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51

2018 그리니치 천체사진

매년 천체사진을 공모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올해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11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사람과 우주(People & Space)' 부문 수상작만 소개한다. 1등, Transport the Soul Nikon D810, 14mm, ISO 2500, 20 sec 2등, Living Space Sony ILCE-7S, 28mm, ISO 6400, 15 sec 3등, Me versus the Galaxy Nikon D810, 20mm, ISO 5000, 10 sec 입선, Catching the Moment of Owe Sony ILCE-7S, 24mm, ISO 6400, 1/160 sec 입선, Expedition to Infinity Canon EOS 6D, 24mm, ISO..

길위의단상 2018.10.29

별침을 권함

자식과 같이 살았을 때는 방의 여유가 없어 부부는 한방을 써야 했다. 남편이 코를 골아도, 아내가 잠꼬대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쉽게 잠이 드니 별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잠귀가 밝아지고 예민해진다. 마침 그때쯤이면 자식이 출가하게 되고 빈방이 생기니 부부는 서로 편하게 딴 방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 많은 가정이 그럴 것이다. 부부는 마땅히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고 초지일관 고집을 부리는 친구가 있지만 별 호응을 얻지는 못한다. 우리 부부도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게 3년 정도 되었다. 잠을 잘 못 드는 아내는 전에도 거실이나 빈방에서 혼자 자는 경우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자식이 결혼하고 자연스레 방이 비면서 방 하나는 아내의 침실이 되었..

길위의단상 2018.10.27

풍선과 소녀

그림에 문외한이니 내막을 모르지만 지난주에 일어난 일을 보면 예술 세계란 게 참 희한하다. '풍선과 소녀'라는 뱅크시의 그림이 소더비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예상보다 높은 15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바로 뒤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림이 액자 밑으로 빠져나가며 갈가리 찢어진 것이다. 뱅크시가 액자 뒤에 기계 장치를 해 두고 경매가 끝나자마자 그림이 파손되도록 원격조정했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뱅크시가 무엇을 노렸든지 간에 이런 것도 예술 행위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우선 나는 그림값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해 불가다. 미술 전시회장이나 경매장은 예술을 핑계로 돈 많은 사람이 투기질하는 무대인 것 같다. 그림이 예술 자체의 가치보다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도구..

길위의단상 2018.10.12

인구로 본 남은 수명

어제는 '노인의 날'이었다. 나라에서는 100세가 된 노인에게 청려장을 증정하며 기념식을 열었다. 올해 100세가 된 노인이 1,343명(남 235, 여 1,108)이다. 고령사회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100세 이상은 18,505명이나 된다. 통계청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 분포를 찾아보았다. 2018년 8월 기준인 최신 자료다. 5세 단위의 노인 수는 이렇다. 65세 -- 525,134명 70세 -- 442,372명 75세 -- 363,389명 80세 -- 246,302명 85세 -- 129,958명 90세 -- 52,061명 95세 -- 16,933명 100세 -- 1,343명 이것으로 남은 수명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오차가 있겠지만 표본이 많으니 무시해도 괜찮을 듯하다. 현재..

길위의단상 2018.10.03

노무현과 문재인

10여 년 전 노무현 정부 때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정책 입안자 상당수가 당시의 아픈 체험을 겪었을 텐데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듯하여 안타깝다.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나서야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사후약방문이다. 이런 즉흥적 처방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때려잡겠다고 얼마나 큰소리를 쳤는가. 그러나 시장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그런 데서 뭔가를 배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의 쓰린 과거를 갖고 있다. 서울 집을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간 건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믿은 일면도 있었다. 시골에 잘 정착했으면 서울 집값이 오르든 말든 ..

길위의단상 2018.09.14

2018년 여름

아침 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졌다. 한낮 햇볕이 뜨거워도 30도에 미치지 못하니 여름의 기세가 푹 꺾였다. 2018년 올여름의 더위는 대단했다. 기상 관측 이래 제일 더웠다는 1994년의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이 된 날인 폭염 일수는 올해가 31.2일로 1994년의 31.1일을 넘어섰다. 40도를 넘어선 경우도 여섯 차례나 발생했다. 특히 8월 1일 기록한 홍천의 41.0도는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그날 서울도 39.6도를 찍었다. 그전까지는 낮 최고 기록이 1942년에 대구 40도가 유일했다. 전국 기상 관측소의 64%에서 역대 최고 기온이 올해 작성됐다. 이만하면 가공할 더위를 올여름에 경험한 셈이다. 거의 한 달 반 동안 외출은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에어컨과 함..

