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3

주권국가 맞아?

미국과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존의 300km에서 이제는 800km까지 나가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거리가 어떻게 되는 것보다도 미사일을 만드는데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희한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이웃 나라를 보면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은 1만km가 넘게 날아가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 대포동 미사일도 8천km나 되는 사거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아직 백km대에서 놀고 있다. 로켓 연료로 무엇을 쓰느냐도 미국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신세다. 국가 간의 복잡한 이면 사정을 알지는 못한다.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제한을 두는 국제간의 협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율의 문제다. 능력이 있지만 스스로 개발하지 않는다고 선..

길위의단상 2012.10.09

조선 혁명 선언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저께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문재인 씨가 선출되었고, 내일은 안철수 씨가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둘이 단일화를 이루어 여권의 박근혜와 맞붙을 것 같다. 볼만한 싸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씨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들으며 문득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 혁명 선언'이 떠올랐다. 온건한 이미지의 문재인 씨의 얼굴을 보며 왜 하필 단재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단재의 과격한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간디의 비폭력 정신에 매료되었던 때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단재도 점차 이해하게 된다. '조선 혁명 선언'을 읽으며 선생의 의기를 다시금 느껴본다. 선생은 혁명의 길은 파괴에서 시작한다고 선언하고, 구체적으로 파괴해야 할 대상 다섯 가지를..

길위의단상 2012.09.18

발 등에 떨어진 불

첫째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임신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게 무척 힘들다는 걸 느꼈다. 우선 병원의 과잉(?) 진료비에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를 안 받는다, 할 수도 없다. 첫째도 초음파 정밀 검사, 양수 검사, 유전자 판별 검사 등을 받느라고 2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검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외국에서는 35세가 넘는 고령 임산부가 아니면 초음파 이외의 검사는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는 조금만 이상이 보여도 온갖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권한다. 두 달 전에는 태아에게 다운증후군이 염려된다고 해서 특별 검사를 받기도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가족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의사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질병 ..

길위의단상 2012.09.17

나무의 꿈

아름다운 가사에 맑고 고운 인디언 수니의 음색이 잘 어울린다. 내가 좋아하고 자주 듣는 노래다. 초록별 뜬 푸른 언덕에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딱따구리 옆구리를 쪼아도 벌레들 잎사귀를 갉아도 바람이 긴 머리 크러놓아도 아랑곳없이 그저 묵묵히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아름드리 어엿한 나무가 만개한 꽃처럼 날개처럼 너를 품고 너희들 품고 여우비 그치고 눈썹달 뜬 밤 가지 끝 열어 어린 새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북두칠성 고래별자리 나무 끝에 쉬어가곤 했지 새파란 별똥 누다 가곤 했지 찬찬히 숲이 되고 싶었지 다람쥐 굶지 않는 넉넉한 숲 기대고 싶었지 아껴주면서 함께 살고 싶었지 보석 같은 꿈 한 줌 꺼내어 소색거리며 일렁거리며 오래 오래 안개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

길위의단상 2012.09.03

한 달 동안의 금주

이빨 4개를 빼고, 때우고, 신경치료 하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특히 신경치료가 복잡했다. 치아에 있는 신경을 죽이고 보철물을 씌우는 작업인데 갈 때마다 2시간 가까이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치료 기간에는 술을 딱 끊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금주를 한 건 처음이었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앞에 두고 소주병을 꺼냈다가는 도로 원위치시킨 게 여러 번이었다. 밖에서는 "웬일이야?" 하는 소리도 들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니어서인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은퇴를 하고 나니 술 마시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모임이나 회식이 잦고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저절로 술을 찾게 된다. 또, 퇴직과 동시에 서울을 떴으니 친구..

