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68

[펌] 당신들은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예수쟁이이다. 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정 이런 식의 약간은 자기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지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독교는 너무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 따라서 진실로 예수라고 하는 한 팔레스타인의 지독한 주변인이었던 기독교의 창시자의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주변성을 자기 정체성 안에 통합해 넣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비천한 자리에 가져다 놓을 줄 모르는 자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거하여 자신을 옭죄던 봉건성을 기독교라는 각성의 형식으로 극복했던 1세대 기독교도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창건하신 열 분 장로님 중..

길위의단상 2004.11.29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현상계(現象界)는 무상(無常)의 세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말만큼 우리 우주의 실상을 적절히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변화하는 세계다. 삼라만상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없다. 사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사물의 변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고 있는 원리마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생성, 변화, 소멸을 되풀이하는 것이 물질계만은 아니다.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온갖 생각들을 관찰해 보면 명멸하는 변화에 넋이 나갈 정도이다. 작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는다. 기쁨이 지나가면 슬픔이 찾아오고, 희열 뒤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절망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간다. 불시에 찾아온 화(禍)가 어느새 복(福)으로 변하기..

길위의단상 2004.11.19

학교 폐쇄? 다 받아주어라!

세상이 어수선하다. 세상을 진단하는 사람들의 소리에는 날이 서있다. 모두들 나라를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텐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서로를 불신하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오늘 아침 신문에 가톨릭계 원로라 할 수 있는 J 신부의 강연 내용이 실렸다. 노 정권의 정책 방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종교는 순교(殉敎)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 끝까지 반항할 것이다." "이 법의 개정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하느님 앞에서 신자 자격이 없다." 정권을 비판하거나 특정 법의 개정에 대해서 찬성, 반대의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신자 자격 운..

길위의단상 2004.11.10

메멘토모리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합시다!) 유럽의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사들 사이에 주고받는 일상적인 인사말이라고한다.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자는 마음다짐이 이 인사말 속에는 들어있다. 사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결정적 문제인 이 죽음만큼 무시되고 경원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애써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이웃의 죽음에 슬퍼 하지만 가까운 가족이 아닌 경우 그 효과가 며칠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천년 만년 살 듯이 일상을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만큼 우리 존재를 뒤흔들어놓을 사건도 없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죽음은 이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이며 모든 인연의 끈을 끊어버리는 가위이다. 저 세상 너머의 일을 알 수 없는 한 ..

길위의단상 2004.10.28

그 소리가 그립다

가을걷이로 한창 바쁜 농촌이지만 마을 안은 조용하다. 벼 수확 작업이 대부분 기계의 힘으로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벼를 베는 일에서부터 탈곡하고 나르는 작업이 밖에서 다 이루어진다. 집으로 들어오는 벼는 없고 직접 건조장이나 도로 위로 옮겨진다. 예전에 이 무렵에는 온 동네가 북적거렸다. 모든 일이 오직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이루어졌다. 낫으로 벤 벼를 논에서 말린 다음 지게나 달구지를 이용해서 볏단을 집으로 옮겼다. 딸랑 딸랑 목에 달린 종을 울리며 쉼 없이 벼를 실어 나르던 우리 집 황소가 기억난다. 저녁이 되면 볏가래를 쌓는다. 등불을 여기 저기 켜놓고 마치 탑이 쌓아지듯 하늘로 올라간다. 볏가래는 가운데가 볼록한 항아리 모양으로 생겼다. 높이가 점점 올라갈수록 밑에서 볏단을 던져주는 일꾼들의 숨소..

길위의단상 2004.10.15

선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두 길을 동시에 걸을 수 없는 만큼 삶의 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쇼핑을 하면서 어느 물건을 고를 것인가에 대한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삶의 줄기를 바꾸어놓을 만한 중요한 고비의 선택도 있다. 영화 '선택'에서처럼 특히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선택은 한 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극단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개인의 사상을 문제 삼아 평생을 감옥에 가둬두고 전향의 고문과 압박을 가한 것이 어제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물론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사게 될 때 자신의 안전이나 편의성, 또는 사회적 신분의 상징에 우선 가치를 둘 경우 크고 비싼 차에 마음을 앗길 것이고, 지구 환경이나 에너지 차원에 가치..

