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3

1994 독일 연수기(1)

1994년에 전국의 과학 교사 40 명이 독일로 연수를 다녀왔다. 그해에 시작된 과학 교사의 해외 연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운 좋게도 1차에 참가할 수 있었다. 처음 두 주 동안은 뒤스부르그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고, 나머지 두 주 동안은 독일의 동서남북을 순회하며여러 시설들을 견학했다.그리고 주말에는 파리와 네덜란드 관광도 했다.나로서는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경험을 했으며 선진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실제로 과학 연수보다는 독일이라는 나라의매력을여러 방면에서 맛 본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이 처음에는 모임을 갖다가 지금은 흐지부지 되었다. 10년 뒤에 다시 독일을 가기로 했는데 역시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때의 일기를 보며 아련히 추억할 뿐이다. ..

길위의단상 2010.02.22

좌측통행

"야, 저기 좌측통행이 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별명은 '좌측통행'이었다. 입학해서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 준것 중 하나가 좌측통행이었던 것 같다. 아마 선생님은 학교 복도에서만이 아니라 등하굣길에서도 좌측통행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집과 학교는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신작로와 마을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 나는 선생님 말씀을 따라 왼쪽만 고집하며 걸었던 모양이다.그래서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 '좌측통행'이었다. 당시 코흘리개들이 선생님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따랐을 테지만 개구쟁이들이 어디 그런가. 선생님 눈길을 벗어나면 천방지축이 되었을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나만 유독 왼쪽으로만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길위의단상 2010.02.17

은퇴하면 10년이 젊어진다

스웨덴의 어느대학에서 회사에서 은퇴한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그 연구에 의하면 은퇴하고 난 뒤평균적으로 10년 정도 젊어지고 건강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상은 프랑스의 전기회사에 근무한 뒤 은퇴한 사람들 1만여 명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정반대여서 흥미롭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은퇴하고 일을 놓게 되면 빨리 늙게 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일이 없어진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심지어는 병까지 걸리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독특한 '일 중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번에 전주에 내려가서 친지들을 만난 자리에서 명퇴 문제가 화제로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만류했는데 그 이유가 일이 없어지면 사람 노릇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퇴임을..

길위의단상 2010.01.26

법원 판결은 정당하다

지난 연말부터 어제까지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잇달아 이어졌다. 무리하게 보였던 검찰의 기소가 법원으로부터 정당한 판단을 받은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검찰측에서는 과격한 말로 비난을 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 몇 주 사이에 시국이나 언론에 관계된 주요 판결만 해도 다섯 가지가 된다. 1. 일제고사 거부 교사에 대한 파면 취소 결정 2.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기록 공개 결정 3. 강기갑 의원의 공무집행방해죄 무죄 4. 시국선언교사 무죄 5. 광우병에 대한 'PD 수첩' 보도 내용 무죄 작년 교사의 시국선언에 대해서 정부는 여러가지로 협박을 하면서 서명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들이 내건이유는공직자의 정치활동 금지와 복종의 의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것..

길위의단상 2010.01.21

고추장 항아리

고향집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50년이 넘은 고추장 항아리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장독대에는 그 외에도 수 대째 내려온 100년이 넘은 큰 독도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항아리들이지만 애환이 깃든 사연을 알고 나니 그냥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알고 나면 별 볼 일 없거나 하찮은 물건이란 없는 법이다. 어머니는 열여섯에 시집 오셨다. 시집은 제대로 된 솥이나 그릇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나가시게 되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전에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어느 때는 식량이 떨어져서 온 식구가 물만 먹으며 사흘을 누워있기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친척집으로 양식을..

