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에 지인 세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오늘 새벽에는 친구의 장례 미사에 다녀왔다.
앞 자리에 앉은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의 처진 어깨가 더욱 슬펐다.
지금까지도 기분이 우울하고 스산하다.
나도 언젠가는 앞자리에 앉아 가까운 이를 떠나 보내는 이별 의식을 치러야 하리라.
그리고 또 언젠가는 나 자신이 이 의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리라.
나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다.
가장 분명한 이 사실을 또 대부분 가장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듯이 말이다.
늘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산다는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뭘 얻었다고 기뻐하고, 뭘 잃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나는 이내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
죽음은 더 이상 나와 관계없다. 어디로 달려 가는지 살펴볼 여유도 없이 지금껏 살아온 관성에 의해 그저 앞으로만 내달리고 있다.
그런 내가 싫다.
등산로 입구에 토종닭을 기르는 집이 있었다.
손님이 부탁하면 주인은 울 안에 들어가 닭을 잡아와서는 목을 딴다.
주인이 울 안에 들어오면 닭들은 꼬꼬대며 도망치다가도 동료가 붙잡혀 나간 뒤에는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가 찾아온다.
옆에서 목이 비틀어져도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닭들은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산에 오르다 가끔씩 본 그런 광경이 기이하고 소름끼쳤다.
그러나 그 모습은 바로 지금 나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
죽음이 있고 끝이 있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가치있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을지 모른다.
그 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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