길위의단상 2004.10.08

"날씨가 참 좋지요?" 오늘은 이런 인사를 많이 주고받았다. 시리다는 표현이 이와 같은 것일까, 서울에 나타난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고도 푸르다. 너무 파래서 저 하늘에는 서러움이 가득 묻어있는 것만 같다. 파란 색은 세상의 모든 슬픔과 외로움과 쓸쓸함이 모여 하늘로 올라가 만든 색깔이 아닌가 싶다. 한자로 가을[秋]과 마음[心]을 합하면 쓸쓸할 수[愁]가 된다. 가을의 모든 풍경 속에는 쓸쓸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가을이라는 계절은 쓸쓸함마저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날은 한 일주일쯤 휴가를 받아 낯선 길로 떠나고 싶다.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들길과 산길을 따라 마냥 걷고만 싶다. 가을 여행은 혼자서 떠나는 것이 어울린다. 여름의 번잡스러움을 지나서 가을은 홀로 스스로에게 향하는 계절이다..

길위의단상 2004.10.05

고요히 쉬기

길 아닌 길을 가면 마음도 몸도 고단하기 마련 쉬시기를 길이어도 쉬고 길 아니라도 쉬시기를 - from 이철수 님 판화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는 갈수록 힘들고 바람도 자꾸 거세집니다. 그래도 길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一切唯心造. 힘들수록 더 자주 마음을 챙기고 살아야 겠지요. 이 세상에서 저 그림처럼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흐르는 물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하는 법입니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고요한 쉼에 머물렀는지요?

길위의단상 2004.09.24

블로그 1년

블로그를 시작한지 꼭 1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가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세상일은 연속해서 꼬여가기만 하고 앞길에도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나를 지탱해 주던 믿음이나 신념마저 밑바닥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만난 일종의 도피처가 블로그였다. 원래는 홈페이지를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며 홈페이지를 만드는 준비를 했는데 진도가 나갈수록 내 능력에는 벅차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어쩌다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그 간편성에 끌리게 되었고 역시 우연하게 접하게 된 한미르 블로그의 조용한 분위기와 단순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독백의 공간이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있어..

길위의단상 2004.09.13

한 장의 사진(1)

앨범을 보는데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바로 이 사진인데 40년 전에 찍은 우리 가족사진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막내의 돌 기념으로 사진관에 가서 찍은 것이다. 오른쪽에 잔뜩 심술궂은 얼굴로 내가 서 있고, 옆에 어머니가 막내를 안고 있다. 이때 어머니가 30대 중반쯤 되었으니 우리 어머니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게 젊은 모습이다. 그 옆에 계신 분은 외할머니이신데 이제 백수를 바라보시며 생존해 계신다. 앞에는 어린 동생들이 머리 모양으로 봐서는 잔뜩 멋을 내고 서 있다. 왼쪽의 까까머리는 둘째 동생이다. 이 사진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사진에 찍힌 부끄러운 내 모습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만은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

길위의단상 2004.09.07

극단 '여의도'

7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이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선배 한 분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날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는데 집에 들어오지를 않은 것이다. 인품이 워낙 중후하고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 분이라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했다. 주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엉뚱한 일을 저지를 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고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도대체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갔을 때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유가 궁금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들 입을 닫으며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선배님 집에서도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가 며칠 지나고 나서야 대체적인 진상을 알..

길위의단상 2004.08.30

[펌] 행복의 차이

# 1 아논드는 꿈 많은 여덟살.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방글라데시의 소년. 아논드는 방글라데시어로 '희망'이란 뜻이란다. 가진 것은 없어도 두 눈에 가득 찬 푸른 하늘에 티 없는 마음을 싣고 훨훨 날 줄 아는 녀석이다. 공책과 연필도 없는 거적때기 위 수업시간 '단어'로 문장을 만들라는 선생님 말씀에 "단어야, 너는 발도 없는데 어쩜 그렇게 많은 사람 만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니." 읊조리는 녀석이다. # 2 서울의 K는 벌써 대입 고민에 빠진 여덟살. '팰리스'에 살지만 세상에서 제일 고달프다는 대한민국의 소년. K는 부모님이 "부자 돼라"며 어느 재벌 이름 따 지어주신 것이란다. PDA와 전자사전이 갖춰진 에어컨 빵빵한 학원에서 "사슴이ООО 봅니다"에 알맞은 단어를 채워 넣으라는 선생..