길위의단상 2010.01.18

억울하다

새해를 맞아 받은 휴대폰의 문자 메세지 중에서 제일 특이했던 것은 초등학교 동기인 J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이 '경인년 새해가 밝아오네 벌써 또 한 살 더 먹는다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도 드네'였다. 의례적인 기원이나 축하의 인사말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나온 '억울'이란 말이자꾸 신경이 쓰였다.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신년의 인사말로 쓰기에는생경하게 느껴졌다. J는 동기들 중 가장 성공한 친구다. 증권회사에 다니며 고위직에도 올랐고 주식으로 돈을 모아 강남에 빌딩도 가지고 있는 부자다. 몇 해 전에 퇴직했는데 모두가 부러워 할 정도로 삶의 여유를 즐기며 산다. 자식들도 잘 컸고 건강도 우리들 중에서는 가장 나을 정도로 관리를 잘 하고 있다.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행복하다고 해야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0.01.02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똥은 귀하게 대접받았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골목에다 똥을 누면 일차적으로 개들의 먹이가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는 어른들이 삽으로 떠다 거름에다 던져 넣었다. 오죽했으면 다른 집에 가더라도 똥은 내 집에 와서 누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똥은 거름으로 되어 땅을 살찌우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사람은 그 먹을거리를 먹고 다시 똥을 눈다. 옛날에는 그렇게 생태적으로 완벽한 순환계가 이루어졌다. 쓰레기나 폐기물이란 있을 수 없었다. 똥이 처치 곤란한 혐오물이 된 것은 도시가 발달하면서부터였다. 거리에 쌓이는 똥 때문에 하이힐이 생기고 향수가 생겼다는 설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수세식 화장실이 발명되었지만 정화조와 하수처리장을 거치면서 소비되는 어마어마한 물과 환경오염을 생각..

길위의단상 2009.12.07

좋은 하루 되세요

명색이 글이랍시고 날마다 끼적거리다 보니 가능하면 정확한 말을 찾아 쓰려고 애쓰게 된다. 또 문장이 문법에 맞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잘못 알고 있는 낱말이 무척 많고 제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잘 쓰는 표현 중에 ‘좋은 하루 되세요.’가 있다. 메일이나 블로그의 댓글 인사말에서 상대방에 대해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문법상 잘못 되었다는 지적을 L 형으로부터 받았다. 사람을 ‘하루’가 되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이것도 사람을 여행이 되라고 하니 적절치 않음은 마찬가지다. 또 ‘~되세요.’와 같이 명령형으로 인사를 하는 것도 어색하다고 지적해 주었다. 가만..

길위의단상 2009.11.19

독일 부자들의 부유세 청원

지난달 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독일 부자들이 부유세 도입을 청원했다는 보도였다. 최근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는 독일정부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신들에 대한 세금을 올려줄 것을 촉구하는 인터넷 청원운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며 50만유로(한화 약 9억원) 이상의 개인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올해와 내년에 5%의 재산세를 내면 1천억유로(한화 약 180조원)의 국가 세수가 생긴다는 말한다. 독일의 세금 정책이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난 달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부유세 신설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패배했고, 감세를 추진하는 친기업 정당이 승리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록 일부일지라도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고 요..

길위의단상 2009.11.08

지구를 정화하라

이외수님의 글에서 공룡 멸종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약 6천만 년 전의 거대한 운석 충돌로 인해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운석 충돌 후의 충격과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먹이사슬 붕괴로 덩치가 큰 공룡이 아마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충돌 흔적이 남아 있는 지층 위에서도 공룡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공룡의 멸종은 다른 원인이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작가는 기발하게도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공룡이 의도적으로 제거되었으리라고 상상한다. 세균이라는 존재는 생명계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균은 생명계의 균형이 깨지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쟁이 휩쓸고 간 지역에는 어김없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가 여기에..

길위의단상 2009.11.03

[펌] 독일에서 진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나

‘진보는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 보수는 뭐, 고장 난 것 고치는 사람인가?’ 정도였지요. 한국에 살던 서른네 살까지의 나였습니다. 처절한 입시의 지옥을 통과하여 대학이라는 곳을, 그것도 데모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미니스커트 위로 빨간 입술에 은빛 귀걸이 찰랑이며 노트 하나 살짝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학생이 허름한 잠바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독재타도’를 외치던 전투적인 그녀들보다는 좋았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사건건 사회의 비리를 들추며 이 사회를 쓰레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저 사람은 열등감이 많아서 그런가?’라며 나름대로 체제에 순응하며 양처럼 순하게 살았..

