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16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대학생 때 파동 수업을 들을 때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이렇게 물었다."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면 소리가 났을까? 안 났을까?"우리는 왈가왈부하면서 의견이 둘로 갈라졌다. 곧 이 질문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관점을 묻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8부작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봤다. 제목만으로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위의 질문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동시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50여 년 전에 강의실에서 받은 질문을 똑 같이 드라마에서 만날 줄이야. 드라마는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우연히 마주한 사건으로 인해 모텔 주인의 삶은 풍비박산이 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대처 방식을 다루는 드라마다. 누군..

길위의단상 2024.09.06

떨림과 울림

과학 도서가 초판 30쇄를 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 놀라웠다. 이마저 2022년 기준이니 지금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 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을 설명하지만 내용이 쉽지만은 않고 상당히 철학적인 책이다. 인기 요인 중에는 지은이인 김상욱 선생의 유명세 덕분도 있을 것이다. 은 우주에서 시작하여 힘과 에너지, 시공간에 대한 해석, 엔트로피와 양자역학 등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물리학의 틀과 이론을 보여준다. 기존의 과학서적과는 다른 접근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리 이론이 세상의 구조를 밝히는 걸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연결될 때 물리학은 따스한 학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상욱 선생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원자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읽고본느낌 2024.04.01

엔드 오브 타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하나는 엄밀한 과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맹목성에서 오는 무의미함과 공허다.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우주의 미래는 열역학적 죽음으로 귀결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암흑의 차가움 속에 사라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가냘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경이와 기쁨이다.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하찮은 존재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지적 능력은 우주의 태초부터 미래까지를 그려 보일 수 있다. 우주와 함께 인간 자체도 경외롭다. 은 부제가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이다. 지은이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초끈이론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면서 저서와 방송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인물이..

읽고본느낌 2022.12.30

과학인문학

직장에 있을 때 후배 P가 있었다. 역사를 전공한 지적 호기심이 대단했던 후배였다. 수시로 나를 찾아와서 양자론에 대해 질문하는 통에 혼줄이 났다. 딴에는 물리를 공부했으니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도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면 말이 길어지고 어려운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 '시인과 함께 하는 물리학 산책'이라는 부제를 가진 은 드물게 시인이 물리학에 관해 쓴 책이다. 시인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은이인 김병호 선생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시인이 된 분이었다. 물리학의 소양에 문학의 감성이 더해져서 '과학인문학'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만들어졌다. "문학과 과학은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며 그 호기심을 밀고 나..

읽고본느낌 2022.06.13

아인슈타인의 그림자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의 전기(傳記)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이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데 음양으로 헌신했지만 그녀에게는 빛이 아니라 도리어 우울하고 음습한 그늘이 되었다. 이 책의 부제가 '밀레바 마리치의 비극적 삶'이다.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공업전문학교에서 물리 수업을 함께 들으며 친해졌다. 둘은 1903년에 결혼했고,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특수상대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때 밀레바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 작품은 완성은커녕 시작도 되지 못했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뒤에 고백했다. 실제로 수학 분야에서는 아인슈타인보다 밀레바가 더 뛰어났다고 한다. 밀레바는 훌륭한 품성에다 지적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이었..

읽고본느낌 2022.01.10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20세기 물리학과 수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을 중심으로 과학과 철학의 여러 쟁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아인슈타인과 괴델은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에서 같이 출퇴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서로 상이한 성격의 두 천재가 함께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추론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짐 홀트(Jim Holt)가 썼다. 에는 과학과 수학, 철학의 다양한 분야가 논의되고 있다. 시공간과 우주, 상대성과 양자론, 수학계의 여러 쟁점들, 인류의 미래와 인간의 삶 등 다양하다. 다만 지은이가 20년 간 쓴 글 모음이라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는 넉넉하다. 책에는 여러 수학자와 수학적 논쟁이 나오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리에서 사용하는 도구적 수학..

읽고본느낌 2022.01.04

마리 퀴리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그것도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각각 받았다. 뿐만 아니라 남편인 피에르 퀴리도 노벨상을 받았고, 그녀의 딸인 이렌과 사위들도 노벨상을 받았다. 2대에 걸쳐 무려 다섯 명의, 여섯 개의 메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결과다. '마리 퀴리'(원제는 Radioactive)는 위대한 과학자면서 선구적인 여성이었던 마리 퀴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1934년에 퀴리가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퀴리는 남성 중심의 당시 과학계에서 아웃사이더였다. 그녀는 과학 연구만이 아니라 여성을 무시하고 진입을 막는 장벽과 맞서 싸워야 했다...

읽고본느낌 2021.11.16

우주를 만지다

물리학자인 권재술 선생의 과학 에세이다. 통상의 과학책과 달리 물리학과 인문학의 따스한 만남을 시도해서 특이하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특히 글의 갈피마다 직접 쓴 시가 실려 있어 딱딱한 과학 내용을 적절히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인 권 선생님은 대학 선배시다. 학부 때 조교이시던 선배한테 가르침을 받았다. 따스하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후에는 대학 교수가 되시고 총장까지 하셨다. 대개 이과생은 세상을 보는 눈이 좁고 논리가 거친데 선배는 달랐다. 글을 잘 쓰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는 처음 만났다. 다만 당구 실력은 나와 비슷해서 재작년인가에는 하수끼리 같이 시합을 한 적도 있었다. 책에서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고 아차,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교단에서 ..

