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4

[펌]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

길위의단상 2024.11.29

서울대 10개 만들기

"한국은 교육지옥이다." 이런 명제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생각하는 학생 비율이 우리나라는 80%에 달하는데, 중국은 41%, 미국은 40%, 일본은 13%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럽 학교와의 비교는 아예 되지 않는다. 한국만큼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한국 교육은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른다. 그렇다면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물음이 따른다. 사회학자인 김종영 선생이 쓴 는 여기에 대한 대답인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선생은 이런 교육지옥의 원인이 대학 서열 체제로 인한 병목 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SKY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여기에는 정부관료와 사교육 세력,..

읽고본느낌 2023.10.03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지난달 29일에 열렸던 제77회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축사를 했다. 선배로서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인데 근래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모교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부터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근무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다. 이번 축사의 요지는 자기만 잘 살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선생은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라고 반문한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하지만 그건 일률적인 공평에 지나지 않는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

참살이의꿈 2023.09.17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 김예슬

우리 대학은 입학시험이 없다. 우리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당연히 교수도 캠퍼스도 없다. 입학시험은 없지만 진정한 자신을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필요하다. 졸업장과 자격증은 없지만 일생을 함께할 자신감과 좋은 벗들이 주어진다. 교수는 없지만 숨은 현자와 장인과 토박이 지성들이 우리의 교수다. 캠퍼스는 없지만 온 국토와 지구마을과 삶의 현장이 우리의 캠퍼스다.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발목이 시리도록 대지를 딛고 계절의 길을 거닐며 야생자연을 탐험한다.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지감각을 되살리고 민감한 감성으로 절정체험의 순간을 느낀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

시읽는기쁨 2023.07.31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13년 전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제목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경영학과 3학년생이던 김예슬이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학생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부 선언이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숨 죽이고 있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블로그에 대자보 전문을 옮겼고 공감을 표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호수에 생긴 파문은 이내 가라앉아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강고한 시스템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김예슬 씨가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소책자인데 선언을 한 그해에 ..

읽고본느낌 2023.07.30

불멸의 표절 / 정끝별

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 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심심해 건들거리는 저 장다리꽃을 표절할래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할래 앙다문 씨앗의 침묵을 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아직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 구르다 멈춘 바닥에서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 그래, 본 적 없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들을 표절할래 진동하는 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 허공에 정지한 별의 생을 떠받치고 선 저 꽃 한 송이가 감당했던 모종의 대역사와 어둠과 빛의 고비에서 나를 눈뜨게 하는 당신의 새벽 노래를 최초의 목격자가 되어 표절할래 풀리지 않는, 지구라는 슬픔의 매듭을 베껴 쓰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될래 다다다 나무에 구멍을 내듯 자판기를 두드리며 백지(白紙)의 ..

시읽는기쁨 2022.08.22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올해 수능인 생명과학(2)의 한 문제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수험생들에게는 생명과학 점수가 빠진 성적표가 발부되었다. 며칠 전에는 외국 과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터무니없이 어렵고 푸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 수능은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일부 영어 문제는 대학을 졸업한 미국 사람도 못 푼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다. 수능이 오로지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아서 출제한다. 아마 이번의 생명과학 문제도 그런 유형에 들어갈 것이다. 수능 문제는 실생활은 차치하고 대학 공부를 할 자질 측정으로부터도 동떨어져 있다. 고등학생들은 오직 대학에 들어가..

길위의단상 2021.12.13

말 많은 수능

올 수능도 뒷말이 많다. 고작 몇백 명 대상의 학교 시험에서도 이러쿵저러쿵 시빗거리가 생기는데 한꺼번에 60만 명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은 오죽하겠는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뒷말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국어 영역 31번이다. 한 페이지에 걸쳐 긴 지문이 나오고 그에 딸린 문제가 여섯이다. 그중에 31번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아우성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우선 지문이 이렇게 길다. 근세에 등장한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설명이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 31번이 나온다. 이 문제를 보니 만유인력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만유인력은 두 질량의 ..

