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3

이삿날의 해프닝

이사 가는 날이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집 주인,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와 함께 모였다. 집 주인한테서 전세금을 돌려받았는데 1억7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10만 원짜리 수표 열 장이었다. 그리고 세입자에게 지난달의 관리비 등으로 10만 원짜리 수표 넉 장을 건넸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끝났다. 큰 돈을 가지고 다니기가 뭣해 일단 은행에 넣기로 했다. 창구에서 수표를 내미는데 이런, 1억7천만 원짜리 수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디 흘려버린 게 아닌가, 어떻게 하지, 이 일을 어쩌지. 하필 제일 큰 덩치가 없어지다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만약 이 돈이 날아간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허둥대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해서 수표를 세어보니 10만 원권 일곱 ..

길위의단상 2011.04.20

비도 무서워진 세상

봄비가 내린다. 그러나 옛날의 그 비가 아니다. 봄비를 맞으며 산책하던 낭만은 사라졌다. 소나기를 온몸에 맞으며 뛰어놀던 시절은 동화 속 이야기로 남았다. 황사비나 산성비는 차라리 애교다. 이름도 생소한 ‘방사능 비’라니 더 섬뜩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아직도 방사성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주변의 땅과 바다는 오염되었고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유출물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농도가 적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원자력 사고는 양이나 확률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400개가 넘는다. 고의든 재앙이든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가 다른 지역에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방사능 공포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중국 원전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

길위의단상 2011.04.07

만약에

나는 소리에 너무 민감하다. 소음을 참지 못한다. 신경을 거슬리는 작은 소음일수록 더하다. 다른 것은 대체로 무난한 편인데 유독 소리에만 노이로제가 심하다. 그렇다고 음감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아예 제로다. 그러면서 주변 소리에는 예민한 게 내가 보아도 과민반응이 지나치다. 이것만 보면 사람들은 날 아주 까칠한 사람으로 안다. 옆 사람의 타닥거리는 컴퓨터 자판 소리, 전화 소리, 잡담들, 사무실에서는 이런 것들 때문에 정신집중이 안 되었다. 사무실에게 받았던 대부분의 스트레스가 나에게는 소리였다. 한번은 옆 동료에게 자판 좀 곱게 두들기라고 말했다가 눈물을 흘리게까지 만들었다. 뭐 저렇게 예민한 사람이 있느냐고 속으로 욕을 많이 했을 것이다. 내가 큰 사무실을 피하고 홀로 사무실 생활을 즐긴 건 이런 이..

길위의단상 2011.04.01

잠자리의 보수화

일전에 아내와 여행을 하며 온양온천에 있는 호텔의 특A급 객실에서 일박을 했다. 하룻밤 자는데 25만 원이나 하는 방이다. 우리가 그 돈을 내고 묵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예약은 보통 객실로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추가 부담 없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평일이라 객실 여유가 있고 마음씨 좋은 종업원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런데 방이 아무리 좋아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고대광실에 살아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면 초가삼간에서 마음 편히 사는 것만 못하다. 나이가 들수록 집을 떠나 밖에서 잠자는 게 불편해진다. 잠을 깊이 들지 못한다. 젊었을 때는 아무 데나 누우면 잠이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잠자리도 보수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제일 걱정거리가 잠자리 ..

길위의단상 2011.03.26

한 장의 사진(15)

내 교직생활 35년 동안 담임을 한 시기는 7년에 불과했다. 매우 특이한 경우다. 아마 교사들 대부분이 경력의 8할 정도는 담임을 맡으며 보냈을 것이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 학교에 과학주임이라는 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운 좋게(?)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당시는 한번 주임으로 임명되면 전근 갈 때에도 보직을 유지한 채로 이동했다. 그러니 이른 나이부터 담임을 안 하게 된 것이다. 40대에 들어 고등학교로 올라와서 보직을 벗었지만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담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남에 있는 소위 명문이라는 K 고등학교에 있었을 때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는 서로 담임을 하려고 교사들 간에 경쟁이 붙었다. 특히 고3 담임을 하려면 교장한테 특별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아무리 무능한 ..

길위의단상 2011.03.19

나도 그랬으니까

속 상하고 서운할 때마다 내가 고만했을 때를 생각한다. 나도 그랬을 테니까. 철없는 말과 행동으로 부모님을 아프게 해 드린 일이 얼마나 많았으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참으신 일들이 또 얼마나 되었으랴. 그렇게 생각하면 야속하다가도 마음이 풀어진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서 인정머리 없다, 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묘하다. 지금에 와서 그 말을 내가 다시 쓸 줄이야. 이제서야 외할머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못난 인간은 늘 때늦게 깨닫는다. 그러니 제 분수도 모르고 역정내지 말라. 사실은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

길위의단상 2011.03.07

2011. 2. 28.

