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74

가을 불청객, 우울증

몇 해 전부터던가, 가을만 되면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 손님은 도둑 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스며 들어와서는 아차 하고 알아챌 때에는 벌써 나는 포로가 되어 버렸다. 가을의 정점이 되면 내 가슴은 갈갈이 찢어져 찬 바람이 제 멋대로 불어 지나가고 내 마음은 모랫바람 날리는 사막이 된다. 무기력과 절망 - 이런 증상에 한참을 시달려야 한다. 내가 개인주의적 성향이어선지 이 시기가 되면 더욱 자폐적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만든 고치 속으로 숨어 버린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세상도 싫고 그렇다고 자신을 긍정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작은 성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 성은 따스하지도 않다. 역시 찬 바람 불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는 안과 밖으로 호되게 시련을 당하는 시기이다. 온 세상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

길위의단상 2003.10.11

산다는게 뭔지

가을은 떠나가는 계절인가 보다. 일주일 사이에 지인 세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오늘 새벽에는 친구의 장례 미사에 다녀왔다. 앞 자리에 앉은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의 처진 어깨가 더욱 슬펐다. 지금까지도 기분이 우울하고 스산하다. 나도 언젠가는 앞자리에 앉아 가까운 이를 떠나 보내는 이별 의식을 치러야 하리라. 그리고 또 언젠가는 나 자신이 이 의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리라. 나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다. 가장 분명한 이 사실을 또 대부분 가장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듯이 말이다. 늘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산다는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뭘 얻었다고 기뻐하고, 뭘 잃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나는 이내 과거의..

길위의단상 2003.10.07

삼보일배 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오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 삼보일배 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전북 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최희섭 목사)는 6일 "기독교 이름으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해서는 결코 안되며 기독교 단체는 삼보일배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북지역 14개 시.군 기독교회로 구성된 협의회 대표 8명은 이날 오전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는 기독교 교리와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라면서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기독교인이 아니며 기독교인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언론은 앞으로 기독교가 삼보일배에 참가했다는 보도를 삼가 주기를 바라며 기독교인은 반대의사를 표현할 때 신앙 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

길위의단상 2003.10.06

머나먼 길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얼마나 많은 고통의 강을 건너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설 수 있을까? 그 대답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 도리어 점점 더늘어가는 욕심들. 세월따라 내 가면은 덧칠이 더해져 자꾸만 두꺼워져 가고 이젠 희망도 사그러져라. 시간은 나를 구원할 수 없으니 몇 억 겁의 세월이 나를 요만큼 밀어왔으니...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이 마음 하나 다스리는 것이 천하를 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구나. 내가 붙들고 있는 이 허상은 무엇인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찾아낸 쓰레기로 쓰레기 성을 쌓아놓고 나는 싸운다. 나에게 오지 마라. 내 보물 건드리지 마. `놓아라!` 서릿발같은 선승의 고함 소리 나를 내리치거라.

길위의단상 200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