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18

사기[7-5]

공자가 죽은 뒤 자사(子思)는 세상을 등지고 풀이 무성한 늪가에 숨어 살았다. 어느 날 위나라 재상으로 있던 자공이 말 네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호위병과 함께 잡초를 헤치며 궁핍한 마을로 들어섰다. 지나가다가 자사에게 인사했다. 자사는 낡아빠진 옷차림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자공은 그의 초라한 행색을 부끄럽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병이 들었습니까?" 자사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자공은 수치스러워하며 좋지 않은 마음으로 떠났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 사기 7-5, 중니제자열전(仲尼第子列傳) 헌문편에 이..

삶의나침반 2023.10.22

소르본 철학 수업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명품 인간이 돼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낯설게 느낀다. '인간'과 '명품'이 서로 등치 될 수 있는 것일까? 한때는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용하기도 했다. 세상의 당연함에 회의를 품었던 소녀는 프랑스 파리로 철학 공부를 하러 떠난다. 이 책 은 자의식에 눈 뜨면서 세상의 관념에 맞서 싸우며 나아가는 한 인간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전진 작가는 201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로 날아갔다. 2년의 어학 코스를 밟은 뒤, 2017년에 파리 제1대학 철학과에 입학하고 3년 만에 졸업했다. 지금은 같은 대학원 철학과 미술사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요즈음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들은 대개 의대나 법대를 간다. 우리 때만 해도 ..

읽고본느낌 2020.11.14

라틴어 수업

한동일 선생이 서강대에서 강의했던 라틴어 수업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선생에 대해서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선생은 2003년에 이태리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회법학 석사 과정을 최우등으로 수료했고, 다음 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었다. 로마 로타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법과 함께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모든 과정을 마쳐도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 비율은 5% 정도라고 한다. 은 간단한 라틴어 설명과 함께 라틴어를 사용한 옛 로마제국의 풍습이나 일상을 흥미롭게 소개해 준다. 겸하여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내용의 강의라면 아..

읽고본느낌 2020.10.29

논어[247]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날 공부는 자기를 위한 것이더니, 요새 공부는 남 때문에 하거든."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 憲問 16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의 의미를 바로 할 필요가 있다. 위기(爲己)라고 하면 나의 명성을 위한 이기적인 공부로, 위인(爲人)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세상을 낫게 하려는 공부로 오해하기 쉽다. 사실은 반대다. 공부의 목적은 자기 완성에 있다. 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위기지학이다. 그 연후에 세상으로 나아간다. 반면에 위인지학은 처음부터 타인을 의식하는 공부로 출세를 지향한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공부다. 공부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는 데 따른 공자의 한탄이 이 말씀에 있다.

삶의나침반 2017.07.27

자연이 들려주는 말 / 로퍼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뚝 서서 세상에 몸을 내맡겨라. 관용하고 굽힐 줄 알아라.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열어라. 경계와 담장을 허물어라. 그리고 날아올라라. 태양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돌보아라. 너의 따뜻함을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하라. 냇물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느긋하게 흐름을 따르라. 쉬지 말고 움직여라. 머뭇거리거나 두려워 말라. 작은 풀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겸손하라. 단순하라.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라. - 자연이 들려주는 말 / 척 로퍼 I Listen I Listen to the trees, and they say: "Stand tall and yield. Be tolerant and flexible."... I Listen to th..

시읽는기쁨 2017.05.14

공부하면 는다

지지옥션배 바둑대회는 남자 기사와 여자 기사의 단체 대항전이다. 각 12명씩 연승 방식으로 대전한다. 남자와 여자의 기력 차이가 있으니 남자는 40세가 넘어야 참가할 수 있다. 지금 10회 지지옥션배가 진행되고 있는데 1장으로 나온 서봉수 9단이 9연승을 했다. 어제 오유진 2단에게 져서 10연승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9연승도 대단한 기록이다. 바둑에도 전성기가 있다. 타이틀 홀더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다. 30대가 되면 힘을 못 쓴다. 머리로 하는 싸움인데도 바둑 역시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대 바둑의 짧은 제한시간에 있다. 대전 방식의 문제가 크다. 나이가 들면 집중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다. 특히 초읽기에 들어가면 두뇌 회전이 젊은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