길위의단상 2009.10.31

촌놈

이웃 블로그에서 '촌놈'에 관한 짧은 글을 흥미있게 읽었다. 은희경의 소설 '비밀과 거짓말'에 나오는 대목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어느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나 정도의 문제지 촌놈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나는 아니라고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촌놈을 좋아할 사람은 적겠지만 소시민으로서의 촌놈은 남에게 그다지 큰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예를 들면 촌놈이 종교를 가지면 광신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다. 싫으면 피하면 된다. 문제는 촌놈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촌놈 되기를 부추기는 풍조가 되면 아예 망조가 든 나라다. 촌놈들에 의해 어떤 촌놈은 영..

길위의단상 2009.10.28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께 고백하는 내용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 서울 용산에 있는 청파교회 이야기가 실렸다. ‘부동산 굴리는 건 이웃 꿈 빼앗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희년실천주일 참여교회 중 하나인 청파교회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희년(禧年)이란 이스라엘 민족에게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로서, 희년이 되면 가난한 이들의 빚을 탕감하고 땅을 돌려주고 노예는 자유를 얻는 해방의 해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이스라엘 땅에서 실천되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은 기독교에서 이 희년의 정신이 실종된 것 같다. 일부 교회에서 희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희년실천주일을 지키는데 청파교회도 그중 하나다. 신자들은 부동산 과다 보유나 부동산을 통한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토지 보유세 강화 정책을 지지하고, 토지임대료 수입은 가난한 이웃과 나누..

길위의단상 2009.10.22

히말라야를 포기하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허리가 불안하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고 다리 근육이 결린다. 겨우 직장만 오가면서 집에서는 누워있는 게 일이다. 덕분에 푹 쉬기는 하지만 짜증이 없을 수가 없다. 남자 허리가 부실하면 인생 종쳤다는 말이 실감나게 받아들여진다. 어제 아침에는 누워서 아령을 몇 번 들었다 놓았는데 그것도 운동이라고 팔까지 뻐근하다. 한 달 전만 해도 나름대로는 건강에 자신을 가졌는데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지난겨울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로 내 몸에 대한 과신이 지나쳤다. 실로 올해만큼 산에 자주 다니고 많이 걸은 때도 없었다. 주제파악도 못하고 까불어댔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허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이번 통증은 네 체력에 맞게 살라는 몸의 경..

길위의단상 2009.10.15

미누

뉴스에는 작게 나왔지만 한국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미누'라는 네팔인이 체포되어 추방될 상황에 놓였다. 이주노동자 밴드의 보컬로, 이주노동자 방송(MWTV)의 스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이 밉보였는지 이번에 갑자기 체포되었다. 오늘 여러 사람들이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수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산업 현장의 음지에서 일하고 있다.꼭 법의 잣대로만 그들을 대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인 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김제동씨도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했다. 벌써 몇 명째인..

길위의단상 2009.10.14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읽는 키워드가 '불안'과 '욕망'이라는데 동의한다. 좀더 강렬한 용어를 쓰면 '공포'와 '탐욕'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 경제 위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전세계적 현상이겠으나 유독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원초적 반응이 심한 것 같다.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을 더욱 돈과 안정된 직장에 집착하게 만들고 이기적 욕망을 확대 재생산한다. 한국의 과잉 교육열도 기본적으로는 그에 기인한다고 본다. 사람들은 마치 주술에 걸린것처럼 '공포'와 '탐욕'의 대열에 망설임 없이 동참한다. 숲속에서는 숲을 보지 못한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숲을 벗어나서 조망해야 한다. 불편하고 거북할지라도우리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강연회가 있었다. 다음은 김규항..

길위의단상 2009.10.09

위장전입

10여 년 전의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겨주신 Y 읍내의 땅을 처분해서 형제들끼리 분배했다. 어머님에게 돌아온 몫은 장남인 내가 관리하게 되었는데 그냥 은행에 두기가 뭣해서 지방에 있는 밭을 사게 되었다. 마침 그때 처남이 부동산 관계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땅이나 매매 일을 모두 맡겼다. 당시는 현지에 거주해야 농지를 살 수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내 주민등록을 A 군으로 옮겼다. 소위 위장전입을 한 것이다. 1천만 원이 좀 넘는 돈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 밭 1천 평을 사 두었다. 그때는 주민등록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양심에 별다른 거리낌도 없었다. 주로 아이들 교육이나 부동산 매매, 또는 세금 때문에 실제 사는 곳과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다른 경우가 흔히 있었다. 경기도 ..