1975. 12. 1. ~ 2011. 2. 28.,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이력의 마지막 날이다. 2월 초에 퇴임인사를 했고 행정 절차도 모두 끝났기 때문에 이미 퇴직 이후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공직생활의 종결일이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백수가 된다. 대학 동기들 몇이서 점심 먹으러 나오라는 걸 마다 했다. 왜 그런지 오늘은 그저 단촐하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해서 아내와 함께 날씨에 어울리는 영화를 보고 외식을 했다. 퇴직에 대한 말은 서로 아꼈다. 찬 바람이 불고 금방 비라도 뿌릴 듯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었다. 동기들 홈피에 명퇴를 축하하는 글이 떴다. 짧은 답신을 올렸다. 원래 55세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 오래 버틴..

길위의단상 2011.02.28

퇴직 스트레스

소화기능이 약해져서 두 주 이상 술과 커피를 끊었다. 신경만 쓰면 생기는 과민성대장증상이 재발했다.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잘 안 된다.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집에서 놀고 있는데도 몸무게는 줄어들고 있다. 요사이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주 원인은 퇴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의식은 퇴직을 반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기지만 무의식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아닌 척 한다고 내적 상실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퇴직이라는 충격파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이 정도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며 자위한다. 시간이 지나면 새 생활에 안착할 것이다. 누군가가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나타낸 걸 보았다. 배우자 사망 100 이혼 7..

길위의단상 2011.02.21

1000만의 비명

지금까지 소, 돼지만 350만 마리, 오리와 닭까지 합하면 1000만에 이르는 생명이 살처분되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프루엔자에 의한 사상 최악의 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살처분하는 현장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한다. 돼지는 생매장을 하는데 죽고 죽이는 처참한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다며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밑의 돼지들에게 갇혀 있는 큰 돼지들은 가라앉지 않으려고 더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방수비닐의 한쪽 면이 통째로 찢겨 나갔다. 마침내 포클레인의 바가지가 웅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이 찢긴 쪽 모퉁이에서부터 돼지들을 찍어내 가운데로 몇 번이고 퍼냈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진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웅덩이에서 공명이 되어 산속으로 퍼져 나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길위의단상 2011.02.12

44분

지난 1월은 강추위가 한 달 내내 맹위를 떨쳤다.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1월 평균기온이 -7.2도로 1963년 이후 48년 만에 가장 추웠다고 한다. 한 달 동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시간은 단 44분에 불과했다. 1월 최고기온은 14일 낮에 잠깐 기록된 0.3도가 고작이었다. 그동안 냉동고 안에 들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물이 내려가는 관이 얼어20일 넘게세탁기 사용을 하지 못했다. 한 번은 처제집에 옷보따리를 싸가지고 가서 빨래를 해오기도 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도 19일이나 되었으니 사흘 중 이틀꼴로 혹한을 경험한 것이다. 이같은 한파는 근래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이상현상이었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있는데 되레 추워지고 있다. 최근 4년의 ..

길위의단상 2011.02.05

오바마의 민망한 칭찬

"한국에서 교사들은 국가 건설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교사를 한국 같은 수준으로 존경할 때가 됐다."(In South Korea, teachers are known as 'nation builder'. Here in America, it's time we treat the people who educate our children with the same level of respect.) 오바마 대통령이 또 한국 교육을 칭찬했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되는데 오바마의 칭찬은 영 생뚱맞다. 한국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이다. 우선 '국가 건설자'라는 명칭부터 낯설다. 이런 말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 교사가 존..