읽고본느낌 2021.01.24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최첨단 물리학 이론인 '루프양자중력'을 설명하며 우주와 만물의 근본을 탐색하는 책이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가 썼다. 부제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숨 쉬는 이 세계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이다. 물리학의 두 기둥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상대성이론에서 중력파와 블랙홀을 연구하는 우주론이 발전했고, 양자역학에서 원자물리학의 기초가 닦였다. 그런데 둘은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상대성이론은 장들이 양자화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양자역학은 시공이 휘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따른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양자중력론은 이 둘의 모순을 해결하며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양자 공간과 양자 시간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읽고본느낌 2019.10.31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학교에 다닐 때는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했지만 지금은 물리학을 전공한 게 고맙다. 일반인들이라면 과학 이론에 흥미를 느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용이 딱딱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객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물리는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근본 질문과 깊숙이 관계되어 있다. 특히 양자론 같은 현대물리학이 그렇다.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나마 들은풍월이라도 있으니 과학 서적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포드(K. W. Ford)가 쓴 는 원제가 이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는 쉽지 않다. 아무리 쉽게 써도 양자론은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 양자론 자체가 너무나 기묘하고 이상한 세계를 그려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읽고본느낌 2015.01.30

위대한 설계

학문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종래의 과학은 우주 만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규칙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법칙과 원리로 우주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묻는다. 지금 여기에 왜 내가 존재하는지 과학이 답하려고 한다. 전에는 형이상학으로 철학과 신학의 영역이었다.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가 쓴 는 물질과 생명의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려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지금 우리는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물리 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는 현대 과학을 통해 우리의 세계관이..

읽고본느낌 2014.01.26

표준모형

올해 과학계의 최대 화제는 힉스(Higgs) 입자의 발견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의 흔적을 포착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올해는 아마 확증의 수준까지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표준 모형에 대한 강력한 입증이 된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과학은 표준 모형으로 답한다. 표준 모형은 다양한 실험적 검증을 통해 가장 믿을 만한 이론적 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우주에는 네 개의 기본 힘이 존재한다.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중력이다. 왜 하필 우리 우주에는 네 개의 힘이 존재하는 걸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표준 모형은 중력을 제외한..

길위의단상 2012.01.27

물리학의 최전선

오랜만에 물리학 책을 읽었다. 아난타스와미(A. Ananthaswamy)가 쓴 이다. 그래도 전공이랍시고 물리 용어를 접하니 반가우면서 마치 고향을 찾은 듯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지은이가 세계 곳곳의 실험물리학의 최전선을 찾아가서 현장을 직접 보고 과학자들을 인터뷰해서 썼다. 세계에서 가장 춥고, 깊고, 높은 곳에서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남극 대륙의 반물질 탐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힉스 입자를 찾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 Large Hardron Collider), 시베리아 바이칼 호의 뉴트리노 검출 장치, 수단 광산의 극저온 암흑 물질 탐사, 우주 배경 복사 탐사 위성, 그리고 칠레, 하와이, 남아프리카 등의 초대형 망원경 프로젝트가..

읽고본느낌 2012.01.16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인문학적 교양이란 문학, 철학, 역사, 문화, 예술 등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가리킨다.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것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인문학적 교양이란 한 인간이 온전한 인격체로 자라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물론 이것은 지식의 만물박사라는 뜻이 아니라 인본주의를 바탕에 둔 인문학적 정신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인문학에 비해 과학적 교양이라는 말은 별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교양이 없다면 창피하게 생각하지만 과학적 교양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일부러 교양과학서를 찾아서 읽는..

읽고본느낌 2009.12.24

기압계로 건물 높이를 재는 법

얼마나 사실인지 모르지만 과학사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물리학자인 보어가 코펜하겐대학 학생이었을 때 한 수업에서 ‘기압계를 이용해 고층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당연히 교수는 1층과 꼭대기 층의 기압차를 이용해 높이를 구하는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어는 “기압계를 실에 매달아 건물 옥상에서 1층까지 늘어뜨린 뒤에 그 길이를 재면 된다”는 엉뚱한 답을 했다. 교수는 이 답을 오답으로 평가하겠다고 하면서 물리 원리를 이용한 답을 다시 얘기하라고 했다. 그러자 보어는 아래와 같은 재치 있는 답을 여러 개 쏟아냈다. 이 일화는 보어의 천재성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1) 옥상에서 기압계를 떨어뜨려 시간을 측정한 뒤에 높이를 잰다. (2) 1층과 옥상에서 기압계를 매달..

길위의단상 2008.08.19

산타클로스의 물리학

산타클로스의 하룻밤 여행을 물리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의 고객이 되는 어린이는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어린이를 제외하면 대략 4억 명 정도이다. 한 가정에 2.5명의 어린이가 있다고 볼 때 아마도 산타클로스는 지구에 있는 약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해야 될 것이다. 산타클로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룻밤뿐이라고 할 때, 지구 자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선물을 나누어줄 경우 약 31시간 정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31시간 동안에 1억 6천만 가구를 방문하려면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한다. 다시 말해 0.0007초 만에 지붕에다 썰매를 주차시키고, 굴뚝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선물을 놓고, 다시 나와 다른 집으로 이..

길위의단상 200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