길위의단상 2018.11.21

디 마이너스

1990년대 후반의 대학 생활을 그린 손아람의 장편소설이다. 90년대 학번은 대학에서 마지막 운동권 세대라 할 수 있다. 전대협과 한총련으로 이어진 학생 운동 그룹은 NL과 PD 계열로 나누어지고 후반에는 연대회의와 전학협이 주도했다. 이 소설 는 연대회의에서 활동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상과 갈등, 사랑, 대학 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다.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서 점차 힘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 내 대학 시절과 비교하면 학생들의 의식에서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90년대는 제도적으로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그래서 투쟁의 내용도 우리와는 달랐다. 정치적 이슈보다는 경제 불평등의 개선에 비중이 커졌다. 학생 운동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 뒤로 대학은 자본의 논리에..

읽고본느낌 2016.02.10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수능을 앞두고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30인 선언이 다시 있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자본주의와 학벌중심 체제에대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비록 처음 세력은 미약할지라도 그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조만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조짐이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거대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변화를 재촉하는 물결은 노도가 되어 흐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우리는 낙오자가 ..

참살이의꿈 2011.11.0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오늘아침 경향신문에 대학교육을 거부하는 한 대학생의 대자보 기사가 실렸다.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이라는데 학교에 자퇴원을 제출하고 자신의 심경을 담은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 그 내용에서는학생의 치열한 고민을 읽을 수 있고,또한 진정성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도 동감하는 바가 많다. 이것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선언이며, 동시에 이 시대에 발하는 경고이기도 하다. 결코 철부지 학생의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니라고 본다. 비록 지금은 작고 미미하지만이것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난 가끔씩 상상한다. 만약 모든 고등학생들이 대학 가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피라미드의 상부로 오르려는 경쟁 질주를 멈춘다면? 아마 지금의 대학이라는 거대산업은 한순간에 무너질 ..

길위의단상 2010.03.11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읽는 키워드가 '불안'과 '욕망'이라는데 동의한다. 좀더 강렬한 용어를 쓰면 '공포'와 '탐욕'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 경제 위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전세계적 현상이겠으나 유독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원초적 반응이 심한 것 같다.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을 더욱 돈과 안정된 직장에 집착하게 만들고 이기적 욕망을 확대 재생산한다. 한국의 과잉 교육열도 기본적으로는 그에 기인한다고 본다. 사람들은 마치 주술에 걸린것처럼 '공포'와 '탐욕'의 대열에 망설임 없이 동참한다. 숲속에서는 숲을 보지 못한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숲을 벗어나서 조망해야 한다. 불편하고 거북할지라도우리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강연회가 있었다. 다음은 김규항..

길위의단상 2009.10.09

교문 풍경

학기초가 되면 고등학교 교문에는 연례행사처럼 이런 플랭카드가 걸린다. '서울대 및 의대 00명, 연세대 00명, 고려대 00명, 서강대 00명, 성균관대 00명, 한양대 00명,...... 기타 4년제 대 00명'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아마 저기에 들어간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서열화된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연장되면 서열화된 계급사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뻔하다. 플랭카드에서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면 의대에 입학해도 서울대 통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작금의 의대에 몰리는 세태를 읽어볼 수 있다. 요즈음은 실업계 고등학교도 여기에 동참하는 것 같다. 이젠 실업계 고교 입학도 좀더 쉽게 대학에 가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것 같다. 자식의 대학 입학은 대한민국 온 가정의 중..

사진속일상 2006.03.14

솔직한 급훈

어느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지만 그러나 뒷 맛이 씁쓸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주위에는 유명 대학들이 여럿 있다. 연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서울대, 건국대, 한양대 등등..... 여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2호선을 타고 등하교를 한다. 결국 `2호선을 타자`란 말은 이런 유명 대학들에 진학하자는 뜻일게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겉으로는 전인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입시 학원에 다름없다. 교육 과정이나 활동이 지적 분야의 경쟁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실이라든가 노력, 착함 같은 인성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이젠 노골적으로 입시 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나마 솔직하다고 인정해주어야 할 것인지..

사진속일상 2003.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