길위의단상 2011.01.31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섬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작은 섬이다. 섬은 혼자로는 온전한 대륙이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 있으면고립된 섬이 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그 섬에 가고 싶지만 멀고 험하다. 네트워크는 지상에서 보내는 비상 신호다. 섬이 섬을 찾는 한 외로운 섬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섬은 스스로 충만한 존재, 바다 밑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몸이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길위의단상 2011.01.26

만년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많은 점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중학교에서는 연필을 못 쓰게 했다. 잉크를 찍어 펜으로 글씨를 쓰면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펜대는 무척 예뻤다. 디자인도 다양했고 속에는 여러 색깔의 알록달록한 무늬가 들어있어서 투박한 연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개구쟁이들에게 잉크병이 문제였다. 가방에는 쏟아진 잉크로 지도가 그려졌다. 책상이나 교실도 쏟아진 잉크로 얼룩이 지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잉크병에다 스펀지를 넣어가지고 다녔다. 만년필을 사용하게 된 건 훨씬 뒤의 일일 것이다. 비록 문방구에서 파는 값싼 만년필이었지만 그 덕분에 잉크병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뚜껑에는 화살표가 그려진, 아마도 파카 만년필을..

길위의단상 2011.01.17

장두노미

장두노미(藏頭露尾),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0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다는 뜻인데,진실을 숨기면서 들통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꿩이 매를 만나면 혼비백산하여 땅에 머리를 처박는데 몸은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숨으나마나다. MB 정권이 하는 짓거리가 꼭 그와 같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유난히 장두노미스러운 말잔치가 성행하고 있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인 녹색성장, 공정사회, 국격 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최근에 MB가 한 발언이다. 4대강 사업이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그 사람은 강산(江山)이라고 하면 토목공사밖에 연상을 못 하는 것 같다. 착각이라고 하면 그런대로 봐 줄 ..

길위의단상 2010.12.31

전쟁의 공포

새벽에 장모님에게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야들아, 큰일 났다. 전쟁이 났다. 빨리 테레비 틀어봐라." 아니,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슴이 방망이질 치면서 얼른 리모콘으로 손이 갔다. 그러나 TV는 조용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조금 뒤에 사정이 밝혀졌다. 새벽의 병원 구급차 소리를 듣고 전쟁 경보 사이렌으로 착각하신 것이다. 장모님은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지난 연평도 사건 이후 전쟁이 일어날까 봐 밤잠을못 주무신다. 물론 자식들 걱정 때문이다. 전쟁 안 일어나니까 염려 마시라고 해도 너희들은 안 겪어봐서 모른다고 하신다. 6.25를 경험한 세대 중에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망나니 북한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전쟁 불사까지 외치는 사람들이 적지 ..

길위의단상 2010.12.26

알람을 끄다

아침 6시면 단잠을 깨우던 휴대폰의 알람을 OFF 시켰다. 드디어 오늘부터 알람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밥벌이를 위해 살았던 시간표의 삶에서 떠났다. 아직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남은 기간은 미련 없이 휴가를 내고 쉬기로 했다. 알람을 끄고 넥타이를 벗어던질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날이 결국은 찾아왔다. 일상의 짐을 벗어버린 지금은 홀가분하다. 사람들은 십중팔구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묻는데, 너무 자주 들어 이젠 대꾸하기도 지쳤다. 그저 허허 웃기만 한다. 당분간은 아무 일 없이 지낼 것이다. 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책이 고프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묻혀 지낸다. 그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짜증 가득한..

길위의단상 2010.12.20

추기경의 궤변

"4대강 사업도 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면 무난하다." "발전을 위한 개발이냐, 파괴를 위한 개발이냐는 자연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다룰 문제이지 종교의 분야는 아니다." "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밤새면서 전력을 다하는 전문가들이 있고,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하느님 뜻을 헤아리는 데는 밤낮 생각하니까 하느님 뜻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지난 8일의 추기경 발언이 이랬다. 어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령을 감안하고 막중한 직무를 존중하여 추기경에 대한 쓴 소리는 삼가고 삼갔다. 그런데 더 이상의 인내는..

길위의단상 2010.12.11

블로그에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D씨와는 블로그 인연이 오래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초기인 2004년에 알게 되었으니 햇수로 7년이나 된다. D씨도 그때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는데 나와 달리 블로거들과 교류도 활발하고 글도 많이 올렸다. 여러 방면에 재주가 많으신 분이었다. 어느 날 내 블로그를 찾아와서 댓글을 달아서 알게 되었는데 나와 연배가 비슷했다. 그래서 더 친밀감을 느꼈지만 생각하는 바가 틀려서 공감을 나누기는 어려웠다. 글로 본 D씨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었고 프라이드가 강한 완고한 타입이었다. 그러다보니 댓글도 끊어졌고 그분의 이웃 명단에 내 이름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나 역시 찾는 횟수가 뜸해졌다. 그러나 가끔씩은 그분 블로그에 접속해 글을 읽고는 했다. 3천개가 넘는 글 중에서도 나비와 역사에 대한 내용은 전문가 수준을..