길위의단상 2016.08.10

다 공부지요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지방을 쓸 때 '학생(學生)'이라는 글자에서는 늘 가슴이 뭉클해진다. 학사금이 없어 소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버지의 한이 생각나서다. 돌아가셔서야 '학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학생'이 벼슬을 하지 못한 망인에게 붙인다지만 의미로 보면 매우 아름다운 이름이다. 꼭 학교에서 배우는 게 공부가 아니다. 삶이 곧 공부인 것이다. '학생'이라는 말에는 인생을 배우는 과정으로 보는 유교의 관점이 들어 있다. 학(學)은 도(道)나 각(覺)보다 훨씬 친근하고 가깝다. 도나 각은 아무나 다다를 수 없다. 그러나 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삶을 통해서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노력이 학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살아서도 학생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학교의 학생인 것이다.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

참살이의꿈 2016.04.17

배움을 찬양함 / 브레히트

배워라 단순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의 시대가 왔다 너무 늦는 법은 없는 것이다! 배워라 가나다라를 그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겠지만 우선 배워라!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말일랑 하지 말고 시작해라! 여러분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선두에 서야 한다 배워라 여인숙에 사는 사람들이여 배워라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여 배워라 부엌의 여자들이여 배워라 60세의 여인이여 여러분은 선두에 서야 한다 학교를 찾아라 집 없는 사람들이여 지식을 손에 넣어라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여 굶주린 사람들이여 책을 잡아라 손에 그것은 무기의 하나다 여러분은 선두에 서야 한다 동지여 질문하라 망설이지 말고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스스로 음미해 보라!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앎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감정서를 검..

시읽는기쁨 2015.10.19

논어[114]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즐겨 깍듯이 배운 사람이지."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 述而 16 나면서부터 알 정도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공자 스스로 말한다. 다만 열심히 배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열정이 '민(敏)'이라는 단어에 잘 나타나 있다. 앎에 대한 갈증이 공자를 만들었다는 건, 호학(好學)에서는 자신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라는 공자 자신의 자부심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되는 아둔한 사람도 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사람이 있고, 하나도 못 깨치는 사람도 있다.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알지는 않았다 해도 앎에 대한 자질은 뛰어난 분이 공자였다. 애쓴다고 누구나 공자 같이 되는 건 아니다. 공자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

삶의나침반 2014.11.20

[펌] 도올의 교육입국론

혁신 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1. 총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간됨의 특징을 “..

길위의단상 2014.06.27

별사 /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라고 하면 좀 낫지요마는 - 별사(別辭) / 김사인 신년시라고 꼭 희망과 꿈을 노래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보신각 앞에 모여 환호하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부..

시읽는기쁨 2014.01.01

논어[55]

선생님 말씀하시다. "잘난 이를 만나면 나도 그렇게 되기를 생각하고, 못난 이를 만나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한다."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 里仁 15 유생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는 법이다[三人行必有我師焉]. 못난 이더라도 반면교사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가 '배울 학(學)' 자로 시작하듯이 공자에게 배움이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다. 배우고 익혀서 성숙해지는 기쁨을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는 고통과 괴로움만 준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알면서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공부는 삶의 희열이 된다. 공부의 참뜻은 본래 그런 것이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면서 지방을 쓸 때 죽은 ..

