한다. 전화를 걸고 소식을 알리고 주소를 묻는 일을 여러 군데 해야 하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우선 누구에게 청첩장을 주어야 하는지 목록을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 이 사람한테 보내면 괜히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실례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편 마음까지 헤아려야 한다. 반대로 연락을 하지 않아 섭섭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주는..

길위의단상 2011.08.20

눈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자라게 하라

얼마 전에 SBS TV에서 ‘마지막 자연인’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산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나도 우연히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장면 중에 재래식 화장실의 똥을 먹는 개가 잠시 비쳤는데 그걸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동물 학대라며 방송국에 항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급기야는 산골 오두막으로 동물보호단체에서 찾아가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개나 닭은 모두 놓아 먹였다. 방에 동생이 똥을 싸면 할머니가 “도꾸, 도꾸”하고 개를 불렀다. 그러면 어디선가 비호 같이 달려와서 깨끗이 처리했다. 골목길에 아이들이 눈 똥도 모두 개들의 몫이었다. 개가 똥을 먹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며 컸다. 그때의 개들은 대부분 똥개라 부르는 종류였는데 덩치고 컸고 힘도 좋..

길위의단상 2011.08.07

수돗물을 안전하게 마시는 법

궁금한 게 있다. 수돗물은 마실 수 없는 물인가? 수자원공사에서는 안심하고 마시라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싱크대 안에 정수기가 장치되어 있고 정수기를거쳐 나온 물을 마신다. 어떤 사람은 정수기도 믿지 못하고 생수를 사서 마신다. 요사이는 생수도 믿을 수 없다고도 하니 도대체 무얼 마셔야 한단 말인가. 돈 많은 사람은 외국에서 사 온 물을 마신다고 한다. 바다 깊은 데서 꺼내온 물도 있고, 북극 빙하에서 가져온 물도 있단다. 수자원공사에서는 수십 가지의 기준에 따라 수질을 측정해서 발표한다. 그래서 상수도가 안전한 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송수 과정에 있다. 배관이나 물탱크가 낡고 녹슬었는데 원수가 아무리 좋으면 무엇 하겠는가. 더러운 송수관이나 ..

길위의단상 2011.07.31

비에 젖은 한 달

2011년 올해 장마는 이름 그대로 장마다웠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지방을 기준으로 할 때 6월 22일에 시작해서 7월 17일에 끝났다. 시작과 끝도 분명했다.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그동안의 강수량이 아래와 같다. 6월 22일 비 16.0 mm 23일 비 41.0 mm 24일 비 10.5 mm 25일 비 37.0 mm 26일 비 40.0 mm 27일 비 11.5 mm 28일 비 0.5 mm 29일 비 177.0 mm 30일 비 46.0 mm 7월1일 흐림 2일 흐림 3일 비 115.0 mm 4일 갬 5일 갬 6일 흐림 7일 비 42.5 mm 8일 비 13.0 mm 9일 비 15.0 mm 10일 비 6.0 mm 11일 비 42.5 mm 12일 비 51.5 mm 13일 비 29.0 mm 14일 비 38.0..

길위의단상 2011.07.19

한 장의 사진(16)

무슨 팔자인지 법원을 자주 들락거린다. 생소했던 풍경도 익숙해지고 있다. 법원 구내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도 이젠 즐기는 편이다. 사람들의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도 여유 있게 살피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가정법원이 있는데 심각한 얼굴의 부부들이 들고난다. 어제는 건물 귀퉁이에서 한 부부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들고 있는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빼내려 하고 있었고, 남자는 뺏기지 않으려고 밀고 당기는 중이었다. 옆을 지나가는데 남자의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용없어. 이젠 다 끝났어.” 얼마 전에는 구내에서 지율스님도 만났다. 4대강에 관련된 소송에서 이겼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오신 것 같다. 나에게 법정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군대 있을 때 ..

길위의단상 2011.07.13

백수는 백수다

“백수는 백수다.” 아내가 날 놀릴 때 쓰는 말이다. 앞의 백수는 일 없는 ‘백수(白手)’이고, 뒤의 백수는 백 살까지 산다는 ‘백수(百壽)’다. 퇴직하고는 마음 편히 놀고먹는 한량 생활을 하고 있으니 오래 살 거라는 반 비아냥이다. 퇴직을 하고 보니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다.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늘 시달렸다.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의 심정이 태반이었다. 이제 거기서 해방되니 마음은 날 듯 가볍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상도 사라졌다. 학교 밖에서 교단 붕괴 소식을 들으니 더 착잡하다. 남아 있는 동료들이 겪을 심적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어제도 지인으로부터 마음 아픈 얘기를 들었다. 요사이 아이들은 버릇이나 개념 없는 정도를 따질 단계도 ..

