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9

빈집

고령사회가 되면서 일본의 빈집이 800만 채가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체 주택 수 대비 비율로는 13.5%에 해당한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2030년에는 전체의 1/3이 빈집으로 변한다고 예상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인구 감소로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이미 수두룩하다.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젊은 사람이 농촌에서 살 리가 없다. 수입, 자녀교육, 문화생활 등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귀농 지원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농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었다. 도시인은 전원생활을 그리워한다.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2촌'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삶은 도시인의 로망이다. 그러나 누구나 세..

참살이의꿈 2017.06.17

관촌수필

오래전에 읽다가 만 소설인데 이번에는 아주 재미있게 완독했다. 젊었을 때는 이런 소설 읽기가 힘들었는가 보다. 무엇이건 때가 무르익어야 자연스레 된다. 에는 고향의 정경과 인정이 토속어와 함께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문체에서도 고전적인 향취가 난다. 사라져 간 고향과 사람들을 이만큼 서정적으로 묘사한 글도 만나기 어렵다.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특히 충청도 지방의 사투리가 작품의 맛을 더한다. 자전적 소설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어휘를 구사하자면 많은 공부와 노력이 들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의 집은 한산 이씨의 잘 나가는 양반이었다. 증조부는 상주목사를 지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을 겪으면서 집은 풍비박산이 났고, 작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읽고본느낌 2015.01.12

다시 논밭으로 / 서정홍

마을 회관에 보건소 소장님 오셨다. 조그만 가방 안에 설사약 감기약 위장약 피부약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아무래도 돼지고기 먹은 게 탈이 났는갑다. 온종일 설사하느라 일을 할 수 있어야제. 이런 데 먹는 특효약 없나?" "특효약이 어디 있소. 나이 들수록 조심조심해서 먹는 게 특효약이지." "나는 허리가 아파 똥 누기도 힘들고 온 만신이 다 아픈데 우짜모 좋노." "수동 할매, 여기 안 아픈 사람이 어딨소? 쇠로 만든 자동차도 오래 쓰모 고장난다 카이. 그만큼 살았으모 아픈 기 당연하지. 안 아프모 사람이 아니라요." 보건소 소장님은 안 아픈 데가 없는 산골 마을 늙으신 농부들의 몸과 마음을 도사처럼 훤히 꿰뚫어 본다. 그리고 단돈 구백 원만 주면 약도 주고 주사도 놓아 준다. 보건소 소장님 다녀가..

시읽는기쁨 2013.11.29

풀나라 / 박태일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젖쟁이 노랑쟁이 나생이 잔다꾸 사람 없고 사람 닮은 풀들만 파도밭을 담장으로 삼고 사는 나라 예순 아들이 여든 어머니 점심상을 차리고 예순 젊은이가 열 살 버릇대로 대소사 상다리 이고 지는 마을 사람만 봐도 개는 굼실 집 안으로 내빼 이름 잊혀진 채 그저 풀로만 불리는 강바랭이 씀바구 광대쟁이 독새기 이장 댁 한산 할배 마을 회관 마룻바닥에 소금 전 양 등줄 꺼지게 누운 마을 토광 옆 마늘 종다리는 무슨 힘으로 아침저녁 울컥벌컥 잘도 돋는데 한때 마흔 이제 스무 집 어른들 집집 다 버리고 마을 회관 두 방 문지방 내외하며 자고 먹는 풀나라 굴 양식 뜰것이 아침마다 허옇게 저승길 종이꽃처럼 피는 바다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 풀나라 / 박태일 추석 귀성 행렬이..

시읽는기쁨 2010.09.19

워낭소리

감동적인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타리 영화인 '워낭소리'다. 워낭은 소의 목에 매다는 방울인데, 맑게 딸랑거리는 워낭소리는 주술처럼 우리를 유년의 고향으로 안내해 준다. 경북 봉화에 사시는 여든 살의 최 할아버지에게는 30 년을 함께 살아온 늙은 소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 년이라는데 이 소는 나이가 40 살이나 되었다. 할아버지와 소는 사람과 가축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있다. 할아버지는 소를 위해서 농약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데 할머니보다 소를 더 챙긴다고 할머니로부터 늘 불평을 듣는다. 그리고 소는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의 수족이 되고 농기구가 되어 온 몸을 바쳐 헌신한다. 소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잘 걷지도 못하는 소는 죽기 직전까지..