길위의단상 2018.09.01

저만 모른다

고등학교 동기 밴드에 쓴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 글이 하나 올라왔다. 동네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던 중 의사의 치과대학 졸업장을 봤다. 의사의 이름은 반세기 전 고등학교 시절의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이름과 같았다. 그는 키도 크고 멋진 친구였는데 혹시 이 사람이 그 당시 나와 친했던 그 친구인가, 하고 있는데 의사를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대머리에다 몇 낱 안 남은 흰 머리카락, 그리고 주름살이 깊게 파인 얼굴이 내 동급생이기엔 너무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진료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00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까?" "네, 다녔습니다. 그때 좀 우쭐댔었지요"라고 말하며 치과의사는 활짝 웃었다. "언제 졸업했습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1967년입..

길위의단상 2018.08.22

우리는 언제쯤

안 그래도 푹푹 찌는 날씨인데 더 열을 받게 하는 소식이 들린다. 도로 확장을 하려고 제주도 비자림로의 삼나무를 잘라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처럼 2차선 도로를 4차로로 바꾸기 위해 2천 그루가 넘는 삼나무를 벨 예정이라고 한다. 저곳은 산굼부리 인근 지역이 아닌가 싶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웠던 곳이다. 삼나무 숲 사이로 난 2차로 길이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가까이 도시가 없으니 막히는 길도 아니다. 예쁜 길에 빠진 관광객이 탄 차가 서행을 하니 지역 주민으로서는 답답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삼사 분 정도 더 걸릴 뿐이다. 그 시간이 아깝다고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넓히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4차로로 되어 쌩쌩 달리면 길의 정..

길위의단상 2018.08.12

어느 정치인의 죽음

그저께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중 한 분이었다. 노동자와 서민 편에 섰던 분을 잃게 되어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다. 그분을 자살로까지 내몬 정황이 그렇게 심각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 든다. 고인은 드루킹으로부터 4천만 원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 액수가 많지도 않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런 일은 정치판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고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는지 모른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정의당과 진보 정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다. 아마 본..

길위의단상 2018.07.25

자살률 1위

2018년도 OECD 보건 통계가 나왔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다. 여전한 자살률 1위와 건강 만족도 최하위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8명으로 압도적 1위다. OECD 35개국 평균이 11.6명인데 그 두 배가 넘는다. 자살률이 제일 낮은 터키에 비하면 무려 23배에 달한다. 2위와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자살률은 지금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수치다.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1만 명이 훨씬 넘는다. 경제 수준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먹고 살만큼은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삶이 고달픈 사람이 많을까?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유달리 높다. 그만큼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얘기다. 청소년은 성적 스트레스와 가족과의 갈등이 ..

길위의단상 2018.07.13

선택과 과보

한 판의 바둑은 인생과 닮았다. 포석 단계는 청소년기와 비슷하다. 처음 둘 때 정석이 등장하듯, 인생 초반도 정해진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시기다. 중반전이 되면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치열함은 삶의 현장과 닮았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바둑에서 어떤 수를 둘까 선택을 해야 하듯 인생도 그렇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수를 택하느냐에 따라 바둑은 천변만화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라는 사소한 선택에서 결혼 같은 중차대한 선택도 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 어떤 선택은 인생 행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바둑의 경우에는 잘못된 한..

길위의단상 2018.07.05

쇼팽의 야상곡

클래식을 다시 듣게 된 건 순전히 윗집 덕분이다. 이음치음(以音治音)이라고 할까, 한밤중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잊기 위해서 음악을 더 크게 튼다. 처음에는 교향곡 같은 데시벨 높은 음악에 의지하지만, 천장의 소음이 잔잔해지면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바꾼다. 그러다가 슬며시 잠이 드는 날은 대성공이다. 그중에서 제일 자주 듣는 곡이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이다. 녹턴이라고 부르는 야상곡은 피아노 소품인데 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이다. 수면제 역할로 이만한 게 없다. 쇼팽의 야상곡 전곡은 1시간 30분 가량 되는데, 대개 30분 정도만 듣고 있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은 예민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예술가들한테는 늘 여자들이 따라 다니는데 쇼팽은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길위의단상 2018.06.24