길위의단상 2012.09.02

덴빈과 볼라벤

두 태풍, 덴빈(TEMBIN)과 볼라벤(BOLAVEN)이 이틀 사이로 한반도를 지나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덴빈의 경로도 특이했다. 덴빈과 볼라벤은 형제 태풍이었다. 덴빈은 8월 19일에, 볼라벤은 20일에 북위 18도 해역에서 태어났다. 22일까지는 두 태풍의 세력이 비슷했으나, 23일부터 덴빈은 약해졌고 볼라벤은 강해졌다. 볼라벤이 강했을 때는 둘 사이에 60hPa 차이가 났다. 덴빈은 볼라벤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형이 동생한테 치인 격이었다. 북진하던 덴빈은 튕겨 나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치 두 당구공이 충돌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덴빈은 스핀이 걸린 당구공처럼 대만 해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타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덕분에 대만이 며칠간 계속해서 태풍의 영향권에 놓였다. 이때 ..

길위의단상 2012.09.01

화성의 속살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가 지난 8월 6일에 화성에 착륙했다. 작년 11월에 지구를 출발하여 8개월여 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큐리오시티는 주로 화성의 생명체 존재 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그동안 조용하던 미항공우주국[NASA]이 이제 화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인간의 호기심은 멈출 줄 모른다. 큐리오시티가 보내주는 선명한 화성 표면 영상에 가슴이 설렌다. 우리 사막의 일부라 해도 믿을 정도로 지구와 닮았다. 아주 옛날에는 화성에도 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면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 흔적이라도 발견한다면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 먼 미래의 어느 때에는 저곳에도 인류가 북적거리며 살게 될까? 나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큐리오시티가 보낸 사진이다. 큐리오시티를 화성에 착륙시..

길위의단상 2012.08.28

잠적

B 선배가 잠적했다. 두 달 전 학교에 명퇴 신청서를 낸 뒤부터 연락 두절이다. 풍문으로 들리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수업 시간에 학생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욕설을 한 모양이다. 모욕을 당했다며 학생의 부모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학교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린 것 같다. 자랑할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도 쉬쉬하니 저간의 상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선배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많이 자책도 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선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무척 열성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문제를 풀며 교재 연구를 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젊은 선생들 두세 배는 노력했다. 같이 근무했을 때 보면 ..

길위의단상 2012.08.19

황당한 부탁

모교에서 전화가 왔다. 제자라는 사람이 나를 찾는데 전화번호를 가르쳐줘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잠시 후 벨이 울렸다. 10여 년 전에 J고등학교에서 2학년 때 담임을 했던 제자였다. 이름을 말하는데 간신히 얼굴이 기억났다. 졸업 후에는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다음다음 주에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고작 결혼식 두 주를 앞두고 느닷없이 전화로 주례 부탁이라니, 선생이 무슨 커피 자판기도 아니고 내심으로는 많이 불쾌했다. 몸 핑계를 댔더니 제자도 싹싹하게 전화를 끊었다. 주례를 부탁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다. 최소한 몇 달 정도만 미리 얘기했어도 고민을 했을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2.08.15

올림픽 단상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중계를 보다 보면 외국 선수의 직업이 소개될 때가 있다. 유럽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교사, 소방관, 검찰관 등 다양하다. 우리는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국가대표 선수촌에 입촌하고 몇 년간 운동에만 전념하며 전문 훈련을 받는다. 외국 사정을 잘 모르지만 우리만큼 특별 훈련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이 있다는 것은 근무시간 외에 파트타임으로 틈틈이 훈련하는 것은 아닐까?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차이다. 우리나라가 메달을 많이 따고 스포츠 강국이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외화내빈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 전체가 운동을 즐기기보다는 소수정예주의로 성적을 낸다. 외국에는 운동 종목별로 많은 클럽이 있고, 거기에 등록된 선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그만큼 운동..