길위의단상 2011.07.02

변화를 일으키는 15가지 행동

녹색연합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창간 당시부터 정기구독을 했으니 무척 오래된 친구다. 환경에 관한 좋은 글이 많이 실리고, 이론보다는 실천을 강조하는 알찬 잡지다. 그런데 얼마 전에 판형과 함께 그림과 사진 중심으로 편집 스타일을 바꾸었는데 전보다 내용이 부실해진 것 같아 아쉽다. 이번 기념호에는 ‘변화를 일으키는 15가지 행동’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실었다. 최근의 환경 이슈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요약해 옮긴다. 1) 나노표시제를 시작하자 나노물질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정당하게 규제를 하기에는 충분한 과학적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나노물질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기존 규제를 활용할지, 나노물질만 독자 규제체계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서..

길위의단상 2011.06.25

그들이 말하지 않는 원자력 비밀 11가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다. 시간은 아무리 아픈 상처도 아물게 하는 것 같다. 이젠 방사능이라는 말을 들어도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덤덤하다. 원자력에 대한 경각심도 많이 사라졌다. 세상의 다른 필요악처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원자력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감각이 필요하다. 정부의 홍보를 곧이곧대로 믿을 바보는 이제 없을 것이다.이번 주 에 원자력에 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제목이 ‘그들이 말하지 않는 원자력 비밀 11가지’다. 내용을 간추려 옮긴다. 1) 체르노빌 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1986년 세계 최악의 방사능 유출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기 원자로는 사고 직후에 폐쇄됐고, 제2기는 1991년, 제1기는 1996년..

길위의단상 2011.06.21

진인사대천명

쉰아홉이 되는 올해 2011년은 참 별난 해다. 아홉수 치다꺼리를 하느라 그러는지 큰일들이 연신 생기고 있다. 퇴직을 했고, 탈서울의 이사를 했고, 딸 둘을 한꺼번에 출가를 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은 법정에 섰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송사의 원고로 출석한 것이다. 앞으로도 한두 차례 더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 가슴 아픈 여주 생활의 여파가 지금까지 날 괴롭히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훗날 너무 후회할 것 같아 세무서장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이것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나에게는 정신적 통과의례로 필요한 절차다. 사람들은 승산이 없는 싸움일 거라고 말렸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을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법원마저 노, 라고 한다면 그때는 대한민국 법 적용의 현실을 받아들..

길위의단상 2011.06.14

소음에서 벗어나는 법

한 늙은 학자가 요양을 하기 위해 작은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 노인은 주위가 고요한 이 마을이 썩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을 아이들이 집 주위에서 큰 소리로 떠들며 놀기 시작했다. 노인은 아이들 소리 때문에 낮잠조차 편안히 잘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나가서 조용히 하라고 타일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이 동네 아이들을 집에 초대했다. 노인은 용돈을 가지고 나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내 앞에서 고함을 질러주지 않겠니? 소리가 큰 아이에게는 더 많은 용돈을 주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댔다. 노인은 약속한대로 소리의 크기에 따라 아이들에게 용돈을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고 용돈을 받는 것이 습관이..

길위의단상 2011.05.31

신문 없는 한 달

신문 없이 한 달 넘게 지내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난 뒤 새로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잤던 자리에 그대로 누워 배달된 신물을 보는 게 정해진 일과였다. 퇴직한 뒤로는 더 시간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신문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창 출근에 바쁠 시간에 나만의 특별한 호사를 누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떠나고 집에 둘만 남게 되면 아무래도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게 되는데 현관 앞에 쌓이는 신문을 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몇 주씩 신문이 쌓여있는 모습으로, 이 집에는 사람이 없소, 하고 일부러 광고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매번 옆집에 부탁하기도 어렵다. 마땅한 방법이 없는 한 이젠 신문을 보기가 어려..

길위의단상 2011.05.22

First of May

오월의 첫날, 'First of May'를 듣는다. 사라의 목소리로.... 누구에게나 특정의 날, 특정의 각인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소중한 추억, 아름다운 시간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길위의단상 201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