길위의단상 2004.08.23

아름다운 노년

'우리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 중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단계에 있는 사람은 노인들이다. 나이가 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늙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어두운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세계로 차츰 접근해 가는 것, 즉 지복(至福)의 산(山) 정상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보험 회사의 광고였던가, 노부부가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광고 사진을 보면서 저렇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것이 젊은 시절에 상상했던 내 노년의 모습이기도 했다. 생활은 안정되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며 자유롭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는데 혼돈의 젊은 시절 뒤에는 그런 평화스런 노년이 찾아오리..

길위의단상 2004.08.20

징기스칸

조선일보가 '징기스칸'이라는 새 잡지를 만드는가 보다. 무슨 잡지를 만들든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 잡지의 창간호 광고를 보니 영 꺼림찍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다. 굵직한 글씨로 내세운 취지가 '천재에게 감사하는 잡지, 1등의 철학을 나눠 갖는 잡지, 성공한 사람이 큰 소리 치는 잡지'라 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엘리트주의, 1등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문구인데 성공한 사람들이 앞으로 또 얼마나 더 큰 소리를 쳐야그들은 만족하게 되는지 솔직히 겁이 난다. 잡지 이름을 '징기스칸'이라고 정한 것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징기스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생산성이 높은 지도자였습니다. 13세기 초 몽골 인구는 약 100만 명, 징기스칸은 여기서 약 15만 명의 기마군단을 징집하여 고려에서 지금의 헝가리까지 정..

길위의단상 2004.08.14

지구촌 전염병, 우울증

이번 달 초 뉴스위크 한국판에 우울증에 대한 특집이 실렸다. 표지에는 지구가 우울증으로 찡그린 얼굴을 한 그림과 함께 '지구촌 전염병, 우울증'이란 제목이 달렸다. 선진국 국민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제 우울증은 선, 후진국 가리지 않고 확산되어 모든 나라에서 심각하게 나타나는 전 지구적 질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분화, 도덕적 확신의 붕괴, 국제 미디어에 대한 노출 증가 등의 사회적 변화로 오지의 빈곤층까지 우울증이 퍼져서 세계 전체로 볼 때 인간의 활동 능력을 앗아가는 제일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 문명이 인간에 가하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인다. 국민 소득은 높아지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간의 욕망은 커지..

길위의단상 2004.07.26

Blue days

장마와 함께 찾아온 손님이 떠날 줄을 모른다. 떠나기는커녕 이젠 안방까지 차지하고서는 주인 노릇을 한다. 이 손님이 주는 선물은 무기력과 권태와 절망이다. 가을만 되면 이 손님이 찾아와서 마음은 열병을 앓았다. 그런데 올해는 장맛비 소리에 이 손님의 잠이 일찍 깨었나보다. 우울증이라고 불러야 하나? 세상은 잿빛으로 변하고, 모든 것이 돌아앉았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세상살이는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서걱거린다.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고, 낮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귀찮기만 하다. 깃털 같은 것의 무게가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도 대화는 겉돌기만 한다. 이럴 때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저 몸을 낮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임을 안다. 이 손님과..

길위의단상 2004.07.08

소음인

지난 주에 한의사로부터 진맥과 문진을 통해 체질 감별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오랫동안 상담하던데 내 차례가 되어서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소음인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제마와 사상의학, 그리고 사람을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라는 4가지 체질로 나누어 병의 예방과 치료에 이용한다는 사실은 가끔 들었지만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다. 개인의 육체적이나 정신적 특징은 양 극단으로부터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사이에 어떤 경계를 두어 그룹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분명 그룹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성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가 설명하며 건네준 유인물에 적힌 소음인의 특성을 보고는 내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이 ..

길위의단상 2004.06.28

낙관과 비관

친구가 몇 년 전에 베트남에서 근무했다. 그때 우리 사이에는 많은 메일이 오갔는데 메일함을 열어보니 그 당시 주고받았던 메일들 중에서 하나가 눈에 띈다. 친구와 나는 공통되는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친구는 낙관적이고 나는 비관적인 편이다. 친구는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나는 비판적이다. 그런 면에서 가끔씩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느 날 친구가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깬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 위로 야자수잎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거린다.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그냥 누운채로 움직이지 않고 모처럼의 여유를 느껴본다. 「이곳이 어딜까? 물론 베트남이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꿈일지도 ..

길위의단상 2004.06.18

힘들다! 너무나 힘들어!

