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2003년 9월 12일에 한미르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첫 글을 올렸으니 오늘로 꼭 10년이 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자고 다짐했는데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켜온 게 우선 기쁘다. 포스트의 양보다 꾸준함이 스스로 대견하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도 일기를 계속 썼으니 매일 글 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블로그는 공개되는 일기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블로거들과의 소통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그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방문해 댓글을 다는 이웃 블로거는 거의 없다. 내가 나들이 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내 블로그는 그저 독백 수준의 자기만족으로 그만이다. 블로그에서는 블로그 주인의 성격이 나타난다. 오지랖이 넓지 않은 건 블로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나르시시즘이 걱정될 때도 있다.
10년 동안 두 번이나 블로그 이사를 해야 했던 게 그나마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한미르에서 파란으로, 파란에서 지금의 티스토리로는 작년에 옮겼다. 파란이 한미르를 인수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파란이 수익성이 없는 블로그를 포기하고 티스토리로 넘겼을 때는 데이터가 사라지는 등 오류가 많이 생겼다. 사진 원본이 없어진 것은 지금도 너무 아쉽다. 글을 수정한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옛 모습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다만 티스토리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전의 포털들보다는 나아서 다행이다.
밤골 생활에 얽힌 송사가 벌어졌을 때는 블로그 기록을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했다. 결국은 승소를 했으니 블로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피고측도 내 블로그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을 발췌해서 제출했다. 재판정에서 블로그 논쟁이 벌어졌다. 같은 블로그인데 어떤 내용을 뽑느냐에 따라 반대되는 입장의 증거로 쓰인 것이다. 그래서 난 발췌본이란 걸 전혀 믿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대화록이나 통진당의 내란음모 혐의의 발췌본이 그 예다. 그들의 억울하다는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몇 가지 말만 짜집기하면 전혀 엉뚱한 의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0년이 된 지금, 블로그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블로그는 이제 떨어질 수 없는 내 좋은 벗이 되었다. 10년 전은 여주 생활이 난관에 부딪히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였다. 빛났던 꿈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내 말을 들어준 벗이 블로그였다. 이 벗과 마주 보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블로그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가 되었다. 혼자 주절거렸지만 사실은 내가 받는 게 훨씬 더 많았다. 블로그는 가장 고마운 벗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면 마치 헝클어진 서랍 안이 정리되듯 머릿속이 명료해진다.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책을 두 번 읽는 효과가 있다. 더해서 블로그 때문에도 책을 열심히 읽게 된다. 아무리 일기에 가깝다지만 그래도 남이 본다는 것을 의식해야 하니 글 내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알게 모르게 글 짓는 솜씨도 향상되는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또한 블로그를 대면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문하게 되고 성찰하게 된다. 블로그를 통해 얻는 이득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자족(自足)이 제일이다.
어떤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쓰지만, 사실은 쓰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게 된다. 쓴다는 것은 내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창출하는 원천이다. 씀과 생각 사이에서는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사고력을 키우는 제일 좋은 방법임을 블로그를 통해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다시 학교 교육과 관계한다면 이 두 가지를 매우 강조할 것 같다.
앞으로도 블로그는 나의 절친한 동무가 될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블로그를 계속 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된다. 만 개의 글을 채울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하루에 한 개 정도의 글을 올린다면 앞으로 20년, 내 나이 80이 될 때면 이루어질 것이다. 중간쯤에는 칠십자술(七十自述)의 책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렇게 된다면 무척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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