산림청 선정 100 보호수

우리나라에는 14,000그루 가량의 보호수가 있다. 산림청에서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라는 주제로 그중 100그루를 골랐다. 전설이나 설화가 전해지는 대표적인 나무들이다. 오래 되었거나 아름답다기보다 사연 중심으로 선정했다. 그래도 많은 보호수 중에서 고른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하겠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그루는 다음과 같다. 01 은행나무 서울 도봉구 방학동 546 02 회화나무 서울 중구 정동길 21 03 측백나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3-175 04 느티나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산177 05 향나무 서울 서초구 1748-7 06 은행나무 인천 강화군 교동면 무학리 542 07 느티나무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서로 257번길 42-1 08 소나무 인천 강화군 선원면 강화동로 924 ..

길위의단상 2018.06.08

적응하기

딩동! "누구세요?" "실내 소독하러 왔습니다." 낮에 집에 있으면 현관 벨 소리에 응대해야 할 일이 가끔 있다. 방문자를 잘 파악해서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벨을 누른다고 다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정기 소독이야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지만, 무슨 말인지 분명치 않은 사람은 십중팔구 귀찮게 하는 사람이다. 대면하면 뿌리치기 쉽지 않다. 이번에 소독하러 온 아줌마는 50대 중반쯤 되었다. 배수구에 분무기로 소독액을 뿌리는 간단한 작업이다. "다 됐습니다. 아버님, 여기 사인 좀 해 주세요." 헐! 아버님이라고? 내가 80대쯤으로 보인 모양이다. 내 여동생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한테서 듣는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너무 생경했다. 제일 황당했던 건 전철을 탔을 때였다. 경로석 앞..

길위의단상 2018.05.26

티눈

발에 통증이 감지된 건 서너 해 전이었다. 새끼발가락 부근의 바깥쪽으로 신발과 제일 많이 접촉되는 부위였다. 만지면 딱딱한 게 잡히면서 누르면 아팠다. 많이 걸으니 굳은살이 생기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올해 들어서는 걸을 때 절뚝거릴 정도가 되었다. 견디다 못해 병원에 갔더니 티눈이 세게 생겼다고 한다. 석 달째 냉동치료를 받고 있다. 초기에 손을 봤으면 쉽게 고쳤을 텐데 뿌리가 깊어선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저께는 의사한테 야단을 맞았다. 걷는 걸 조심하지 않으면 치료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재발한단다. 사실 티눈을 가볍게 보고 치료 중임에도 전혀 조심하지 않았다.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이산 저산을 쏘다녔다. 쉽게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내 일상의 행복..

길위의단상 2018.05.19

반복되는 꿈

꿈에서는 늘 학교가 등장한다. 우중충하고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다. 볼일이 급한데 화장실이 없다. 겨우 찾아내도 너무 더러워 들어갈 수가 없다. 전부 재래식 화장실인데 어디나 대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리저리 헤매기만 한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유형의 꿈을 연속으로 꾸고 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힘들게 화장실을 찾았는데 내부는 겨우 볼일을 볼 정도의 여유만 있었다. 난감해하다가 잠을 깼다. 꿈에 학교가 나오면 늘 악몽이다. 퇴직한 다음에는 교실을 못 찾아 허둥대는 꿈이 계속 나왔다. 시간표를 착각해서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다. 진땀을 흘렸다. 몇 년간 그러더니 이젠 똥 꿈으로 변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한다. 더구나 같은 꿈을 연속으로 꾼다는 것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메시지로 해석해도 무리..

길위의단상 2018.05.06

4월 27일

하루 종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침 식사를 단식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자는 본당 신부님의 부탁이 있었다며 아내는 아침을 걸렀다. 나도 덩달아 따라 했다. 4월 27일 오늘,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로 나아가는 선언을 했다. 전에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보다 이번 판문점에서의 만남이 훨씬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생중계의 효과인지 몰라도 군사분계선에서 둘이 악수하고 북쪽으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퍼포먼스부터 도보다리에서의 밀담 등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몇 달 전까지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평창올림픽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통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자. 이번 '판문점 선언'에 밝힌 대로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다. 지금까..

