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10

공짜 / 박호현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드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 공짜 / 박호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쓴 동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더니 열 살도 안 된 아이의 글이 큰 깨우침을 준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은 전부 공짜가 아닌가. 나도 공짜 목록을 적어보며 불평하는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어느 노래 가사에도 이런 게 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이 세상에 빈 손으로 온 놈이 이만큼 가졌으면 부자가 아닌가.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에 결핍을 느낄 ..

시읽는기쁨 2023.08.21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존경하는 벗인 Y형은 글을 잘 쓴다. 잘 쓴다는 것은 기교가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글이 진솔하면서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형은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도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담백한 그런 점이 옆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 공통점도 많다. 가까워진 것도 꽃이 매개가 되어서였다.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가 "어, 나도 그런데"라는 반응이 나온다. 얼마 전에 통화를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말자고 서로 다짐했다. 외부 환경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황폐해져 버린다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형은 "이만큼 살아보니 인생사가 새옹지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니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형이 최근에 쓴 글 한 편을 보내줬다. 감사하고 고마워..

참살이의꿈 2022.10.30

당연한 일은 없다

기억할 때마다 낯 부끄러워지는 옛날 일이 하나 있다. 외할머니가 살림을 맡으시고 동생과 함께 서울에 살 때였다. 부모님은 힘들게 농사를 지으시며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주셨다.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은공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날은 왠지 심사가 삐딱했었던 것 같다. 나는 불쑥 내뱉고 말았다. "자식 위해 고생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당연한 일 가지고." 아차, 싶었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이었다. 외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셨다. 그렇다면 저 놈이 내 고마움도 모를 터가 분명하다는 표정이었다. 외할머니가 이 말을 부모님한테 전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부모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당연하다'는 말은 내 금기어가 되었다. 어쩌다 습관적으로 ..

참살이의꿈 2022.10.19

여드레 만의 외출

두 주일이 지나니 그제야 감기가 떠날 채비를 한다. 감기는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그냥 집에서 버티는 편이다. 되도록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백수의 좋은 점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주사도 맞고 약을 먹어야만 했다. 그러나 일이 없어진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저도 지겨워지면 언젠가는 떨어져 나가겠지, 하며 느긋하게 기다린다. 고향에서 외할머니가 개를 기를 때 보면 개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활동을 멈추고 그냥 가만히 엎드려 있는다. 음식을 갖다줘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냥 눈만 끔벅끔벅 할 뿐이다. 말을 못 하니 어디가 아픈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 채로 여러 날이 지나간다. 잘못하면 죽겠구나 싶다가도 어느 날 보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생기를 되찾는다. 개한테는 병원도 없고 약도 없다. 자연치유가 되..

사진속일상 2019.11.23

덕분입니다

덕분, 참 좋은 말이다. 한자로 쓰면 '德分'이 된다. "덕분입니다"는 당신이 나에게 덕을 베풀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이다. 덕을 나누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에 비해 새해 인사말로 쓰이는 "복 많이 받으세요"는 좀 욕심꾸러기 같은 느낌이 난다. 세상의 복 분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혼자서 복을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든다는 건 모른다. 아쉽게도 "복분(福分) 합시다"라는 덕담은 없다. 어느 분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명함만 한 종이를 나누어 주는 걸 보았다. 거기에는 직접 붓글씨로 쓴 '덕분에'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항상 이런 마음으로 살자는 뜻이리라. 전에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잘못되면 네 탓이오, 잘 되면 내 탓이라고 한다. 이러면 분쟁과 싸움..

참살이의꿈 2014.03.17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꽃자리 / 구상 해가 바뀌었다. 새 희망과 결심으로 잠깐 설레는 아침이다.이 시를 2010년의 첫 시로 읽는다. 무엇을 바라기보다는 내 있는 자리에 만족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삶에 좀더 너그러워지기,덜 아등바등거리기, 그리고 고맙고 기쁘게 살고 싶다. 올 한 해.....

시읽는기쁨 2010.01.01

좋아진 것 10가지

직장을 옮겼다. 비록 바라던 곳은 아니었으나 첫 인상이 아담하고 따스해서 좋았다. 처음에는 투덜거렸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좋아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왕이면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운명에 거역하기보다는 순응하고 체념하는 데는 이제 도사가 되어가고 있다. 좋아진 것 10 가지를 나름대로 골라 보았다. 1. 더 많이 걷게 되다. 2. 한강 옆이라 한강과 더 가까워지다. 3. 혼자 있는 사무실이 생기다. 4. 직장이 작고 아담하다. 5. 입시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되다. 6.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와 인연을 맺다. 7. 아이들 수준이 전에 비해 고르다. 8. 퇴직을 좀더 일찍 고려할 수 있게 되다. 9.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다. 10.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

길위의단상 2009.02.20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또, 말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곧 말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둘이 서로 악순환을 하며 돌고, 어떤 사람에게는 선순환을 하며 안사람이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마음의 세계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 내가 힘들었을 때, 옆의 친구는 애써 좋은 말과 좋은 생각을 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때는 귀에 잘 안 들어왔는데 지나고 보니 친구의 말이 옳았다. "행복해..

시읽는기쁨 2008.10.24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조용한 일 / 김사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나뭇잎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흔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색깔이나 모양이 나뭇잎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류마다 잎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르고, 그 미묘한 차이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잎의 부드러운 감촉도 좋고, 실핏줄 같은 잎맥도 예쁘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춤은 또 어떤가. 가을 단풍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과 풍경을 연출한다. 나뭇잎은 나무에서 돋아나 평생을 나무를 위해 일하고, 나무의 성장을 돕는다. 물과 공기와 햇빛 만..

시읽는기쁨 2008.08.22

은총에 눈을 뜨니 / 구상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는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 은총에 눈을 뜨니 / 구상 '종교'보다는 '종교성'이라는 말이 좋다. '축복'보다는 '은총'이라는 말이 좋다. 벽돌로 지은 사원보다는 내 마음 안 그분의 거소가 더 진실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

시읽는기쁨 200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