길위의단상 2012.08.14

이런 몸을 가지고

중국에 다녀온 뒤 심한 몸살을 앓았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인데도 난방을 때고 겨울 이불을 꺼내 덮었다. 이틀을 끙끙거린 뒤 다행히 열은 내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빨도 탈이 났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하나에서 통증이 왔다. 혀만 스쳐도 아픔이 더 했다. 다른 하나는 찬 게 닿으면 견딜 수 없게 욱신거렸다. 치과에 갔더니 둘 다 신경 치료에 대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한 개까지 세 개의 이빨을 치료하는데 거금 150만 원이 들었다. 지금도 병원 왕래 중이다. 이 모든 게 중국 여행의 여파인 것 같다. 피로 누적이 몸살과 이빨의 병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너무 더워서 찬 아이스케키를 마구 깨물어 먹었다. 평소 부실했던 이빨이 이때다, 하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2.08.12

난민의 설움

파란이 없어지면서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옮겨졌다. 파란 블로거들은 집단 난민이 되어 낯선 티스토리에 새 터를 잡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벌써 두 번째의 강제 이주다. 한미르에서 파란으로, 이번에는 파란에서 티스토리로,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지난 경험이 있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초기에 올렸던 사진들은 'invalid file'이라는 글이 뜨며 나오지 않는다. 파란에서 티스토리로 이관되면서 빠진 파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줄 간격과 띄어쓰기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시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크다. 또한, 내용 검색도 되지 않는다. 가장 답답한 건 태그 내용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태그가 없으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정리하는데 너무 애로사항이 많다. 옛 모습..

길위의단상 2012.07.15

골프 권하는 친구

퇴직하고 나서 제일 많이 받은 권고가 골프를 배우라는 것이었다. 물론 골프를 즐기는 친구들로부터다. 골프를 못 치니 그들과 어울리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쉬울 건 없지만, 이왕이면 다양하게 친구를 사귀는 데는 약점이 된다. 그래서 아주 잠깐이지만 골프를 배워볼까 하고 망설인 적도 있었다. 골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골프 예찬론을 듣는다.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며, 또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데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나에게는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있다. 골프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골프장을 생태적 측면에서는 '녹색 사막'이라고 부른다. 골프장은 동식물이 어우러진 다양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녹색 잔디로..

길위의단상 2012.07.01

파란이 사라진다

내 블로그의 포털로 사용해 오던 '파란'이 2012년 7월 31일 24시에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공고되었다. 심심치 않게 폐쇄 소식이 들리더니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블로그를 옮겨야 하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다. 2003년에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한미르'였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파란'에 흡수되었다. '파란'은 KT에서 의욕차게 만들더니 수익이 안 나서 문을 닫기로 한 모양이다. 남의 내부 사정에 왈가왈부할 바는 아니지만 오직 경제적인 논리로 결정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많은 서비스가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블로그는 '티스토리'로 이관된다고 한다. 제발 내용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옮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번에 '한미르'에서 '파란'으로 넘어갈 때는 사진이나 ..

길위의단상 2012.06.16

술이 종교보다 좋은 여덟 가지 이유

요네하라 마리의 글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다. '술이 종교보다 좋은 여덟 가지 이유'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아직 없다. 2. 다른 술을 마신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없다. 3. 판단력이 없는 미성년자에게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4. 마시는 술의 상표를 바꿨다는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는 않는다. 5.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이나 투석형에 처해진 사람은 없다. 6. 다음 술을 주문하기 위해 2,000년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7. 술을 많이 팔기 위해 속임수를 쓰면 법에 따라 확실히 처벌받는다. 8. 술을 실제로 마시고 있다는 것은 간단히 증명할 수 있다.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어..

길위의단상 2012.06.08

웃음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쓰는 이순구 화백의 그림이다. 덕분에 컴퓨터를 켤 때마다 활짝 웃는 소년의 웃음에 미소 짓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웃음을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떤 조사로는 하루에 어른들이 웃는 횟수는 어린이의 30분의 1이라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거리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바로 내 모습이다. 저렇게 환하게 웃어본 게 언제인가 싶다. 웃는 근육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순수한 마음에서 해맑은 웃음이 나온다. 마음이 굳었으니 표정도 딱딱하다. 늙으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데 그 말을 믿어볼까? 파안대소하며 호탕하게 웃어보고 싶다.그 많던 웃음은 다 어디로 갔는가? 요사이는 웃음 치료도 있는 모양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길위의단상 2012.05.31

[펌] 광주의 정신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

길위의단상 2012.05.18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가 쓴 책 제목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것도 같은데 내용은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책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는 시니컬한 웃음 하나면 충분하다. 세상은 바보들 천지다. 주변을 돌아보라. 자신이 바보인 줄도 모르는 진짜 바보들이 아주 많다. 그런 바보들 속에서 나 역시 같은 바보짓을 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미쳐 돌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텐데,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걸 보니 나도 바보임이 분명하다. 바보들 세상에서는 거꾸로 된 바보처럼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바보 XXX' 하며 '바보'라는 이름을 자랑스레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바보에도 급이 있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오..