길위의단상 2018.04.27

얼굴 흉터

내 얼굴 왼쪽 눈 옆에는 100원짜리 동전만 한 불그스름한 흉터가 있다. 20년 전 K 고등학교에 근무했을 때 생긴 것이다. 그때는 내 교직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다. 안 하던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과 늘 엇박자였다. 교과목 가르치는 것도 벅찬데 반에서는 연신 사고가 터지고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나 학부모와 코드가 맞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반대로 그쪽에서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K 고등학교는 교사들 사이에 근무 희망 경쟁이 벌어지는 A급 학교였다. 학교 내에서도 서로 담임을 하려고 지저분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눈치가 빨랐으면 애초부터 담임 신청을 말았어야 했다. 한번 해 보지 뭐, 하다가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

길위의단상 2018.04.08

부부 여행

친구 A가 이렇게 투덜댄 적이 있다. "마누라와 다시는 같이 여행 가지 않을 거야!"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온 뒤에 한 말이다. 줄곧 티격태격하느라 볼썽사나운 여행이 되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여행하게 되면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 부딪힐 일이 자주 생긴다. 더구나 패키지여행은 일정이 빠듯해서 몸은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말다툼이 생긴다. 그래서 배우자보다는 친구가 편하고 좋다. 친구는 사소한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여행은 따로따로 다니는 부부가 많은 이유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도 가끔 있다. 늘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나가는 친구 B가 있다. 한두 달씩 있다 오기도 한다. "넌 안 싸우니?" 물어보면, "왜 싸울 일이 생기는 ..

길위의단상 2018.03.27

Me Too

연말이 되어 올해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미투'(Me Too)가 단연 으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초에 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숨어 지내던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작년 10월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의 폭로를 계기로 연예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십 명의 여성 배우들에게 성추행과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세상이 시끄럽긴 하지만 미투 운동은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진보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성이 아니라 권력이다. 권력을 이용한 갑질이 여성에게 향할 때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나타난다. 미투 운동은 4년 ..

길위의단상 2018.03.04

하나씩 차근차근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되었다. 두 달 전만 해도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분위기였다.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한반도를 감쌌다. 다행히 올림픽에서 남북 공동 입장이 합의되고, 여자 아이스하키에서는 단일팀이 만들어졌다. 예술단과 응원단도 내려왔다. 갈등의 구조는 여전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북에서 내려온 대표단은 문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보여 반갑다. 10일 저녁에 남북 단일팀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있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일반 관람석에 나란히 앉아 응원했다. 남과 북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환호하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불과 한 달 전만 해..

길위의단상 2018.02.13

심야 바둑

윗집에서는 밤 12시 전후 두세 시간 동안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때는 잠도 못 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고작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동이 잦아지길 기다릴 뿐이다. 직접 고충을 전하고, 관리사무소에 중재도 요청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적응해 살자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예 새벽 1시 이후로 늦추어졌다. 자다가 깨게 되면 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윗집이 잠잠해져야 나도 침대에 들어간다. 요사이 내가 쓰는 방법은 바둑 두기다. 소음 스트레스를 잊는데 바둑이 최고라는 걸 발견했다. 바둑에 집중하다 보면 웬만한 소음은 비껴간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인드 컨트롤은 내 인격으로는 감당이..

길위의단상 2018.02.08

고수는 다르다

정현 선수가 대활약했던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가 끝났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준결승까지 올라 페더러와 대결했다. 비록 졌지만 4강에 올라간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번 호주에서는 테니스 중계를 기다리며 행복했다. 정현 선수 때문에 오랜만에 페더러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결승전에서는 칠리치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오래 전 테니스를 할 때 동료가 백핸드를 배우라며 페더러의 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 페더러의 폼이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도 감탄사가 연발로 나왔다.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두 손으로 백핸드를 치는데 페더러는 한 손으로 친다. 한 손으로 치면 힘은 약할지 몰라도 빠르고 정교하다는 장점이 있다. 페더러의 테니스는 부드럽고 우아하다. 힘을 별로 들이지 않..

길위의단상 2018.02.03

힘내라 정현

조금 전에 정현 선수가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조코비치를 3: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두 번이나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어서 가슴 졸이며 봤다. 한국 선수가 메이저 대회에서 8강까지 간 것은 정현이 처음이다. 테니스는 동양인이 힘을 못 쓰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타고난 체격이 경기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들어간 동양인 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동양계로 제일 유명한 선수는 1990년대에 활약한 마이클 창이라는 미국 선수다. 창은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했다. 키와 근력에서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열세다. 테니스는 서브가 중요한데 스피드와 파워에서 차이가 나니 이미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다. 100m 달리기로 비유하면 서양인은 10m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정현이..