읽고본느낌 2009.02.05

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 / 최서해

나는 봄이면은 아버지 따라 소 끌고 괭이 메고 저 종달새 우는 들로 나갑니다 아버지는 갈고 나는 파고 둥그런 달님이 저 산 위에 솟을 제 시내에 발 씻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가 지어 놓으신 따뜻한 조밥 누이동생 끓여 놓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온 식구는 배를 불립니다 고양이 개까지.... 여름이면은 아버지 따라 호미 메고 낫 들고 저 불볕이 뜨거운 밭으로 갑니다 아버지는 풀을 매고 나는 가라지 뽑고 한낮 몹시 뜨거운 때면 누이동생 갖다주는 단 감주에 목 축이고 버들 그늘 냇가에서 고기도 낚습니다 석양이면은 돌아올 때 소 먹일 꼴 한 짐 잔뜩 베어 지고 옵니다 저녁에는 어머니가 짜서 지은 시원한 베옷 입고 온 식구 모깃불가에 모여 앉아 농사 이야기에 밤 가는 줄 모릅니다 이러하는 새에 앞산에 단풍이 들지요..

시읽는기쁨 2007.08.18

장선리 / 양문규

마당 한가운데 너럭바위 있다 댓돌 위 검정 고무신 있다 마루 한쪽 맷돌 확독 있다 뒤뜰 크고 작은 독 있다 외양간 코뚜레한 소 있다 사랑채 흙벽 종다래끼 뒤웅박 키 호돌이 삼태기 있다 뒷간 똥장군 똥바가지 있다 정짓간 쇠솥 있다 조왕신 절구통 절굿공이 있다 헛간 벽 쇠스랑 갱이 갈쿠리 걸려 있다 도리깨 홀태 족답식 탈곡기 있다 쟁기 지게에 얹혀 있다 닭장 닭둥우리 있다 개울 나무다리 놓여 있다 뒷산 서낭당 있다 상엿집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흑백사진 속의 풍경처럼 천태산 남고개 너머 더 깊은 골짝 장선리 - 장선리 / 양문규 30년 전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처음 읽었을 때 정보, 지식 혁명에 대한 개념들은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제3의 물결이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쓰나미가 ..

시읽는기쁨 2005.12.07

빈 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빈 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쓸쓸합니다. 논과 밭의 결실을 끝냈는데도 농촌에는 무기력과 한숨만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만나는 농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농업 정책이 세계화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이 방법이 농민을 위하는 유일한 거라면서 나라 살림 맡은 이들은 달래지만 살림살이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갑니다. 몸이 부서져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멀어집니다. 농사에 뜻을 두고 투자를 한 사람이라면 빚만 늘어나기 십상입니다. 농민들은 이것을 농업을 포기한 농정 정책 탓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를 수출하는 대..

참살이의꿈 2005.11.14

[펌] 저 황금빛 들녘의 비애

경남 밀양의 가을 들녘을 걸으며 눈이 시리다 못해 충혈이 되도록 안부를 묻는다. 청명한 가을 햇살과 찬 서리를 맞아 속살부터 단맛이 차오르는 얼음골 사과의 표정으로, 그리고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사자평 억새꽃의 이름으로 그대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예사롭지 않은 세상, 그대는 정녕 이 가을에 행복하신가. 220일을 넘도록 걷고 걸으며 둘러보아도 세상은 온통 수상하고 수상할 뿐이다. 황금빛 출렁이는 저 들녘의 풍요는 어느새 풍요가 아니라 처절한 결핍이 되었다. 추수의 '감사'가 아니라 농산물 수입개방 문제 등으로 인해 생존권 사수의 '결사'가 되었다. 이따금 참새들이 날아와 벼이삭을 쪼더라도 화를 내는 척하지만 어느새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허수아비들의 여유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농자천하지대본'의 ..

참살이의꿈 200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