길위의단상 2012.05.10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을 색깔로 표시한 지도다. 부끄러운 우리의 현주소다. 내가 선거권을 가지고 투표를 시작한 이래 동쪽 지역은 언제나 이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세월이 흘렀는데도 똑같다. 패거리 의리도 이만하면 알아줄 만하다. 그나마 서쪽은 알록달록 물이 들고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뭘까를 생각한다. 나도 고향이 동쪽이지만 고향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물론이나 정치적 냉소주의는 핑계다. 단순한 지역색 이상의 무엇이 인간을 좌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인간은 떼로 움직이게 되면 멍청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모른다. 지역, 파벌, 민족으로 갈라져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 선거만 끝나면 뒤를 덜 보고 나온 것처럼..

길위의단상 2012.04.24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

록펠러는 석유를 '악마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석유왕이었던 그는 검은 황금의 어두운 그늘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석유 없는 현대 문명을 상상하기 어렵다. 인류에게 엄청난 물질적 부와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재앙도 선물했다. 만약 석유가 없었다면 대규모 살육이 일어난 세계대전이나 핵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도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는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욕망이 깔려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지만 석유 역시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 화려한 기술 문명을 꽃피웠으나파괴하는 힘도 함께 가지고 있다. 김진송님의 책을 보다가 석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 전설을 접했다. 고전적인 전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마 이분이 만들어낸 이..

길위의단상 2012.04.14

바둑과 인생

한 달에 한두 번은 바둑을 두러 종로에 있는 기원에 나간다. 회원이 다섯 명인데 오전에 한 판을 두고, 점심 먹고, 오후에 세 판을 둔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 그날은 하루 종일 바둑만 둔다. 방내기라고 해서 지는 사람은 집 차이에 따라 돈을 내야 한다. 최하 3천 원에서 1만2천 원까지 나온다. 3만 원 정도면 두 끼 식사를 포함해서 하루를 잘 놀 수 있다. 다섯 명 중에서는 내 실력이 제일 처진다. 2승2패만 해도 준수한 성적이다. 오기가 생겨서 요즈음은 바둑 TV를 보며 공부를 하지만 진보는 거의 없다. 묘한 건 욕심을 부릴수록 바둑은 더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 번에는 과하게 공격하다가 도리어 내 돌이 잡히며 만방으로 지기도 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인데..

길위의단상 2012.04.03

송전탑의 비극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하는 철탑 때문에 한 노인이 분신해서 목숨을 끊었다. 경남 밀양에 살았던 74세의 이치우 할아버지로 지난 1월 16일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력공사는 부산 기장에 있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창녕에 있는 변전소까지 90km 구간에 765kV 송전선로를 깔기 위해 161개의 송전탑을 세우기로 한다. 송전선이 논밭 위로 지나가는 밀양 주민들은 건강과 재산권의 보장을 요구하며 공사 반대 시위를 했다. 대부분이 일흔이 넘은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한전측은 공사를 강행했고 결국 노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치우 할아버지는 이장을 15년 넘게 하면서 삼 형제와 함께 노모를 모시고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송전탑이..

길위의단상 2012.03.22

법륜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바로 이웃 동네인 성남에서 법륜(法輪) 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회가 열려서 아내와 함께 참가했다. 오전에 열린 강연이었는데 백수인 게 이래서 좋다. 법륜 스님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국을 돌며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스님의 강연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즉문즉설(卽問卽說) 형식으로 청중이 질문하면 스님이 즉석에서 대답한다. 그 대답이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고 정곡을 찌른다. 이번에도 넓은 강당의 좌석뿐만 아니라 통로와단상에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위로와 희망과 격려의 목소리를 갈망하고 있음을 느꼈다.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사회임을 입증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애환을 나누기를 바란다. 그 역할을 스님이 맡고 있는 셈이..