길위의단상 2010.12.06

신발 소동

식당에서 나왔는데 내 신발이 없어졌다. 신발장에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영 낯설었다. 주인을 불러내고 일행 십여 명이서 소란을 부렸다. 범인은 먼저 나갔던 옆 테이블 손님들이 분명했다. 다행히 주인이 아는 사람들이라 해서 전화 연락을 취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멍청한 놈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남의 것이지만 신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발에 넣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이런 아뿔싸, 내 신발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계속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그 동안의 소동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친구들한테는 또 얼마나 실없는 놈으로 낙인찍힐 것인가.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그런데 어디에나 의리파가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은 대책을 세..

길위의단상 2010.11.29

진인사대천명

요즈음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많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살지만 결과에는 초연한 마음이 진인사대천명이다.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길흉화복에 괘념하지 않는다. 그런데 ‘진인사’는 그렇다 치고 ‘대천명’의 마음가짐은 무척 어렵다는 걸 느낀다. 마음이 텅 비지 않으면 대천명이란 불가능한 것 같다. 티끌 같은 이익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게 인간인지라 들고나는 일들에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쉬운 게 아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안 되는 일은 안 되게 되어 있다는 사실만 받아들여도 세상살이가 훨씬 가벼워질 것 같다. 하늘의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순명이다. 이런 태도는 나약하고 현실 타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바탕이 넓고 훤하지 않으면 순명이나..

길위의단상 2010.11.25

2010 특이기상의 해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는 특이한 기상을보인 해였다. 여러가지 기상 기록이 갈아치워졌다. 겨울에는 한파, 여름에는 폭염 등 계절을 가리지 않고격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주에는진한 11월 황사도 생겼다. 이런 변화들이 급격한 지구 온난화 경향과 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는 것 같다. 하긴 이런 거시적 현상을 명쾌하게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지구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금년에 나타난 이상 기상 현상들은 아래와 같다. 폭설1월 4일 서울 적설량 25.8 cm 서울 103년 만의 최대 폭설 한파1월 서울 월평균 기온 영하 4.5도 평년보다 2.0도 낮은 기온 이상저온 4월 서울 월평균 기온 9.5도 평년보다 2...

길위의단상 2010.11.15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라

아침에 H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대 말년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란 말도 있듯이 자기관리에 철저함도 필요할 것 같군요. 성향상 안공께서는 알아서 하시겠지만.... 혹시 과학실 실험시 학생안전 주의하시고 절대 음주운전하지 마시고 아침방송에서 "매일 밤 남편과 행복하소서!"라고 외치던 정00도 결국 땡중과의 섹스스캔들로 낙마했듯이 남녀관계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모를 일이니 사모님이외는 12월까지 쳐다보지도 마시고 ㅋㅋ... 위의 사항을 참고하시면 인생2모작 진입도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건조한 생활에서 이렇게라도 한 번 웃어보았다. 동료의 말대로 인생사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돌부리가 예고를 하고 발을 거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람은 명퇴를 앞두고 있다가 음주운전에 적발돼 명퇴 자격을 잃어버린 ..

길위의단상 2010.11.09

시월의 마지막 날

시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왠지 쓸쓸해진다. 한 해가 다 지나간 것 같다. 마음이 시리다. 11월과 12월이 남아있지만 가는 해가 아쉬워서 주어진 여분의 달 같다. 오늘이 일년의 마지막인 듯 허전하다. 낙엽은 떨어져 쌓이고 가을은 더욱 짙어간다. 이별, 아쉬움, 슬픔, 그리움, 추억, 눈물, 후회....이런 시월의 마지막 날 이미지는 이용의 노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시월의 마지막 날' 반대편에는 '오월의 첫날'이 있다. 그의 화실에서는 'First of May'가 춤을 추었다. 창으로는 오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늘 ..

길위의단상 2010.10.31

싸가지

아내는 드라마를 보다가 종종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찬다. “저 싸가지 좀 봐!” 드라마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꼭 싸가지가 등장한다. 그래야 이야기에 긴장이 조성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싸가지에 열 받으면서도 드라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싸가지를 욕함으로써 생기는 심리적 대리 해소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직접 못하는 욕을 드라마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도 손가락은 다른 델 가리키면서 킥킥거리고 웃은 적이 있다. 싸가지는 ‘싹’과 ‘아지’가 합쳐진 말이다. ‘아지’는 명사와 결합하여 작은 것을 나타내는데 주로 속된 표현으로 쓰인다. ‘속’과 합쳐져 소가지가 되고, ‘목’과 합쳐져 모가지가 되는 게 그런 예다. 싸가지라는 말에도 그런 부정적 의미가 들어..