길위의단상 2009.10.01

한국 교육의 그늘

(1) 얼마 전 10일짜리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학생들의 농촌 체험 활동인데 교사로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학생이 개미들을 밟아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왜 약한 개미들을 죽이냐고 물었다. 죽여도 된다고 대답한다. 너는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혀도 좋으냐라고 물었다. 그래도 좋단다. 여기까지도 많이 놀랐는데 더 놀라운 대답이 이어졌다. 힘센 니가 개미를 죽이듯이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히면 너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으냐라고 물으니 아이는 대답한다. “나는 죽어도 좋아요”라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원을 안 가도 되잖아요.”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아이는 8살 초등학교 1학..

길위의단상 2009.09.27

스트레스 받을까봐 시험 날짜가 비밀

‘독일교육 이야기’라는 블로그가 있다[http://blog.daum.net/pssyyt]. 독일에 건너가서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에 두 아이를 보내며 그곳에서 접한 독일교육 이야기를 전하는 어느 주부의 블로그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신기해서 가끔 들어가서 글을 읽는다. 그분이 전하는 독일교육 이야기는 한국교육의 현실과 대비되어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도대체 독일에서는 되는 일이 한국에서는 왜 안 되는 것일까? 얼마 전 글에는 ‘학생이 스트레스 받을까봐 시험 날짜가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 ‘어제는 작은 아이 반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는 않지만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있는 학부모회의 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

길위의단상 2009.09.22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요즈음 아내가 혼잣말처럼 자주 하는 말이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고 차츰 회복되고 있었으나 최근에 몸 상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하고 특히 기억력이 완연히 떨어졌다. 집안일도 힘든 것은 하지를 못하고, 차도 오래 타지를 못한다. 한 번 무리를 하면 며칠 동안 꼼짝을 못한다. 지난주에는 억지로 함께 고향을 다녀왔는데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본인 마음도 약해지는지 가족들에게 의지를 하려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는다. 더구나 나나 아이들이나 살갑게 보살펴주는 성격이 못되니 서운함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말 한 마디 하는 데도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웃고 넘어갈 것도 아내는 예민하게 ..

길위의단상 2009.09.18

엉뚱한 게 궁금하다

지하철에 타서 옆 자리가 비어 있으면 눈을 감는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으로 옆에 앉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보지 않고 과연 얼마나 맞힐 수 있을까? 남자와 여자의 앉는 스타일, 또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것일까? 예상과 달리 잘 맞혀지지 않는다. 진동이 크다고 꼭 남자는 아니다. 여자는 얌전하게 앉을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또 후각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래 실험하다 보니 감이란 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확률은 70%를 넘지 못한다. 눈을 떠서 맞은 걸 확인하는데, 의외의 경우에는 빙긋이 웃기도 한다. 아마 옆 사람은 왜 미소를 짓는지 이유를 모를 것이다. 이것은 무료한 지하철에서 나만이 즐기는 게임이다. 요사이는 별 게 다 궁금하다. 만약 수염을..

길위의단상 2009.09.08

지금 내 나이는

자주 들리는 카페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한 살부터 백 살까지 나이의 특징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이다. 이대로라면 오래 살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인생의 과제를 다하고 그냥 노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때까지 건강하게, 그럴 수만 있다면.... 1세 -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2세 - 직립보행을 시작하는 나이 3세 -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 4세 - 떡잎부터 다른 나이 5세 - 유치원 선생님을 신봉하는 나이 6세 - 만화 주제곡에 열광하는 나이 7세 - 아무데서나 춤을 춰도 귀여운 나이 8세 - 편지를 쓸 수 있는 나이 9세 -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나이 10세 - 관찰일기를 쓰는 나이 11세 - 할아버지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나이 ..