오늘 아침에 만난 사진 한 장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강 다리 난간 위에 '힘들다!! 너무나 힘들어!!'라는 낙서가 적혀 있는 사진이다. 저 글을 쓴 사람은 이 지상에 마지막 짧은 글 하나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과연 무엇이 한 사람을 저토록 절망하도록 만들었을까? 절박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저 사진을 보면안타깝기만 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탓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투신을 방지하기 위해 이젠 경찰이 한강 다리를 순찰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자살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보도도 있었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뭘 하든 못 살까하며 그들을 질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각양각색이듯 충격에 대한 반응의 정도도 사람마다 ..

길위의단상 2004.06.11

명함

한국에서 근무하던 인도인이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그 동안의 한국 생활에서 가장 난감했을 때가 명함을 가지지 않고 외출했을 때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말이 서툴러서 명함이 없으면 자기 소개가 잘 되지 않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명함으로 대표되는 지나친 한국 사회의외피 중심주의를 비판한 것인지는 잘 구분되지 않지만 아마도 후자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명함인 모양이다. 어떨 때는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불쑥 명함을 내밀어서 이상할 때도 있다. 서로 초면의 인사를 나누면서 명함을 받기만 하고, 줄 명함을 갖고 있지 않거나 또는 없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거나 아니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보..

길위의단상 2004.06.01

한글은 싫다

5월초에 서울시에서 주관한 축제가 있었다. 시청 앞에 잔디 광장을 꾸미고 그곳을 중심으로 10여일간 시민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축제의 이름이 'Hi Seoul Festival'이어서 지나치게 영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 사실 그 때의 포스터를 보면 온통 영어로 뒤범벅되어서 과하다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축제의 주제를 'RED'로 정하고 R은 Refreshing하는 식으로 행사의 의미를 설명해 놓아 외국인을 위한 행사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Hi Seoul' 대신에 '안녕 서울' 한다고 해서 시대에 뒤져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리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서울시가 이번에는 시내 버스 노선을 개편하면서 버스를 4종류로 나누고 색깔로 구..

길위의단상 2004.05.21

아빠는 꽃처럼 살자고 했죠

나이가 들수록 동요의 노랫말이 가슴에 저며온다. 어릴 때부터 '파란마음 하얀마음'의 노랫말을 좋아했는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정이 가는 건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동요가 주는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고 옛 동무를 만난 듯 반갑기만 하다. 가끔씩듣게 되는 다른 동요의 노랫말들도 어쩌면 그리 이쁜지 모르겠다. 옛날 노래 가사에는 인간의 순수한 그리움이나 정이 자연과 잘 조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며칠 전에 '파란마음 하얀 마음'의 노랫말을 지으신 어효선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옛날에 부르던 동요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 분이 지은신 노래 중에서 널리 알려진 세 곡의 노랫말을 다시금 흥얼거려 본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

길위의단상 2004.05.18

사람들은 모두 불쌍해

한미르 커뮤니티에 김정란 님의 '현대시 읽기'라는 칼럼이 있다. 몇 번 게재되다가 지금은 글이 올라오지 않아 아쉬운데, 옛 글 중에서 공감이 가는 내용이 있어 옮겨 본다. 김정란 님은 언젠가 TV 프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시인이 정치 토론 프로에 나온게 특이해서 유심히 지켜 보았다. 보수쪽 공격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현실에 비판적이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눈이 느껴졌는데 이 글에서도 비슷한 것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불쌍해! 나도 불쌍하고, 너도 불쌍하고, 우리 부모님도 불쌍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불쌍하다.'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 가끔식 찾아와 가슴이 아려지는 요즈음이다. 누구든 자기 한 몸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지요. 조금씩 그 고통을 가볍게 만들기..

길위의단상 2004.05.11

제비가 오지 않는 땅

제비꽃은 피었는데 제비는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비를 못 본지가 몇 년이 된 것 같다. 옛날이었으면 아마 지금쯤 강남에서 찾아온 제비들이 논밭 위를 날렵하게 날아다니고 마당의 빨래줄 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가 시작될 때이다. 시골에서 자란 중년의 연배라면 제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 제비는 참새나 까치보다도 더 우리와 친근한 새였다. 그것은 사람과 동거하는 습성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흥부전을 통해서 은혜 갚는 새로 우리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비는 시골 초가집의 서까래와 벽 사이에 집을 지었다. 대부분의 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건만 제비는 사람 집에 일부러 찾아들어 온다. 그런데 하필 집 짓는 곳이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위일 경우..