길위의단상 2010.10.19

독방살이

독방살이를 2년 동안 하고 있다. 옆에 조교가 있지만 서로 말이 별로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하루 내내 몇 마디밖에 못 할 때도 있다. 다른 사무실로 마실을 가는 일도 별로 없으니 늘 혼자다. 그나마 교실에 들어가서 떠들 일이 있으니 입에 곰팡이가 생기지는 않아 다행이다. 독방살이의 결과인지 사람을 만나면 말이 많아졌다. 나는 과묵한 편이고 주로 듣는 쪽이다. 예전에는 ‘크렘린’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나도 말을 많이 한다. 또 마음 속 생각도 잘 드러낸다. 아마 독방살이의 외로움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말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보다. 어쩌다 말 할 기회가 찾아오면 얼씨구나, 하고 떠들게 된다. 말이 많아진 나를 보고 내가 놀라기도 한다. 열심히 지껄이고 있는데 상대방은 딴..

길위의단상 2010.10.08

골디락스 행성 첫 발견

며칠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골디락스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골디락스 행성[Goldilocks planet]은 어떤 항성의 생물권 안을 돌고 있는 외계 행성으로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행성이다. 항성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있어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아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공전궤도를 ‘골디락스 영역’이라고도 부른다. 그동안 많은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지만 골디락스 행성은 처음이다. ‘글리제 581g’라 명명된 이 골디락스 행성은 지구에서 20광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은하계의 크기에 비하면 우리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적색왜성인 항성 ‘글리제 581’[Gliese 581] 주위를 37일에 한 바퀴씩 돈다. 지구보다 약간 더 큰데 중력은 인간이 걷기에 ..

길위의단상 2010.10.02

자전거도 조심합시다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요사이는 장비가 좋아져서 그런지 자전거 스피드도 상당하다. 건강이 우선이겠지만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타는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기분이 좋겠지만 그만큼 위험도 커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 자전거 사고를 옆에서 보았다. 길을 건너던 사람과 달리던 자전거의 충돌이었다. 둘 다 상대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앞으로 날아갔고, 걷던 사람은 넘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혔다. 머리에서 나온 붉은 피가 아스팔트 위로 번져나갔다. 그 사람은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너무 무서워 나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헬멧을 써서충격이 덜했는지 얼굴에 피를 흘..

길위의단상 2010.09.29

한 장의 사진(14)

추석 차례를 지낸 날 밤, 돌아가신 아버님 꿈을 꾸었다. 휠체어에 앉으신 아버님은 의기소침한 채 기력이 없으셨다. 꿈 내용은 이랬다. 어머니와 내가 집에 새 냉장고를 들여놓았는데 아버지와는 상의를 하지 않았다. 무시를 한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 마음을 서운하게 한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굳은 얼굴에 변화가 없으셨고 알았다, 라고만 하시고 고개를 돌리셨다. 무척 쓸쓸한 표정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꿈에서 늘 처량한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지금은꿈이 뜸하지만 여러 해 전에는 아버지 꿈을 자주 꾸었다. 꿈은 대동소이했다. 비를 흠뻑 맞고 후줄그레한 모습을 보이시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이셨다. 행방불명된 꿈도 자주 꾸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항상 힘들어하시..

길위의단상 2010.09.25

[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식품공학 코끼리를 도축한다. 도축한 코끼리를 통조림으로 만든 뒤 냉장고 안에 넣는다. 기계공학 큰 냉장고를 만들어 코끼리를 넣는다. 유전공학 암 수 코끼리를 하나씩 구하여 짝짓기를 시킨다. 그때 수정란을 추출하여 냉장고에 넣는다. 전자공학 ‘코끼리’를 low pass filter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고기리’가 나온다. ‘고기리’에 circular right shift 연산을 한다. 그러면 ‘리고기’가 된다. ‘리고기’와 ‘오XXX’를 logical or 게이트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오리고기’가 된다. 이제 오리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마이크로공학 냉장고 안으로 삽입할 코끼리의 모든 정보를 작성하여 마이크로 칩으로 전송한다. 코끼리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마이크로 칩을 냉장고 안으로 집어넣는다. 컴퓨..

길위의단상 2010.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