길위의단상 2018.01.22

워렌 버핏

워렌 버핏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돈 많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분과 점심을 먹기 위한 이벤트가 있는데 수십억 원의 경매가 붙는다는 얘기도 들어보았다. 너무 돈 많은 사람들 이야기는 관심 밖이다. 어제 보도에 버핏 회장의 검소한 생활이 소개되었다. 버핏은 현재 자산이 900억 달러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 부자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는 거의 1천 조 원이나 된다. 1조만 해도 어지러운데 1천조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인지 내 머리로는 상상이 안 된다. 그걸 한 사람이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이 분의 삶의 태도가 특별하다. 버핏 회장이 사는 집은 시가로 7억 원 정도라고 한다.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전세 얻기도 어려운 금액이다. 버핏은 1958년에 구입한 뒤 ..

길위의단상 2018.01.15

2017 블로그 결산

티스토리에서 2017년도 블로그 결산을 했다. 작년과 달리 순위를 매기지 않고 각 블로거들의 한 해 활동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었다. 경쟁보다는 내실을 추구한 진일보한 방법이었다. 도표에서 보듯 나는 일년동안 306개의 글을 올렸다. 2월에는 뉴질랜드에 가 있었기 때문에 공백이 생겼다. 컴퓨터와 떨어져 있었던 날을 감안한다면 1D1P를 작년에도 꾸준히 실천한 셈이다. 작년에 내 블로그를 찾은 사람은 209,880명이었다. 하루 평균 575명 꼴이다. 작년보다 8만 명 가까이 늘어났고, 일평균 500명을 넘어섰다.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보여준 단어 통계도 흥미롭다. 많이 등장한 것은 '사람' '나무' '우리' '인간' '세상' 같은 단어들이다. 내 관심이 어디에 있는..

길위의단상 2018.01.07

적폐 청산

올해의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적폐 청산'을 꼽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표적인 공약이었고, 당선 뒤에도 잘못된 과거사 정리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반대 진영에서는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하지만, 썩은 부위는 빨리 도려내야 한다. 반발이 없으면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 아니다.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되었다. 적폐 청산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제일 큰 과오는 해방 후에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우자 나라의 근본이 흐트러졌다. 그런 잘못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적폐 청산으로 두 가지는 꼭 시정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전관예우다. 전관예우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길위의단상 2017.12.31

사람이 아니야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사오십 대 때 제일 뜨거웠는데 그 시절에는 한 해에 백 권 정도는 읽었다. 직장에서 벗어난 지금은 자유 시간이 더 많이 나지만 독서량은 줄어들었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육칠십 권은 될 것이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나에게는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여행을 갈 때도 보든 안 보든 책 한 권은 가방에 넣는다. 일행에서 벗어나 몇 장이라도 들춰봐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런 별스러운 나를 어떤 사람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친구들은 안부를 물을 때 "요즘도 ..

길위의단상 2017.12.20

2017 세계 번영지수

영국에 있는 경제연구소인 레가툼(Legatum)에서 매년 세계 각국의 번영지수를 발표한다. 올해는 149개국을 대상으로 9가지 지표로 각국의 순위를 매겼다. 평가 지표는 경제, 기업 환경, 국가 경영, 개인의 자유, 사회적 자본, 안전과 안보, 교육, 보건, 자연 환경 등으로 종합적으로 삶의 질을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작년보다 한 계단 하락한 36위에 올랐다. 이 평가가 시작된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계속 순위가 하락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줄곧 20위권에 머물다가 작년부터 30위권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가 높은 평가를 받은 부문은 보건, 교육이고 낮은 평가를 받은 부문은 개인의 자유, 자연 환경, 사회적 자본이다. 거의 100위권까지 떨어진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중..

길위의단상 2017.12.14

한 장의 사진(24)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제대할 때는 누구나 한마디씩 한 말이 있었다. "제대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 군대 생활에 대한 혐오감이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군대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데 30년은 걸렸다. 반면에 '군대에 가야 사람 된다'는 말도 있다. 국민정신 교육장으로서 군대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의 말이다. 좋게 말하면 나라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온몸으로 배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람 된다'는 말이 권위적 체제와 이념에 대한 온순한 복종의 의미로 들린다. 외국에 나갔을 때 제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얘기를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에게서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시끄럽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이스라엘인지 의아했는데 의무징병제와..

길위의단상 2017.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