삶의나침반 2013.11.05

김영민의 공부론

한자로 쓴 '공부(工夫)'라는 단어는 이상하다. '장인 공[工]'과 '지아비 부[夫]'로 된 의미가 지금 사용하는 공부의 뜻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 의미의 공부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공부와는 달랐음이 분명하다. 김영민 선생이 쓴 은 본래적 의미의 공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부란 체계와 에고이즘으로부터 어긋냄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몸부림에서 시작한다. 이걸 선생은 '몸을 끄-을-고'라는 표현으로 쓴다. 공부란 머리로 하는 지식놀이가 아니다. 생각만이 많은 사람들은 입과 펜으로 관념의 사상누각이나 이론의 만리장성을 쌓지만, 몸을 끄-을-고 나온 사람들은 온갖 지식과 이론을 담으면서 비우고, 쓰면서 지우며, 알면서 모른 체하는 과정을 통과하여 몸이 좋은 사람들로 변화해 간다. 이 과정에서 '체계와의..

읽고본느낌 2013.09.11

논어[44]

선생님 말씀하시다. "진실로 사람 구실에 뜻을 두면 나쁜 짓은 못하느니라."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 里仁 4 공자가 평생을 여일하게 지킨 삶의 뜻은 '사람 되기'[仁]였다. 공자가 강조한 공부의 목적도 거기에 있었다. 언젠가 자공이 마음속에 지닐 한 마디를 청했을 때 공자는 '서(恕)'라고 답하면서,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했다. 사람 되기의 제일 원리가 이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진실로 사람 되기에 뜻을 두었다면 나쁜 짓은 할 수 없는 법이다. 또다시 학교와 공부를 돌아본다. 다들 공부 잘해 일류대학 나오고, 출세하려는 욕망만 가지고 있다. 사람 됨됨이는 꼬리로 밀렸다. 선생의 역할도 현실에 충실히 복무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공부는 공해가 ..

삶의나침반 2013.08.17

논어[4]

선생님 말씀하시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면 효도, 밖에서는 우애, 성실한 행동에 믿음직한 말씨, 범범하게 대중을 사랑하되 사람다운 이와는 더욱 가까이해야 한다. 그러고도 틈이 나거들랑 글을 배워야지." 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 學而 4 왜 글을 배우고 학문을 하는가? 공자님 말씀의 초점은 '참된 사람 되기'에 집중되고 있다. 에 나오는 대로 격물치지(格物致知)는 결국 수신제가(修身齊家)로 연결된다. 공자님만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공야장(公冶長)편에 이런 공자님 말씀이 나온다. "자그마한 고을에도 나만큼 성실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이렇듯 글을 배우는 데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했지만, 학문은 사람 도리를 하고 난 ..

삶의나침반 2012.12.01

공부도둑

은 물리학자면서 녹색사상가인 장회익 선생의 70년 공부 인생 이야기다. 선생에게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게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찾고 '앎'을 추구하며 즐기는 데 있었다. 그래서 본인의 생애를 앎과 숨바꼭질하며 살아온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또 공부꾼이라고도 했다. 우주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학문의 정수를 골라 훔쳐내는 '공부도둑'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선생의 공부 방법은 남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집안 어른의 반대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원리를 스스로 깨달았다. 당신 스스로 아인슈타인과 비교하는 데서 볼 수 있든 특별한 두뇌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 가든 공부에서는 1등이고 수석이었다. 그런데 엘리트 의식이 전혀 없고 겸손하다. 도리어 남과..

읽고본느낌 2012.11.20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나는 만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당시는 일곱 살이 입학연령이었고, 그것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오히려 한 해 늦은 여덟 살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 경우는 면사무소에 근무하시던 선친이 미리 가서 한글이라도 익히라도 임시로 한 해 먼저 보낸 것이었다. 말하자면 편법 입학생이었다. 그런데 학교도 그럭저럭 다니고 공부도 뒤처지지 않으니까 담임이 그대로 진급시키라고 해서 졸지에 정식 학생이 되어 버렸다. 본의 아니게 동기들보다 한 살 아니면 두 살이 어린 처지가 된 것이다. 마을의 같은 또래는 자동으로 내 후배가 되었다. 키도 작고 마음도 여린 아이가 한두 해 먼저 자란 아이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만만치 않았다. 놀이에서는 늘 뒤쳐졌고, 정신 나이도 한두 레벨은 아래였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무..

길위의단상 201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