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6

찬 강바람을 맞다

한강변에 서니 늦가을 바람이 차가웠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이어서 냉기가 살갗으로 스며들었다. 더 차가운 바람을 맞은들 불평이 나올 수는 없었다. 나태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데 이 정도의 찬바람으로는 어림없을 터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오전의 습지생태공원은 고즈넉했다. 고니가 와 있지 않을까 살폈으나 경안천은 텅 비어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한강으로 나가 더 거세진 바람을 맞았다. 멀리 강 건너 운길산 8부 능선쯤에 있는 수종사가 보였다. 아뿔싸,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수종사에 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원한 눈맛을 즐겼으면 좋았겠다는 늦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감정의 과잉 상태였다. '인간 혐오'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왔다. '통화 거절'로 읽히는 메시지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사진속일상 2023.11.28

비바람 속의 일요일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깨다. 빗소리는 어느 음악보다 감미롭다. 빗소리는 또한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한다. 비가 들이치지 않게 창문을 조금 열고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 자연이 주는 운율을 감상한다. 출근할 걱정이 없는 비 오는 일요일은 행복하다. 비 내리는 휴일은 빈둥거리기 좋은 날이다. 책을 보다가 졸리면잔다. 비 오는 날은 커피도 더욱 제 맛이 난다. 오징어를 씹으며 멍하니 TV 앞에 앉아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출출하면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 그러면서 오늘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인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SF 소설이었다. 오후에는 비가 잦아든 대신 바람이 요란하다. 20층 아파트의 유리창을 깨뜨릴 듯 포효하면 지나간다. 빗소리처럼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거센 바람만한 ..

사진속일상 2009.07.12

바람 호쾌한 날

오후에는 선유도에 나가 바람을 맞다. 시~~원하고 호쾌하다. 모든 시름 다 날아가거라! 바람과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는 미루나무다. 차르르~ 하며 바람따라 춤추는 미루나무 잎들의 환호소리 요란하다. 그 와중에도 자작나무 점잖고 의젓하다. 사람이란 사뭇 저렇게 속마음을 쓸 일이잖는가. ........... 이른 아침에는 한강에 나가 꽃들 구경하다. 붉은꽃, 흰꽃, 노란꽃 서로서로 어울리며 예쁘게 피었다. 꽃에 마음을 뺏기고 그녀와 하나되는 때, 그래서 온갖 세상사 사라지니 그 시간 행복하다.

사진속일상 2009.06.11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것인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바람의 말 / 마종기 세상 살아가는 일이 한 자락 바람처럼 허전하고 아득한 일이다.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따스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우리의 유한함이 유한함으로 인하여 위로 받고, 추억과 그리움이 되어 가슴에 담긴다. 사람을..

시읽는기쁨 2008.03.07

바람만이 알고 있지 / 밥 딜런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

시읽는기쁨 2004.12.23