길위의단상 2004.05.03

길 떠난 사람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사람들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이젠 잊어버린 고향 집을 떠나 와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그네들이고 순례자들이다.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 길 위에 올라섰으니 무작정 걷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언가의 꿈을 쫓아 아니면 신기루에 희망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어느 길 모퉁이에서 남은 여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어진 신발에 다리를 절뚝이며 자꾸만 뒤쳐지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순례의 길에 나선 분들이 있다. 지난 3월에 지리산을 출발하여 3년 계획으로 전국을 순례하며 생명평화의 기운을 일으키려는 도법과 수경, 두 분의 스님이시다. 그리고 이분들 뜻에 동참하는 여러 사람들도 동행하..

길위의단상 2004.04.23

선거 이틀 전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분위기가 전에 비해 차분해진 것 같다. 신문이나 TV를 통해서만 선거일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생활에서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도 정치 얘기 한 두 마디는 거들 정도는 되었다. 역시 선거는 바람을 잘 타야하는 건지 무슨 풍, 무슨 풍에 민심이 왔다갔다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 한 때는 구태의연한 썩은 정치판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특히 탄핵 사태의 충격이 그런 바람에 불을 지펴서 그 열기는 전국을 휩쓸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고개를 드는 지역주의 앞에서 촛불의 빛도, 변화의 바람도 슬그머니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국민의 의식 수준을 넘을 수 없다..

길위의단상 2004.04.13

산다는게 뭔지

"산다는게 뭔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나갔을 때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분이 계셨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언제나 넋두리 비슷한 독백으로 말하곤 했다. 그 어투가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모두들 그 말을 들으면 빙긋이 웃었다. 그래서 그 분의 별명이 곧 `산다는게 뭔지`였다. 똑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식상하기도 하련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 소리인데도 그 분의 독백에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경박하지 않은 진지한 그 분의 태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할 때 그 분의 주름진 얼굴에는쓸쓸함이랄까 우울함이랄까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번져 나왔다. 그말에 누구도 결코 농담으로 대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독백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같기..

길위의단상 2004.04.01

살다 보면

살다 보면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흐린 날이 더 많다. 바람 불고 비 내리고 어느 때는 폭풍우를 만나기도 한다. 우산도 준비하지 않아 궂은 비를 흠뻑 맞기도 한다. 인생길이 탄탄대로이지는 않다. 도리어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자갈길일 경우가 많다. 어느 때는 튀어 나온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정갱이에서는 피가 날지도 모른다. 앞에 가로놓인 벽이 너무 단단하고 높아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인생살이가 어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랴마는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며 운명이 야속해질 때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분명 불평등이다. 어느 하루살이는 맑은 날 이 세상에 나와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제 몫을 다하지만, 어느 하루살이는 장마철에 이 세상에 나와 비에 젖은 날개는 찢어지고 무너져 ..

길위의단상 2004.03.21

바쁘고 힘들다

바쁘고 힘들다. 하루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일과를 끝내고 나면 지쳐 녹초가 된다. 잠시나마 블로그에 들러 보기도 어렵다. 익숙했던 생활부터의 결별이 이렇게 힘드는구나. 정말 인생에는 공짜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지냈지. 그 편한 날들의 보상을 하라고 이렇게 힘들고 무거운 업무를 맡겨주는가 보다. 어느 분의 말을 신문에서 보았다. `인생의 길엔 과 이 있다. 가기 위한 길엔 목표가 있지만 걷기 위한 길엔 목표가 없다. 나는 한번도 목표를 정하고 살지 않았다. 산보하듯 걷기만 했고, 매 순간 충실했을 뿐이다. 남들이 원하는 영예의 자리는 정말 부산물에 불과하다.` 산보하듯 걸었고, 매 순간 충실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럽다. 범인들이야 생각은 있어도 그런 마음자리..

길위의단상 2004.03.04

원판 불변의 법칙

첫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분을 25년 만에 처음 만났다. 이런 만남에서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그간의 세월 흔적은 얼굴과 몸에 눈에 띄게 드러나 있었다. 머리는 이미 반백이 넘어섰고 이마와 목에는 겹쳐진 주름살이 그 동안에 흘러간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말투나 웃는 모습, 또 그 뒤에 숨어있는 그 분의 성품이나 분위기는 25년 전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똑 같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대화를 계속하다보면 다음 말이 어떻게 나올지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분이 세상을 보는 눈이나 가치관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가끔씩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옛 학교 동창들에서도 늘 똑 같은 사실을..

길위의단상 200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