길위의단상 2009.09.03

한비야가 권하는 24 권의 책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한비야가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녀는 여고시절부터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30 년 이상 실천해 오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책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당당함, 그리고 유창한 언변이나 감칠 맛 나는 글은 이런 단단한 내공이 있으므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일견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는 외형적 모습만이 아니라, 이같이 치열한 자기수련의 모습도 사람들이 본받으려 했으면 좋겠다. 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기는 힘든 일이었다. 몇 해 전에는 도서관 대출 기록으로 통계를 내 봤더니 겨우 100 권을 넘기기도 했다.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자..

길위의단상 2009.08.24

한 장의 사진(13)

세상에 태어나 제일 처음에 찍는 사진이 돌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의례 ‘돐記念’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사진기가 귀했던 그 시절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읍내에 있는 사진관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아이는 행복했다. 입에 풀칠하기에도 빠듯하던 50년대의 시골에서 돌을 기념하며 사진을 박을 수 있는 집은 드물었다. 그나마 형편이 나았던 우리 집에서도 다섯 형제 중 돌 사진이 남아있는 것은 장남인 나와 막내뿐이다. 아버님으로부터 가장 귀여움을 받았던 막내의 돌잔치 때는 사진사가 집으로 초대되었다. 벽에 펼친 이불을 배경으로 동생을 앉혔는데 자꾸 쓰러지는 몸을 세우느라 힘들게 사진을 찍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먼저 태어난 형이 죽은 뒤 얻은 자식..

길위의단상 2009.08.19

난 몰라요

도시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 매일 배설하는 똥과 오줌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역시 모른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나는 모른다. 두꺼운 설명서를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몇 가지 버튼을 누를 줄만 알면 된다. 아침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가 어느 바다에서 잡혀 온 것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 깔끔한 슈퍼에서 사온 식품들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햇볕과 바람과 농부들의 땀에 대해서는 잊어도 좋다. 그저 값싸고 맛있으면 만족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제 3세계의 노동력 착취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불하는 커피 대금의 얼마가 다국적기업의 수중으로 들어가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길위의단상 2009.08.13

사람의 손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다. 대신 15명은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이다. 이 마을의 부 가운데 6명이 전체의 60%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의 에너지의 80%를 20명이 독점하고 있다. 17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조차 없다. 지구의 자원이나 식량은.... 만약 골고루 나눠가진다면 전 지구인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3초마다 1명씩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 비극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진 한 장.... 처음에는 사람의 손이 아닌 줄 알았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

길위의단상 2009.08.06

유년의 목록

개울 건너 물레방앗간 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던 신작로 신작로 양편으로 도열하듯 늘어선 포플러나무 코스모스 만발한 길 보부상 아주머니 보따리 속의 예쁜 옷들 뒷마당의 땅강아지 처마 밑의 제비집 대보름날 뒷산에서의 쥐불놀이 비만 오면 잠기던 징검다리 할아버지의 흰 수염 소백산에서 몰아치던 겨울 칼바람 강에서 살던 그 많던 물고기들 보따리를 인 엄마 따라 장으로 가던 길 장터의 북적거림과 설렘 “워리”라고 부르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동생 똥을 먹던 똥개 수없이 날아다니던 메뚜기들 늦은 밤 동무들과 모여 놀다가 밖에 나서면 쏟아지던 별들 겨울이면 사랑방에 모여 새끼 꼬던 동네 청년들 일꾼들의 고봉밥 풍금소리 4-H 콩쿠르 노래자랑 대회 흰 연기를 날리며 달리던 증기기관차 겨울의 산토끼 사냥 콩서..

길위의단상 2009.07.31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런 경우는 경제적으로 낙후한 나라를 다녀온 사람만이 아니라 유럽 같은 선진국에 다녀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 딴지를 걸 필요는 없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거북해지는 걸 어찌할 수 없다. 살기 좋은 나라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부터 서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만큼 살기에 편리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음식점과 가게가 있으니 돈만 있으면 필요한 욕구는 당장에 해소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돈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말과 통한다. 적어도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길위의단상 200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