길위의단상 2012.03.15

달 뒷면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27.3217일로 똑 같다. 그래서 늘 같은 면만 지구를 향한다. 달 뒷면은 1959년에 소련 우주선에 의해 최초로 촬영되었다. 학교에서 달의 공전과 자전주기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걸 처음 배웠을 때는 무척 신기했다. 우연이라면 너무 기묘한 우연이었다. 그러나 태양계에 있는 대부분의 위성이 달과 마찬가지로 공전과 자전주기가 같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고 조금은 허탈했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과학의 원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성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일치하는 이유는 행성과 위성 사이의 조석력 때문이라고 한다.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힘이다. 지구의 인력이 달에 영향을 미쳐서 빠른 자전은 느리게 하고, 느린 자전은 빠르게 해서 결국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지게 된다. ..

길위의단상 2012.03.08

평화의 섬을 평화롭게 하라

어제 정부에서는 주민과 시민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제적, 전략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침 이번 주 가톨릭 주보에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에서 배부한 유인물이 들어 있었다. 4쪽으로 된 만화인데 해군기지 건설의 실상과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내용을 옮긴다. 제주 강정마을 "떠나요~ 둘이서~ 제주도 푸른 밤 아래~"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며, 가슴 설레일 만큼 아름다운 제주 "그 중에서 이곳 강정마을은 더욱 아름다워요." 길이 1.2km, 너비 150m에 달하는 통바위인 구럼비 바위가 있고, 대규모 역사 유물과 멸종 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 맹꽁이가 살만큼 깨끗하고, 바다에서는 돌고래가 자맥질하며 뛰놀고..

길위의단상 2012.03.01

화려한 공상

잠자리에 들어서 억지로 공상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웃 덕택이다. 한밤중의 소음을 견디기 위해서는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책을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게 더 낫다. 공상은 화려하고 자극적일수록 좋다. 요사이는 호화유람선으로 세계 일주를 하는 상상을 한다. 어떤 행운이 찾아와 가장 크고 화려한 선실이 공으로 주어졌다. 야외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거실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세계의 일품요리가 끼니마다 제공된다. 예쁜 아가씨의 룸서비스를 받으며 어느 왕에 부럽지 않은 여행을 한다. 유람선이 항구에 정박하면 특별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모습을 그린다. 이런 상상은 마취제로 작용해 위층 소음을 잠시 잊는다...

길위의단상 2012.02.2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아내는 불면증을앓고 있다. 4년 전 뇌수술을 받은 뒤 더 심해졌고, 작년에 딸을 시집보낸 전후로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그때는 수면제도 약발이 듣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흔했다. 본인의 고통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심정도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다행히 해가 바뀌면서 요사이는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이젠 가끔 수면제를 이용할 뿐 전에 비하면 수월하게 잠이 드는 편이다. 그래도 두세 시까지는 침대와 거실을 왔다갔다한다. 잠드는 게 전쟁이다. 반면에 나는 잠이 너무 많다. 하루에 아홉 시간 넘게 잠을 잔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아침 여덟 시가 넘어야 눈을 뜬다. 아내가 자야 할 잠을 내가 다 뺏어온 것 같다. 어제는 저녁 운동을 다녀온..

길위의단상 2012.02.02

표준모형

올해 과학계의 최대 화제는 힉스(Higgs) 입자의 발견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의 흔적을 포착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올해는 아마 확증의 수준까지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표준 모형에 대한 강력한 입증이 된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과학은 표준 모형으로 답한다. 표준 모형은 다양한 실험적 검증을 통해 가장 믿을 만한 이론적 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우주에는 네 개의 기본 힘이 존재한다.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중력이다. 왜 하필 우리 우주에는 네 개의 힘이 존재하는 걸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표준 모형은 중력을 제외한..

길위의단상 201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